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란고원과 상부 갈릴리 사이, 손가락처럼 생겼다 해서 에쯔바 하갈릴אצבע הגליל로 불리는 지역이 있다. 영어로 galilee panhandle이다. 대개 이런 용어는 미국 출신들이 붙인 것 같은데, 텍사스나 플로리다 panhandle 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갈릴리의 팬핸들은 실제 자연 경계라기보다 레바논과 국경이 만들어낸 지정학적 의미가 크다. 최북단 국경 도시 메툴라에서 키리얏 슈모네를 거쳐 대략 키부츠 고넨까지다. 한마디로 2024년 내내 헤즈볼라가 쏘아보낸 로켓에 가장 시달린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헤즈볼라와 휴전이 유지되면서 출입은 자유로워졌지만, 그래도 더 북쪽으로 가기는 망설여져서 팬핸들의 최남단이라 할 만한 훌라 계곡에 다녀왔다. 성경이 메롬 물가로 옮기는 곳이다.

메툴라와 함께 로스칠드 남작의 후원으로 건설된 모샤바 로쉬 피나. 아마도 헬몬산을 조망하는 가장 아름다운 지점일 거다. 정말 그림 엽서 같은 동네다.

19세기 알리야 시대 조성된 7대 모샤브 중 하나인 예소드 마알라의 복숭아 밭이다. 갈릴리 팬핸들에서는 대개 전망의 기준점이 헬몬 산이다. 1월 말에 눈이 많이 와서 헬몬 산이 모처럼 새하얗다.

훌라 공원 단지의 리조트 호텔 갈릴리온 베란다에서 보이는 헬몬 산 풍경이다.

훌라 공원은 입장료 대신 인당 10셰켈 공원 유지를 위한 후원금을 받는다. 하지만 훌라 공원의 최고 인기템을 누리려면 돈을 물쓰듯 써야 한다. 그 돈 쓰는 게 아까운 삶이라면 딱한 거라고 각오하고 있다.

훌라 계곡에 어쩌다 이런 호수가 생겼는지는 이스라엘 자연보호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이번 여행은 치유를 위한 것인 만큼 인간의 쟁투 같은 것은 넘기기로 한다.


훌라 계곡은 이미 두루미crane עגור의 서식지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두루미들은 인간이 가까이 가면 날아가게 되어 있다. 이들을 가까이서 보려면, 별도의 프로그램을 신청해야 한다. 돈을 물 쓰듯 써야 한다니까. 저 트럭은 시간마다 두루미 사이를 지나며 먹이를 뿌려준다. 살충제가 아닌 줄 알면서도 피하게 된다.

식사 중이라 이렇게 사진 촬영이 가능한 것이다.

붉은 머리의 두루미를 한자로 쓰면 학鶴 이다. 새라는 걸 퍽이나 강조하는 한자 조성이다. 우리나라 화폐 이미지 중에 500원짜리 동전을 두루미가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이 새가 유교 선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왜? 두루미들의 울음소리는 선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무튼 동전마저 유교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이 새가 우리네 정서에 그닥 가까운지는 모르겠다. 두루미와 학이 같은 조류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많던데.
우리가 울음이라고 여기는 새들의 소리를 히브리어는 노래라고 한다. 노래가 비명 같은데.

또 한 번 한숨나는 일이다. 요즘 세대의 비극은 저 손 안에 쥔 것에 기인한 바 크다. 귀청이 따가울 정도로 시끄러울 뿐만 아니라, 계절을 따라 어김없이 이동하는 두루미들의 장광을 눈앞에 두고도 그게 대단한지 모르는 세대. 저 아이들은 게임기에서 눈 한 번 떼지 않았다.

이 풍경의 아름다움을 느낄 줄 모르는 세대라니, 너무 비극이다.


훌라 공원을 방문할 때 언제나 변수는 숙박시설이다. 평소에는 조금 멀지만 메툴라에서 자는 걸 선호한다. 이스라엘 관광부가 휴양지 컨셉으로 세운 갈릴리온 호텔은 예쁘게만 보이지 그닥 쓸모가 없다. 한여름 땡볕 아래 저기서 수영하는 게 휴양이 되겠나. 가족 단위 투숙객을 위한 좀 더 경제적인 숙박시설이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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