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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ha

파라샤 바야크헬 (출 35-38)

분석하기 좋아하는 신학자들은 출애굽기를 보통 두 부분으로 나눈다. 여호와의 강력한 구원 행위가 나타나는 전반부 내러티브와, 모세를 통해 법과 제의가 드러나는 후반부 여호와의 자기 계시다. 레트로스펙티브(1-18장)와 프로스펙티브(19-40)라고도 표현한다. 그 터닝포인트에 해당하는 18장은 이트로를 통해 여호와가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시며 그들을 통해 이루시려는 특별한 목적을 드러낸다. 히브리어 원문으로 읽는다고 이런 분석이 똑떨어지진 않는다. 그래도 주석적 선입견이 있으면 분명 그렇게 읽히긴 한다. 

그런데 바야크헬에서는 전적으로 텍스트의 톤이 달라지는 걸 느낀다. 주어가 모세다. 여호와의 미슈칸을 실제로 제작하는 일지다 보니,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기술자들에게 내리는 맹령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트루마 테짜베 키티사를 계속 읽어오지 않았다면 미슈칸의 창조자가 모세라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즉 바야크헬은 모세가 여호와의 대언자, 백성을 위한 중재자라는 걸 대놓고 과시하는 본문이다. 그거 봐라, 그러신다 하지 않았나.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 하나님인데도, 그분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듣지 못한다. 무서워서. 여호와도 그들에게 접근하지 않으신다. 죽일까봐. 하지만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백성이고, 그래서 그분의 말씀과 의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인본주의는 여기서 실존주의 철학의 자리를 발견한다. 자기 신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 백성의 불안함. 샤머니즘 DNA 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안함을 자신보다는 외부 요인에 두는 듯하다. 최근 대박난 샤먼 영화가 왠지 터무니없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다. 너무 얇다. 인간의 공포란 그렇게 작정하고 놀래키려는 외부의 위협이 아니다. 나쁜 신 좋은 신 가려서 하는 패싸움도 아니다. 자기 신이지만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적 불안함이, 중재자를 요구하는 신과의 간극이 자신의 현 존재를 위협하는 것이다. 그래서 질문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있는가. 아예카, 심상치 않은 나무 열매를 먹고 눈이 밝아진 아담이, 아우 헤벨을 죽인 가인이 그들의 신으로부터 들었던 질문이다.  

  

1알리야 35:1~20 

  •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모아(바야크헬) 여호와의 명령을 전한다. 먼저 완전한 안식일을 당부한다. 특히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라는 그 유명한 미쯔바가 여기 나온다.
  • 모세는 백성에게 자기 소유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게 한다(트루마).
  • 또 지혜로운 자는 와서 재능기부를 하라고 청한다. 여호와의 미슈칸과 그 안에 들여놓을 성구들과 제사장의 예복이 해당 과제다.  

 

2알리야 35:21~29

모세의 당부를 듣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마음이 감동된 자와 자원하는 자가 나왔다. 그래서 헌금을 작정하는 일은 그 자리가 아니라, 한참 숙고한 다음이어야 한다. 그냥 예물을 가져온 사람들도 있지만, 재능을 발휘한 여인들이 특히 있었다. 이들이 실을 뽑아내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이 여인들이 드렸던, 시간과 재능의 지원은 가벼운 게 아니었다.

 

3알리야 35:30-36:7

재료 목록이 채워지고 나서 브살렐(하나님의 그림자)과 오홀리압이 선택된다. 모세는 그들을 불러 백성이 바친 예물을 내어준다. 백성이 바친 예물의 전권을 받은 사역자들의 마음을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전권이 있었지만, 불필요하게 낭비되게 두지 않았다. 하던 일을 중지하고 모세에게 와서 백성이 그만 가져와야 한다고 건의한 것이다. 헌금이라서, 그 정성의 극진함에 기대 사욕을 채우는 자들이 아니었다. 이에 모세는 명령한다. 성소에 드릴 예물을 그만 만들라. 한국 교회와 사역자들은 이 정지 명령을 내렸나? 

 

오토만 제국 시절 에레츠이스라엘로 돌아온 유대인 중에 보리스 샤츠가 있었다. 그가 세운 미술 디자인 학교가 베짤렐 스쿨이다. 성경과 시오니즘을 연결해 독특한 아르누보 상징주의를 선보였다. 예루살렘 비엔날레의 보금자리다. 

 

4알리야 36:8~19

지붕 역할을 할 여러 겹의 휘장을 만든다. 여호와의 미슈칸에서 가장 귀하고 번쩍이는 걸 먼저 만들지 않았다. 내 사역의 지붕 덮개를 내팽개치고, 빛나는 뭔가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5알리야 36:20~37:16

미슈칸의 널판과 은받침과 널판을 연결하는 막대를 만들어 텐트의 세 면을 세운다.

성막의 입구와 성소의 입구에 세워질 기둥과 받침을 만든다.

브살렐이 궤와 속죄소와 케루빔과 상과 부속 기구들을 만든다. 

 

6알리야 37:17~29

브살렐이 메노라와 분향단을 만든다.

 

7알리야 38:1~20

브살렐이 번제단, 물두멍과 받침, 뜰을 구성할 말뚝과 받침과 린넨 천으로 울타리를 만든다.

 

하프타라는 열왕기하 11:17-12:17이다. 여기에 두 절을 더 읽는데, 사무엘상 20:18, 4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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