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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파라샤 바야크헬 (출 35-38) 분석하기 좋아하는 신학자들은 출애굽기를 보통 두 부분으로 나눈다. 여호와의 강력한 구원 행위가 나타나는 전반부 내러티브와, 모세를 통해 법과 제의가 드러나는 후반부 여호와의 자기 계시다. 레트로스펙티브(1-18장)와 프로스펙티브(19-40)라고도 표현한다. 그 터닝포인트에 해당하는 18장은 이트로를 통해 여호와가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시며 그들을 통해 이루시려는 특별한 목적을 드러낸다. 히브리어 원문으로 읽는다고 이런 분석이 똑떨어지진 않는다. 그래도 주석적 선입견이 있으면 분명 그렇게 읽히긴 한다. 그런데 바야크헬에서는 전적으로 텍스트의 톤이 달라지는 걸 느낀다. 주어가 모세다. 여호와의 미슈칸을 실제로 제작하는 일지다 보니,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기술자들에게 내리는 맹령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트루.. 더보기
파라샤 트루마 (출 25-27) 나는 이런 본문을 읽을 때 희열을 느낀다. 알다가도 모를 경지를 넘어, 머리를 뜯어도 모르겠는 본문이다. 그 무지의 부분이 하나님과 대화를 통해 채워나가야 할 신비의 영역 같다. 이 본문을 수십 번 넘게 읽었지만 아직도 모르겠다. 시청각 교재도 수없이 봤지만 글쎄, 아닌 것 같은 게 더 많다. 위로가 되는 건 유대인들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도 다 외우기 때문에 모른다는 생각을 잘 안 한다. 모세는 다 알았을까? 만든 사람은 어쨌든 모세가 아니다. 이 본문과 뒤에 나오는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작업 일지와 비교해 보면 조금씩 다른 지점이 있다. 아마 작업자들이 채워 넣은 부분일 것이다. 그게 너무 신기하다. 이 신기함이야말로, 나보다 수천 배는 히브리어를 잘하면서도 토라 본문에 전혀 흥미가 없다는 이스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