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실에서 성경을 읽는 것, 특히 이런 본문을 읽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종교는 그 생리에 동의하지 않는 이의 눈에는 우스운 논리이다. 나는 이 파라샤에서 샬롬을 얻지 못했다. 하레딤 정당이 예루살렘 시의회 다수를 차지하면서 그야말로 머리를 들어올렸다(티사).
1알리야 30:11-31:17
- 이스라엘 백성의 머리를 들어올릴(숫자를 셈할) 때 20세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은 재산에 관계없이 반 세겔을 바쳐야 한다. 이는 질병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그 수익금은 회막 봉사에 쓴다.
-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어, 아론과 제사장들이 손발을 씻게 한다. 씻고 회막에 들어가야 죽음을 면한다.
- 몰약, 계피, 창포에 올리브기름을 섞어 향 기름, 즉 특별 연고(관유)를 만든다. 성막의 성구들과 제사장에게는 바르되, 사람이 사사로이 이를 만들거나 몸에 바르면 백성에서 끊어진다. 왜 이렇게까지 금해야 하나?
- 세 향품에 유향, 레보나를 섞어 향을 만들고 소금을 치고 곱게 찧어서 증거궤 앞에 둔다. 이 향 역시 사사로이 만들면 백성 가운데 끊어진다.
-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만들도록, 창조를 흉내낼 수 있도록 선택한 이들은 유다 지파 베짤렐과 단 지파 오홀리압이다. 특히 베짤렐이 대장장이이자 보석 세공사다.
- 이 모든 것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안식일을 지키는 게 우선이다. 안식일에 일하면 죽는다.
2알리야 31:18-33:11
- 이것으로 여호와의 긴 당부가 끝났다. 이 모든 내용을 하나님은 친히 증거판 둘에 쓰셨다. 뭘 쓰셨을까?
- 백성은 더딘 모세를 기다리다 아론에게 '엘로힘'을 만들어 달라고 조른다. 이에 아론은 그들에게서 금 코걸이(네젬)를 받는다. 우리말 성경이 금고리를 녹여 새로운 틀에 맞춰 만든 것 같은 해석을 했는데, 히브리어 원문은 간단하다. 조각칼(stylus)로 create해서, 그것을 송아지 마스크(עגל מסכה)로 make했다. 이때 만들다는 동사는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모방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미슈칸, 성막 역시 만들었다. 이어서 선포하기는데, 이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엘로힘이라”는 것이다. 우상숭배의 원형이 여기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구원한 신의 형상을 만들고 싶었다. 당신을 위해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당췌 이해가 안 된 것이다. 그들은 희한한 이방신을 만든 게 아니라, 하나님을 송아지 모양으로 해석한 것이다. 에겔 마쎄하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른다. 송아지 몸체 전부가 아닌 상체 부분일 수도 있다. 왜 하필이면 송아지인가. 애굽의 신 하토르의 아들 Apis니까.
옛날옛날, 민들레영토라는 커피숍이 있었다. 주인이 기독교인이었는데 기독교 문화에 꽤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았다. 이 커피숍이 동물 조각상을 문에 늘어놓곤 했는데 하필 거기 젖소도 있었다. 거룩하지 못한 자본 시장에 뛰어들어 기독교 문화 운동을 핑계로 우상숭배를 한다는 '정통파'의 주장이 제기됐다. 아마 근거가 이 본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용감해서가 아니라, 저들의 무식이 답답해서 반박하고 싶었다. 솔로몬이 만든 성전에는 거대한 청동 바다가 있었는데 이를 받치는 게 12마리 소였다. 애굽의 아피스 신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채용되어 이들의 엘로힘인 여호와의 메타포로 자리잡았다.
- 아론은 제단을 쌓고 다음날을 여호와의 명절(하그)로 선포했다. 이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총평이 "네가 인도해 낸 네 백성이 부패했다"이다. 뒷덜미가 뻣뻣한 백성인 것이다. 죽은 시체나 마찬가지란 뜻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쓸어버리고 모세의 나라를 새로 만드실 작정이시란다. 모세는 왜 이를 거절했을까. 어쨌든 여호와는 모세의 반대 때문에 뜻을 돌이키신다.
- 또 다른 버전이 이어진다. 여기에는 여호수아가 등장한다. 모세는 노한다. 증거판도 깨부수고 에겔도 부순다. 이에 대한 아론의 해명은 백성이 가져온 금을 "불에 던지자 이 에겔이 나왔다"는 것이다. 메타포로 그쳤어야 할, 그저 시청각교재에 불과한 대상에 특수효과를 입히는 게 우상숭배다. 모세의 총평은 이것이다. "아론이 프라오하니 백성이 파루아"하다. 애굽의 파라오를 워드플레이한 것이다.
- "누가 여호와를 위하는가?" 모세의 이 질문이 우상숭배에 대한 해독제다. 왜 엘로힘의 이미지가 필요했나. 그것이 여호와를 위해서였나? 미천한 인간을 위한 행위에 과한 의미를 부여하는 자들이여, 레위인들의 행위에서 깨달으라.
- 모세는 다시 산으로 올라가 백성을 위해 속죄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 가운데 거하실 수 없는 분이다. 백성을 멸망시킬까 봐 그들 가운데 임재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모순은 슬프다. 구원은 다시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그분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하실 것이다.
-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미슈칸을 진영 밖에 멀리 두고 이름을 붙힌다. 오헬 모에드, 정해진 때의 장막이다. 하나님이 머무실 때와 떠나실 때, 회막에 들어갈 때와 나갈 때가 있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의 임재를 훼방한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았다.
3알리야 33:12~16
모세는 하나님께 동행을 청한다. 죄로 인해 장래가 막혔다 할지라도 하나님만이 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길을 알게 해 달라고 간구할 수밖에 없다.
4알리야 33:17~23
하나님은 모세에게 당신을 보이신다. 하지만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으므로 모세를 반석에 세워두고 지나가실 때 손으로 덮으실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등만 볼 것이다. 나는 종교 행위가 이와 같다고 여긴다. 하나님을 보려고 하지만 그럴 수 없으며, 그분의 등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일.
5알리야 34:1~9
하나님은 모세에게 깨뜨린 돌판 둘과 같은 것을 준비해 다시 시나이 산에 오르게 하신다. 그리고 여호와가 강림하신다. 여기서 하나님의 성품 13가지י"ג מידות가 드러난다. יְהוָה | יְהוָה | אֵל | רַחוּם | וְחַנּוּן | אֶרֶךְ אַפַּיִם | וְרַב-חֶסֶד | וֶאֱמֶת | צֵר חֶסֶד לָאֲלָפִיםנֹ | נֹשֵׂא עָוֹן | וָפֶשַׁע | וְחַטָּאָה | וְנַקֵּה 유대인들은 죄 짓고 나서 이 13가지를 암기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익숙치 않지만, 인간의 본성이 죄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속죄를 촉구하는 것만큼 바람직한 일도 없다. 모세는 하나님의 동행으로 백성의 죄악이 사해졌음을 입증해 달라고 간구한다. 두루마리에는 נֹצֵר חֶסֶד לָאֲלָפִים에 있는 נֹ 위에 점이 찍혀 있고 글자가 크게 확대되어 있다. 영원을 뜻하기 때문이다.
6알리야 34:10~26
여호와의 언약이다. 가나안 땅에서 원주민을 몰아낼 테니 그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는 경고다. 그들이 하는 것처럼 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여호와 신앙은 그분이 하신 일을 때마다 기억하는 것이다. 세 번의 절기가 나오는데, 하그 마쪼트, 하그 샤부옷, 하그 아시프다. 무교병을 먹는 절기, 그로부터 7주 후를 지키는 절기, 열매를 따는 절기 세 번, 하나님 앞에 보여야 한다. 초태생을 바치고 안식일을 지키고 유교병으로 제사하지 말고 유월절 양을 다음날까지 남기지 말고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아야 한다.
7알리야 34:27~35
모세는 40주야 동안 하나님과 함께 머무르며 먹지도 마시지조 않았다. 돌판을 들고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났다. 종교인이 종교행위를 하는 목표가 이것일까. 광채에 놀란 백성이 모세를 피하는데도, 모세는 그들을 불러 하나님에 대해 가르친다. 모세는 말을 마치고 나서 베일로 얼굴을 가린다. 하나님과 함께 했다는 아무런 표식도 없는 인간들은 대체 종교를 뭘로 여기는 걸까. 취미인가.
하프타라는 열왕기상 18:20–39이다. 송아지를 통째로 태우는 단신교 제의 장면이다.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는 한 사람, 엘리야의 외로운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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