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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e

파리 묘지 여행

 

불멸의 희망이 가득하다 (Sapient)  |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리라 (요한복음 11장)

 

나폴레옹은 산 자만이 아니라 죽은 자한테도 신경을 썼구나. 파리 시내의 붐비는 공동묘지를 대신해 동서남북 외곽에 새 묘지들을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그중 동쪽 묘지가 페르 라쉐즈, 고해를 받아주던 라쉐즈 신부의 이름으로 불린다. 한국 사람들이 요즘 여기 별로 안 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럴 수도 있지. 동쪽 끝까지 가기가 번거롭다. 차도 많이 막히고. 그런데 넓은 묘지를 돌다 보면 히브리어가 많이 들린다. 유대인이 타종교인, 즉 기독교 지배자와 함께 묻혀 있는 유럽 묘지가 신기해서다. 프랑스 혁명은 인류가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는다를 선포한 최초의 사건이고, 나폴레옹으로 인해 시작된 그 혜택 emancipation의 최대 수혜자는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파리 꼬뮌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세대가 다르니까. 코뮌의 벽(Mur des Fédérés)은 코뮌이 무너진 '피의 주간' 동안 프랑스군에 의해 147명이 처형된 곳이다. 거기까지 가려면 멀다. 가깝다 해도 죽음의 현장까지 볼 생각은 없다. 거기 집결해 세력을 과시하던 프랑스 좌파들은 이념의 쇠퇴 이유가 인간 보편 정서에 거슬리기 때문이라는 점을 좀 기억해 줬으면 싶다.     

이건 너무 희한해서 기억에 남는다. 이집트 파라오 동상에 다윗의 별이 있고 성경 모양의 묘비에 생몰 기록을 담았다. 죽음 앞에서 종교 대통합인가. 장 프랑수아 샹폴리온 동상은 일부러 찾았다. 나폴레옹의 폭망한 이집트 원정을 그나마 고고학과 인류학의 불씨로 의미있게 만들어준 학자이다. 로제타 비문을 통해 이집트 Hieroglyphic을 해독해 냈다. 언어학의 세계는 그에게 빚진 바 크다. 

 

프레데릭 쇼팽은 왜 바르샤바가 아닌 파리에서 죽었을까. 유대인인가? 전혀 아니다. 당대 대부분의 폴란드 사람처럼 쇼팽도 유대인을 경멸했다. 

에디뜨 피아프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을까. 푸른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그대가 나를 사랑하면 아무 상관 없다는, 그녀의 미친 사랑의 찬가는 어쩌면 이 무덤 앞에서 완성되는 듯도 싶다. 사랑하는 그와 함께 그녀도 죽었고, 하늘이 이들을 다시 이어주었을 테니까. Non, je ne regrette rien이 울린다.    

 

한때 피카소나 헤밍웨이가 살았던 가난한 예술가의 동네 파리 14구에 갔다가 몽파르나스 묘지에 들렀다. 원래는 사뮈엘 베케트를 찾으러 간 건데 역시나 너무 넓다.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보부아르. 지하철 표를 사서 찍고 다니던 시절이구나.

 

세르주 갱스부르의 무덤이다. 어머니 올가 아버지 조세프 긴스부르그와 함께 묻혔다. 이스라엘은 러시아 출신이 많아서 올가라는 이름도 많다. 나치 시대 고단했던 올가의 투쟁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세르주 갱스부르의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유대인으로의 삶을 선택했다. 파트너인 이반 아탈이 이스라엘 출신이다. 가만, 여긴 파리인데 왜 유대인만 떠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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