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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드루실라

요즘 높은 분들 사모님들 때문에 너무 피폐하다. 인간에 대한 나의 입장은, 저럴 수도 있구나로 일단락되는 편인데, 사모님 이슈는 대단히 견디기 힘들다. 결혼 제도가 여성성을 훼손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달까. 아무튼 견디다 못해 해안 도시로 여행을 갔다. 땅이든 바다든 파기만 하면 뭐든 나오는 이 나라의 장점은, 언제 어느 때든 내 심경을 대변해주는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거다. 가이사랴에서 이 인물에 눈을 떴다.   

리비아 드루실라, 소개문의 첫 문구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와이프"다. 드루실라가 이 문구를 봤다면 무덤을 박차고 나와 삿대질부터 하지 않을까. 내가 왜?

잠깐, 리비아 드루실라 동상이 이스라엘 땅에서 발견됐다고? 아우구스투스 동상도 안 나온 나라에서?

 

이스라엘 땅에서 아우구스투스의 신전은 가이사랴, 세바스티아, 바니야스에 건설됐다. 모두 헤롯의 공이다. 헤롯의 아첨이 그 정도였다. 시리아와 국경 지대인 오므릿에도 코린도 캐피털로 장식된 신전이 발견됐는데 헤롯의 네 번째 아우구스투스 신전일 가능성이 크다. 시리아가 이스라엘과 평화를 맺겠다니 조만간 확인할 수 있을까. 아무튼 이 많은 신전에도 불구하고 아우구스투스의 동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리비아 드루실라는 물론 단순한 황비가 아니다. 임신중에 시시한 남편을 버리고 야망의 옥타비아누스로 갈아탄 불륜녀에 그치지 않는다. 전남편 클라우디우스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 티베리우스를 차기 황제로 만들었고, 그 결과 이 가문이 칼리굴라와 클라우디우스와 네로까지 황제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른바 율리오-클라우디안 왕조.   

 

한편 임신한 남의 아내에게 반한 옥타비아누스, 훗날의 아우구스투스는 정략 결혼했던 스크리보니아를 떨쳐내기 위해, 인류 이혼사에 귀감이 될 만한 이혼 사유를 남긴다. 용납할 수 없는 성격 때문에 헤어진다는 것이다. 성격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혼 조건 때문에 참을만했던 성격도 바람나면 헤어질 결심을 굳혀준다는 교훈을 얻으시라. 게다가 이들의 이혼은 마침 유일한 자녀인 율리아가 태어난 직후였다. 혹시나 스크리보니아가 아들을 낳았다면 로마 역사는 당연히 바뀌었을 것이다. 

 

여기서 다시 엽기적인 로마 스타일이 드러난다.  

 

율리아는 아버지의 후계자들과 세 번이나 결혼했는데, 첫째 상대는 아버지의 조카, 둘째 상대는 아버지의 친구, 셋째 상대가 드루실라의 아들 티베리우스였다. 티베리우스는 율리아를 매우 싫어했고 결국 결혼한 지 5년 만에 카프리 섬으로 자진 유배까지 간다. 홀로 남은 율리아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다가 간통으로 추방된다. 스크리보니아가 추방되는 딸과 동행했다고 한다. 아니, 이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황제가 자기 친딸을 내세워 후계 구도를 다지려고 이다지도 애를 썼는데, 어떻게 후계자들마다 족족 비명횡사한 것일까. 드루실라의 아들 티베리우스만 빼고.     

 

드루실라는 로마 황제 후계자들의 수명과 정말 아무 관련이 없을까. 

 

카프리 섬의 빌라 조비스. 심심한 티베리우스의 변태 난교 실험 현장이었다. 카프리 자체가 염소capreae라는 뜻이다. 음란하기로 유명한 판 신은 염소의 하반신을 가졌고.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에서 제일 기분나쁜 섬이다.  

 

아무튼 10년이 지나 티베리우스는 다시 로마로 돌아왔고 이번에는 무사히 황제 자리에 올랐다. 아우구스투스가 죽었으니까. 얄궂게도 리비아는 여기에서 모종의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인다. 아우구스투스는 정원에서 직접 딴 싱싱한 무화과만을 먹었다고 한다. 드루실라는 남편을 독살하기 위해 나무에 달린 무화과 열매에 독을 발라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대 로마의 무화과 품종이 리비아나다.   

티베리우스는 황제가 되고도 희한한 입장을 견지했는데, 이를 테면 자신을 황제로 만들어준 어머니의 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양아버지인 아우구스투스가 pater patriae인데, 어머니가 mater pariae 조국의 어머니가 되는 걸 거부했다. 티베리우스가 어머니를 깊이 혐오했다는 주장도 있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돌아가실 때, 마침 로마 황제는 티베리우스였다.

 

마침 생각나서 이탈리아 방송국이 만든 티베리우스 황제의 시대극을 찾아보았다. 어휴, 그냥 글로 읽는 게 낫겠다. 인간이 이런저런 흠결을 갖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유독 하자가 많은 경우는 어머니와 아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있다. 왜 유독 흠결 많은 존재 곁에는 더욱 헌신적인 어머니와 아내가 있는지도 궁금은 하다. 

 

리비아 드루실라, 아우구스투스의 아내이며 티베리우스의 어머니. 음모가 난무하는 로마 정치를 휘어잡은 덕분에 먼 변방의 땅 이스라엘에도 자기 동상 하나쯤 남길 수 있었던 영향력을 기억해 보자.    

 

*아무리 그래도 아우구스투스 동상이 발견되지 않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동상에 대한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터부 때문일까. 아우구스투스보다 더한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청동상도 발견됐는데. 주조 기술이나 파티나의 마감 처리에서 최고급 수준을 자랑하는. 

 

전 세계 단 세 점이라는 하드리아누스의 청동상.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의 동급 아이템과도 비교 불가한 최고급 수준이다. 벳샨 근처 텔 샬렘에서 발견됐다. 귓볼의 대각선 주름은 황제 나이 60세에 발병한 관상동맥 질환의 징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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