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고통만이 선택지도 아니다. 일상이 고달프게 느껴지면 여행이 답이다. 비행기 타지 않아도 숨통이 틔이는 곳, 골란 고원으로 간다. 지평선이 하늘과 닿아 있는 풍경은 의외로 평화롭다.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 내게 골란고원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였는지 새롭게 깨달았다. 북부 레바논 전선 때문에 금지됐던 북부 여행이 재개되자마자 집을 나섰는데, 길에서 나와 비슷한 상태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증상은 한마디로 호흡 곤란이었고, 골란 고원만이 그들의 허파를 구원해 줄 대안이었다.
텔단과 바니야스에서 헤르몬 산 쪽으로 내려와 마사다나 부카라에서 호무스와 팔라펠을 먹으면, 더는 할 일이 없다. 도시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당황할 수도 있는데, 골란 고원은 목표 없이 그냥 아무데나 흘러다닐 수 있다. 보통은 그나마 골란고원의 큰 도시 카쯔린으로 가지만, 시간이 많으니 고넨 쪽으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959번 도로 변에 작은 정착촌이 있다. 브루힘, 환영이라는 뜻인가. 문자적으로 blessed이란 뜻이다. 1967년 전쟁 전까지 500명 규모의 시리아인 마을 카나베가 있었던 곳이다. 1981년 이스라엘 국가에 병합되면서 정착 운동이 시작됐지만 주변이 전부 시리아 군이 묻은 지뢰밭이라 쉽지 않았다. 1990년대 해체된 소련에서 러시아계 유대인들이 밀려오면서 간신히 정착촌 면모를 갖게 됐다. 훌라 호수가 내려다보이지만, 여기서 카쯔린까지도 30분이 걸리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이다. 왜 북부 지방의 개발이 이렇게 늦어지고 있을까. 법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절 가보니 저렇게 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1981년 동예루살렘과 골란고원을 병합한다. Annexation, 실효적 점유의 시작이다. 1967년 6일 전쟁으로 차지한 영토는 이후 평화회담의 조건이 돼야 했지만,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인정도, 협상도, 평화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게다가 시리아는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골란고원에 눈 돌릴 여유가 없었다. 이스라엘의 국내법과 상관없이 국제사회는 여전히 이들 지역에 정착촌을 세우는 것은 불법이라고 보았다. 그렇게 어정쩡하던 곳을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이 동예루살렘과 골란고원 병합을 인준해 준다. 미국 혼자 인준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달라진다. 미국 대사관이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옮겨왔다. 골란고원의 법적 지위가 견고해진 것이다. 그래서 브루힘이란 이름의 마을은 이름을 바꾼다. 라마트 트럼프, 트럼프의 언덕이다.
트럼프 대통령 두 번째 임기에는 독수리까지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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