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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호봇, 와이츠만 연구소 이스라엘에서 8월을 잘 보내려면 남다른 각오가 필요하다. 더운 날씨야 불평해도 소용없고 체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부단히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사는 쉐펠라는 그런 노력이 빛 보기 어렵기 때문에, 해마다 나는 8월의 주말을 이스라엘 북쪽 지방에서 보내곤 했다. 하마스 전쟁이 300일을 넘고 가자는 잠잠해졌지만, 대신 북쪽 국경에서 헤즈볼라가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마음 편히 갈 만한 곳이 없다. 모처럼 대청소를 하다가 와이츠만 연구소 출입증을 발견했다. 코로나 전에 발급받은 것이다. 이걸 갱신할 수 있나. 가능했다. 공습 경보가 울릴 때만 피할 곳이 없어 출입 금지란다. 오랜만에 찾은 와이츠만 연구소는 강렬한 여름 햇빛 속에서도 무성한 녹음을 자랑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 와.. 더보기
하바트 로니트, 탐무즈의 결혼식 전쟁 중에도 시집장가 가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무슨 충동을 받는지, 결혼식이 더 잦은 것 같다. 하마스 전쟁이 시작되고 300여일이 가까울 때였다. 탐무즈 월 17일 금식 후 티샤베 아브, 성전 멸망일까지 3주의 카운트다운 중이었다. 아니, 이 모에드에 결혼을 해도 되는 거야? 신부네가 미즈라힘이라, 랍비 허락을 받아서 된단다. 참 융통성 많은 종교였네.  차려 입고 결혼식 가서 기분 낼 상황이 아니었지만, 다름아닌 하바트 로니트 결혼식이라 간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신라호텔 야외 웨딩홀 정도 될까. 이스라엘에서 최고 수준의 결혼식이 열린다는 곳이다. 뭐가 최고라는 거야, 에어컨 빵빵한 실내로 들어가기만 학수고대했다. 입구는 이렇다. 미니멀리즘인가.신랑신부 이름도 안 써 있는 저 판넬은 재활용.. 더보기
나할랏 비냐민, 텔아비브 1909년 건설된 아후잣 하바이트는 일 년 후 이미 텔아비브로 불리고 있었다. 테어도어 헤르쩰이 독일어로 쓴 "유대인 국가"의 히브리어 번역본 제목이다. 그러니까 텔아비브는 유럽의 시오니스트들이 세운 나라의 이름인 셈이다. 아무튼 이 신도시의 성공을 지켜본 유대인 상인들이 역시나 비슷한 방식으로 협회를 구성하고 자금 조달을 위해 은행과 유대인 기구를 접촉한다. 하지만 은행의 창시자인 유대인이라도 가난하면 융자를 받을 수 없다. 이 나라의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혐오 정서는 이처럼 원천적이다. 당시 사람들은 분노를 터트리는 데 언론을 이용했다. 필명이 랍비 비냐민인 기자가 은행과 유대인 기구가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보다 부자를 편애한다고 고발했다. 마침내 1914년, 나할랏 비냐민이라는 거리가 닦이고 1층 주.. 더보기
기독교 건축 양식 어쩌다 질문이 나왔다. 로마네스크와 르네상스는 어떻게 다르지? 똑똑한 유대인들의 유일한 빈틈이라면 역시 기독교 관련해서다. 모처럼 왜 저런 것도 모르나 의아했다. 십자군이 물러나고 맘루크와 오토만이 다스리던 이스라엘 땅은 문화의 불모지였다. 유럽과 이스탄불에서 멀리 떨어진 지중해 깡촌에 뭐 볼게 있겠나. 망나니 도련님들이 유배 와서 학교를 세우기는 했다. 맘루크 이슬람 문화의 대표 무카르나스와 분홍 벽돌 아블라크. 근데 그걸 쓰레기장으로 쓰냐. 이스라엘 땅에 세워진 교회들은 기독교 양식에 따라 지어졌다. 당연한 거 아닌가. 이슬람 통치 시기 교회 건축은 극도로 제약을 받았다. 모스크보다 규모가 클 수 없었고 탑처럼 하늘 향해 높이 솟아서도 안 됐다. 그게 다 이등 종교로서 기독교가 지켜야 할 선이었다. .. 더보기
나할 켈라흐, 갈멜 산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을 때는 산에 간다. 해발 800미터밖에 안 되는 언덕배기들이지만 일단 올라가면 보람이 있다. 라그 바오메르 즈음에는 메론 산에 가곤 한다. 랍비 시몬 바르 요하이 기일이라 거대한 인구가 쯔팟과 메론으로 결집한다. 그런데 요즘 쯔팟에 공습이 울리고 있다. 기도 안 찬다. 크지도 않은 나라에서 북쪽과 남쪽 일부에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건, 끓어오르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서서히 미쳐간다는 뜻이다. 하이파 대학에 갔다가 주저앉아 트래킹을 하기로 했다. 학교 주위로 이어진 계곡이 나할 갈림גלים인데, 파도 타는 것처럼 갈멜의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밀려온다. 나할 갈림 남쪽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나할 켈라흐כלח이다. 창세기 10장에 시날 땅 갈레가 나오는데 이 단어가 כ.. 더보기
베이트 카마, 네게브 어제 비도 쏟아졌는데 오늘은 완연히 봄날씨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네게브의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어쩌다 보니 네게브 순회가 됐다. 키부츠와 모샤브들이 키우는 복숭아 나무들에 꽃이 만발이다. 이스라엘 농부들은 복숭아에 엄청난 애정을 쏟기 때문에 진작부터 새의 공격을 피해 전부 망을 쳐놓는다. 복숭아꽃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원에 복숭아 나무를 심어 놓으면 좋다. 정원이 있는 건 참 좋은 일인데, 도심이 아닌 모샤브의 정원은 초봄에 깨어난 뱀들의 방문을 받기가 쉽다. 남의 집 고양이들조차 잘 대접해야 하는 이유다. 자기 집이 아닌 줄 알기 때문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 안 들어온다. 베이트 카마로 가는 길은 일년 중 2-3월이 가장 아름답다. 원래 네게브의 2월은 다롬 아돔 축제 때문에 .. 더보기
0301 나타프, 그린 라인 유발 하라리 교수가 메술랏 찌온에 살다가 카르메이 요세프로 이사를 갔단다. 텔 게제르가 한눈에 보이는 손꼽히는 부자 동네다. 대지와 건물까지 샀으면 거의 천만 셰켈쯤 들었을 거다. 대출 안 끼고 현찰로 샀겠지. 책 4권 판 인세가 얼마나 많이 들어왔으면 이스라엘 같은 나라에서 50도 되기 전에 집을 사나. 내 집 장만의 꿈이 요원하다고 살고 싶은 집이 없는 건 아니다. 이스라엘 집 값이 점점 올라가면서 가능성은 더 희박해지고 있지만, 틈나는 대로 보아둔 집을 자주 보러 간다. 그린 라인 근처, 유다 산지의 아름다움이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67년까지 요르단과 국경 바로 옆이었다. 하르 루아흐, 바람(영혼)의 산을 정원처럼 내다보는 곳이다. 저 집 주인은 30대에 하이텍크 회사를 차려서 5두남이나 되는 .. 더보기
Alonei Abba Abba Berdichev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에 자원해 나치 독일과 싸우기 위해 하나 세네쉬와 함께 유고슬라비아로 파송된 공수병이었다. 하나 세네쉬는 이때 포로로 잡혀 사망한다. 1945년 8월 세네쉬의 유명한 시, '케이사랴로 걷는 길'이 공개됐고, 이후 홀로코스트에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가 되었다. Alonei Abba는 아바의 통나무들이란 뜻이다. 하부 갈릴리 지역인 이 일대에 Oak가 많다. 그런데 이곳은 1945년 전까지 독일 템플러들의 식민지인 발드하임Waldheim 생명의 숲,이라 불렸다.재건을 준비하고 있는 독일 에반젤리컬 교회, 1914-21년 사이 하이파 건축가 독일인 오토 루츠가 지었다. 알로네이 아바에서 태어난 가수가 슐로모 아르찌이고, 이곳에서 생을 마친 작가는 메이르 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