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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e

헤이그, 스피노자의 도시 네덜란드에서 헤이그를 발음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목졸린 소리로 덴하흐, 특히 '하'에 강세를 두어야 한다. '덴'은 정관사라지만 하흐가 어쩌다 헤이그로 변했는지 아무튼 희한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헤이그에서 이준 열사 기념관을 방문한다. 미술 애호가라면 몬드리안의 최대 콜렉션 시립 미술관을 찾는다. 나도 그대로 했다. 그러고 나서 헤이그 최초의 개혁교회 De Nieuwe Kirk를 찾았다. 여기서 유대인을 만나지는 못했다. 일단 교회니까ㅋ. 1656년에 완공된 교회는 지금은 회중이 찾는 예배의 장소는 아니다. 비즈니스 미팅이나 콘서트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교회 정원으로 들어가면 어딘지 자리를 못 잡은 것 같은 어색한 무덤이 나온다. 바루흐 베네딕투스 스피노자의 안식처다. Terra hic 여.. 더보기
플로브디프 쨍한 여름 날씨에 갈 만한 도시를 찾고 있다. 이 중세 도시에서 가장 뚜렷한 이미지는 돌이었다. 공산국가 출신라는 걸 감안하고도 유난히 동상이 많이 서 있는 나라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가 쌍벽이다. 발칸 국가들을 방문할 때는 일단 키릴 알파벳이라도 떼고 가야 한다. /d/발음을 g로 쓴다는 걸 기억하려고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발칸과 오토만의 융합은 이런 식의 양식으로 남았다. 플로브디프의 모스크 쥬마야 모스크(Dzhumaya Mosque), 터키어로는 cuma cami Friday Mosque이다. 헬레니즘 문화 유산 위에 정교회 문화를 유지한 나라에서 오늘날 무슬림들이 적지않게 박해를 받는다나 보다. 337년에 세워졌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헬레나 황비 교회이다. 예루살렘 성묘교회가 326년이니까, 황제.. 더보기
프라하의 하루 보헤미아의 전성기가 중세였다는 건 프라하에 독일까 선일까. 바츨라프 공작의 기마상이 서 있는 그의 이름을 딴 광장에서 이 도시의 봉건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바츨라프 공작이 세운 St. Vetus 대성당. 바츨라프, 영어로 Wenceslaus 채플이다. 중앙에 있는 바츨라프 동상의 두개골이 실제 사이즈(!)란다. 보헤미아의 기독교 개종은 바츨라프 공작의 할아버지 때 이뤄졌다. 그의 할아버지 보리보이는 키릴 문자를 창시한 시릴과 메토디우스에 의해 개종했다. 남자들 명줄이 시원치 않은 집안인지 할아버지 아버지는 일찍 죽고 할머니 루드밀라와 어머니 드라호미라가 바츨라프를 두고 경쟁했다. 어머니가 할머니를 암살한 걸로 정리된다. 바츨라프도 동생에 의해 암살됐다 (그래서 순교자로 인정된다). 집구석이 이 지경인.. 더보기
Taizé 공동체 이스라엘 살면 프랑스에 갈 기회가 많다. 브루고뉴를 지날 때마다, 떼제가 여기 있는데, 생각하곤 한다. 요즘 세상에 누가 기억이나 할까마는, 브루고뉴는 발루아 가문을 비롯한 유럽 왕가들의 고향이자 서구 수도원 운동의 중심지였다. 수도원 운동은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사막에서 시작됐지만 궁극적으로 신을 찾는 이들은 수도사일 수밖에 없으므로 어느 나라에서든 기독교는 수도원 운동을 경험하게 된다. 유대교는 그럴 일이 없다. 지독하게 현실적인 종교이므로. 유럽의 수도원 운동이 일어난 곳은 이런 지형이다. 이집트 사막의 수도원 운동과는 존재론 자체가 다르다고 봐야겠지. 테제 공동체는 로저 슈츠, 스위스 개혁교회 목사에 의해 1940년 세워졌다. 나치에 패배한 프랑스의 절망적인 상황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한 삶의 방식.. 더보기
베를린, 본회퍼 하우스 2013년 본회퍼 하우스가 설립됐다는 소식을 듣고 항상 가보고 싶었다. 신학 견습생들을 훈련하는 곳이다. 훈련은 저작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곳에서 발표될 작품들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정기적으로 나오는 진지한 에세이들을 인터넷으로 구독할 수 있다. Heerstrasse역에서 내려 가볍게 산책하면 집이 나온다. 무슨 악취미인지 저 한적한 길을 통해 들이닥쳤을 SS 차량과 군인들이 떠올랐다. 그날 밤을 기억하고 있는지. 이 고결한 가정이 자신들의 신앙과 신념으로 인해 치른 대가가 좀 더 세상에 알려져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 숲은 고요하고 거리는 차분하다. 신학 견습생을 훈련하는 곳이기 때문에 정해진 스케줄이 엄격한 곳이다. 방문자들이 아무 때나 드나들 수는 없으므로 사전 예약과 컨펌이 중요하다. 한국분들이.. 더보기
로마의 하루 알폰소 쿠아론이 만든 Roma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 제목이 로마여서 영화 보는 내내 심적 갈등을 겪었다. 모든 유형의 폭력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1970년대 멕시코가 감독에게 '로마'였던 것이다. 신약 성경은 거대한 폭력과 무도한 인간의 죄악상을 '로마'로 차용한다. Children of Men에서도 쿠아론은 종교에 대한 매서운 성찰을 보여준다. 쿠아론의 미스트 속에 있는 로마는 오드리 헵번이 하루를 보낸 로마와는 전혀 달라 보인다. 비가 오는 로마에서 그 차이를 '생각'해 보았다. 생각인 만큼 오만 가지가 떠올랐다. 로마 건물에서 Cloister를 만나면 수도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곳 국립 로마 연구소도 7-8세기에는 유서 깊은 수녀원이었다. 로지아에는 중세 비문들이 즐비하다. 저 정도는 박물.. 더보기
비엔나의 하루 넷플릭스 Die Kaiserin 방영 기념으로 비엔나에 다녀온 기억을 더듬어 본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황실의 겨울 궁전 Hofburg. 현재는 대통령궁이자 카쩌린 엘리자베스 Sisi 박물관이다. Neue Burg의 발코니. 1938년 3월 15일 저곳에서 히틀러의 Anschluss 연설이 있었다. 1889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이 도시를 동경한 히틀러는 힐덴플라츠에 개선문을 세우고 행진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합스부르크-로트링거 문장 방패를 들고 있는 사자. 늠름하다.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나폴레옹의 장인 프란시스 2세. Michaelerplatz에 있는 "Power at Sea" 분수. 유럽의 조각가들은 비엔나 용역으로 먹고 살았나. Graben 광장에 있는 Pestsäule, Plagu.. 더보기
파리 묘지 여행 불멸의 희망이 가득하다 (Sapient) |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리라 (요한복음 11장) 나폴레옹은 산 자만이 아니라 죽은 자한테도 신경을 썼구나. 파리 시내의 붐비는 공동묘지를 대신해 동서남북 외곽에 새 묘지들을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그중 동쪽 묘지가 페르 라쉐즈, 고해를 받아주던 라쉐즈 신부의 이름으로 불린다. 한국 사람들이 요즘 여기 별로 안 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럴 수도 있지. 동쪽 끝까지 가기가 번거롭다. 차도 많이 막히고. 그런데 넓은 묘지를 돌다 보면 히브리어가 많이 들린다. 유대인이 타종교인, 즉 기독교 지배자와 함께 묻혀 있는 유럽 묘지가 신기해서다. 프랑스 혁명은 인류가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는다를 선포한 최초의 사건이고, 나폴레옹으로 인해 시작된 그 혜택 em..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