2025 부활절 פסחא과 나무
히브리어로 유월절은 Pesach | פסח, 지나간다, 월담한다의 뜻이다. 어린양의 피를 바른 유대인의 문지방을 하나님의 천사가 넘어갔다는 출애굽 이야기(hagada)를 근거로 한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이 유월절 명절 직전인 금요일에 일어났고, 사흘째인 일요일, 부활했다고 믿는다. 이 심오한 날을 영어는 고대 게르만의 봄 축제에서 착안해 Easter라고 부른다. 기독교로서는 유월절이라는 명절이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으니 페삭과 동떨어진 다른 이름을 갖고 싶었을 수 있다. 신약의 히브리성을 부인하던 반유대주의 전통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히브리어는 우리 주님의 부활절을 페삭에 알렙을 붙혀 파스하פסחא라고 명하는데, 아람어로 The Pesach이 된다. 헬라어가 Πάσχα를 지켜왔다. 적어도 명칭과 관련해서는 히브리어가 기독교에 예의를 갖춘 편이다.
그렇다고 모든 유대인이 파스하를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뭐라고? 말한 사람만 히브리어 발음 이상한 꼴이 되기 쉽다. 상대가 종교인이라면 왜 신성한 히브리어를 훔쳐다 해괴한 말을 만드냐고 시비 털 수도 있다.
성금요일, Good Friday를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유대인 친구에게서 왔다. 나름대로 기독교에 대해 자신은 관대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나 본데,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날을 축하할 일은 아니지 않나. 이 친구보다 영어가 이상한 거다. 뭐, 고맙다고 했다.
유월절은 전체 7일인데, 첫날과 칠일째 날을 Yom Tov로 지킨다. 샤밧과 같다는 뜻이다. 전통에 따르면 첫날은 이집트를 탈출한 밤이고, 칠일째는 홍해를 건넌 날이란다. 금요일 밤이 첫날이었으니 칠일째 역시 금요일이다. 첫날 친가에 갔으면 칠일째 날은 외가에서 식사를 한다. 이듬해에는 순서를 바꾼다. 뭐 어쨌든 식구들이 모여 함께 밥 먹으며 기념한다. 나는 마쩨바를 귀히 여기는 유대인에게 꽤 인기 있는 편이라, 첫날 렐하세데르에도 칠일째 날에도 꼭 초대를 받는다. 올해는 못 간다고 초대를 거절했더니 명절에 그러면 안 된다고 성화다.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라 금식을 한다고 했더니, 간신히 납득한다.
동네가 잠잠해질 무렵, 복음서를 열었다. 마가복음 10장부터 읽기 시작한다. 여리고, 베다니, 예루살렘, 겟세마네, 기드론 골짜기, 비아돌로로사, 갈보리, 감람산. 예수님을 따라 걷는다. 공감각을 가지고 성경 본문을 읽으면 활자가 담지 않은 많은 것들에 시선이 간다. 문득 나무가 보인다. 이렇게 많은 나무가 있었구나.
여리고는 종려나무의 도시이다. 대추야자나무, 데켈דקל, 더운 사막에서 물의 존재를 알려주는 고마운 나무이다. 열매는 달아서 에어지를 주고, 잎사귀로는 지붕을 가리고, 잠잘 자리도 만들 수 있다. 정말 아낌없이 주는 고마운 나무다. 하지만 여리고에서 진정한 부활의 상징은 Rose of Jericho שושנת יריהו다. 얼핏 죽은 것처럼 보이는 식물에 조금의 물만 닿으면 엄청난 꽃이 피어난다.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몰랐지만, 관광상품으로 판매중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Rose of Jericho"는 여리고 지방의 피부병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레이슈마니아스 기생충이 옮기는 병이다. 모기나 파리에 물린 자국처럼 상처가 나다가 이내 피부가 패일 만큼 종기가 커진다. 면역력 없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정착촌 여리고답게, 이 지역과 관련된 명칭들이 여럿 전해진다.
Ziziphus spina-christi 예수님의 가시관이라 불리는 쉐이자프שיזף는 이스라엘 전역에서 많이 눈에 띄는 나무다. 사사기 9장의 요담 우화에 등장한다. 고대 세계의 사람들은 자연과 가까이 살면서 땅을 영적인 의미가 가득한 곳으로 여겼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많은 식물들은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올리브 나무는 평화를, 무화과 나무는 번영을, 포도나무는 즐거움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가시 나무는 어떨까? 아주 불길한 파멸의 도구다. 형제 70명을 죽인 아비멜렉을 왕으로 받아들인 세겜 사람들은 결국 권력에서 나오는 불의 보복을 당하게 된다.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던 이들은, 그분을 권력이나 탐하는 자로 중상하기 위해 가시나무로 관을 만들어 씌운 것이다. 나무 마디마다 가시가 박혀 있어 무섭지만 열매는 꽤 달다.
승리의 부활은 무엇으로 상징하면 좋을까. 육체적 경쟁에서 이기는 종류의 승리는 월계수가 대변한다. 영어로 laurel, 여기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의미하는 laureate가 파생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리스 로마 같은 인본주의 세계관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온 사건으로, 그래서 하나님과 세상의 화해를 상징하는 올리브나무 잎에 어울린다.
원래 야생 올리브는 빙하기 전까지 지중해 연안에서 자랐는데, 빙하기 후로는 거의 남지 않았고, 일부가 이베리아 반도와 이스라엘엘 갈멜 지역에 남았다. 이스라엘에서는 올리브 나무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됐는데, 특히 농업부 산하 정부 기관인 Volcani 연구소에서 야생 올리브 나무에 대한 DNA 연구를 진행한다. 현재 이스라엘 땅에서 자라는 올리브 나무는 거의 전부 연구 대상이 됐다고 봐도 되는데, 하이파 남부 해안 도시 아틀리트 근처에 특정 올리브 나무 그룹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urkar라는 사암 sandstone 퇴적층 사이에서 자라는 올리브 나무로, 덤불에 가까운 이상한 사다리꼴 모양이다. 열매가 아주 작아서 기름을 생산하지는 못하는데, 개체 수가 매우 적기 때문에, 현재 보존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이 희귀한 kurkar에서 자라는 야생 올리브 나무에 대한 연구가 고대 올리브 나무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은 유월절 세데르에서 마짜, 무교병을 먹는 게 미쯔바인데, Kezayit 만큼 먹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כזית 올리브만큼이라는 뜻이다. 올리브의 사이즈는 종에 따라 다양하지만, 랍비들은 이런 걸 표준화하는 직업이다. 할라하의 케자이트는 대략 25-30밀리리터 정도란다. 작은 달걀? 고대의 야생 올리브는 더 열매가 작았을 것이다. 케자이트를 먹으라는 게 히브리어에서는 최소량을 먹으라는 뜻이다.
올리브 나무는 밀, 포도와 함께 고대 이스라엘 경제의 핵심이었고, 촛불을 켜고 할라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유대인의 전통 속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기독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교사들이 술 좋아하는 우리 조상들에게 금주를 강조하지 않았다면, 포도가 적게 나는 아시아에서 포도주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소주로 바뀌었을까?) 올리브 나무 열매인 기름은 불을 붙히는 빛의 상징이다. 또 올리브 잎에는 매우 가는 흰색 털이 있는데, 햇빛을 굴절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올리브 나무는 더운 환경에서 물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이스라엘 정부의 공식 상징은, 메노라 양쪽에 두 개의 올리브 줄기를 둔다.
시편 128편은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을 보여주며, 아내는 포도나무에, 자녀들은 올리브 나무에 비유한다. 올리브 나무를 그냥 두면 뿌리에서 어린 가지가 돋아난다. 이 어린 가지를 가지치기 하지 않으면, 이 어린 가지가 나무가 되어 원 가지를 휘감아 올라가고, 원 나무가 늙어 죽으면 그 나무를 대신한다. 어떤 면으로는 영생을 표현하는 직관적인 사물이다. 이론적으로 올리브나무는 영원히 살 수 있다. 겟세마네 동산 같은 곳에 있는 오래된 올리브나무는 마치 밧줄이 감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어린 가지가 빠져 나왔기 때문이다.
명절 식탁에 앉아 복음을 나눈다는 심정으로 곧 부활절이 다가온다고 말했다. 초대해주신 할머니가 4월 20일? 한참이나 말을 가리신다. 나중에 생각나 무슨 말씀 하려고 했냐니, 그날이 히틀러 생일이란다. 독일 출신이라 어렸을 때 그날을 명절로 지켰다고 한다. 이 나라는 참, 복음의 장애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