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막절은 티슈레이 15일부터 8일 동안이다. 워낙 파란만장한 명절이라 8일에 걸쳐 명칭이 따로 있다.
- 1일 명절חג
- 2일-6일 홀 하모에드חול המועד
- 7일 호샤나 라바הושענא רבא
- 8일 슈미니 아쩨레트שמינית עצרת 여덟 번째 날의 성회라는 뜻인데,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지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9일째 지키던 심핫 토라שמחת תורה와 통합됐다.
날마다 파라샤 낭독이 있지만 명절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날만 파라샤를 하는 편이다. 나머지는 명절에 읽은 본문을 다시 읽거나 확대해서 읽는 방식이라 안 읽어도 티가 안 난다.
- 첫째 날 명절 레위기 22:26-23:44, 마프티르(일종의 부록) 민수기 29:12-16, 하프타라 스가랴 14:1-21
- 둘째 날 레위기 23과 민수기 29, 하프타라 열왕기 8:2-21
- 일곱째 날까지 민수기 29장의 엇비슷한 본문을 찔끔찔끔 읽는다.
- 여덟째 날 심핫 토라: 파라샤 베조트 하브라하(신명기 33장), 창세기 1:1-2:3, 민수기 29:35-30:1, 하프타라 여호수아 1:1-18
잠깐, 초막절은 다섯 두루마리 중 전도서도 읽어야 한다. 언제 읽나? 홀 하모에드 중 샤밧에 읽는 게 정답이다. 그런데 2023년은 홀 하모에드에 샤밧이 없다. 시작과 끝이 모두 안식일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아스포라 유대교는 전도서 두루마리를 슈미닛 아쩨레트에 읽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이날이 심핫 토라와 통합됐고, 이날은 일명 춤추는 날הקפות이기 때문에 엄청난 분량의 코헬렛을 들이밀 수가 없다. 해결책은 첫째 날이다. 아직 많이 흐트러지지 않았을 테니까. 파라샤를 마치고 메길라를 꺼낸다. 파라샤든 메길라든 얼마나 빨리 읽는지 쓴웃음이 난다.
어쨌든 우리도 성문서כתובים인 전도서를 읽을 기회는 많지 않다. 올해는 차분히 코헬렛을 읽어 보기로 한다.
유대교가 초막절에 코헬렛을 읽는 것은 일년 중 가장 풍성한 시즌에 인간 삶의 의미를 돌아보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참 읽어도 거창한 삶의 비밀 같은 건 안 보인다. 돈כסף에 욕심내지 말라는 건 확실하다. 다시 처음부터 읽는다. 몇 번을 다시 시작하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오늘날 히브리어 본문은 코덱스로 되어 있어도 외국인인 나한테 두루마리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내용이 고만고만해서 어디서 중단했는지를 찾기가 어렵다. 일단 멈추었다가 다시 읽으려면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1. 코헬렛이라는 단어가 본문에서 7번 언급된다. 1장에 세 번, 7장에 한 번, 12장에 세 번(정관사를 붙인 하코헬렛 포함).
3인칭 코헬렛으로 시작된 본문은 1:12에서 "아니 코헬렛", 내가 코헬렛으로 전환된다. 1인칭 코헬렛의 주장이 12:7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12:8에 다시 3인칭 코헬렛이 나와 자기 아들에게 당부한다. 7:27의 코헬렛이 애매한데 동사가 여성형이다. 아무튼 전도서라는 책의 본질은 코헬렛의 입을 빌어 하는 말이므로 그가 누구인지와 직결된다. 우리말로 코헬렛을 설교자, 전도자 등으로 번역해 왔지만 맞지 않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듣거나 말거나 자기 의견을 내놓는 사람에 가깝다. 요즘 등장한 팟캐스터가 정확한 맞춤말이다.
2. 팟캐스트를 아무거나 듣지 않는다. 누가 하는 말이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헬렛의 자기 소개가 중요하다.
"예루살렘 왕이다." 원래 고대 사회에서 왕이란 권력의 끝판왕이라 더 설명할 것도 없다.
"사업을 크게 했다. 집과 포도원, 동산과 과수원을 만들고 과목을 심고 못을 파고 남녀 노비를 사고 소유가 많았다." 한마디로 부자였다.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치고 깊이 연구하고 잠언을 짓고, 아름다운 말로 진리를 정직하게 기록했다." 지혜의 끝판왕이다.
팟캐스터가 논점 없이 질질 끝면 아무도 안 듣는다. 1장 3절에 벌써 주제가 나온다. מַה-יִּתְרוֹן לָאָדָם 인간에게 유익이 뭐냐는 질문이다. 팟캐스터의 자기 소개가 이 정도 질문에 답할 만하다고 보니까 계속 듣는 거다.
3. 유대교는 이런 점을 고려해 코헬렛이 솔로몬 왕이라고 본다. 솔로몬 왕의 별명이 여디디야(사랑받는 자-삼하12;25)와 슐로모 코헬렛이다. 유대교에 따르면 솔로몬이 노년에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성령이 그를 위해 짓게 하신 세 권의 책이 잠언, 아가, 전도서다. 기독교도 이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4. 잠언 30장에는 야게의 아들 아굴אָגוּר בִּן-יָקֶה 이 나온다. 지혜 모음집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다. 이 지혜자는 단지 지혜를 모으기만 한 게 아니라 자기 말을 회중 앞에서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라쉬는 이 또한 솔로몬 왕이라고 보았다.
5. 코헬렛이 히스기야 왕과 궁정 서기관들에 의해 편집되었다는 전통도 있다.
6. 초막절 도중 안식일에 코헬렛을 읽는 이유는, "일곱에게나 여덟(사람)에게 나눠 주라"(전 11:2) 때문이다. 초막절이 7일간의 절기이고 8일째 성회로 모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솔로몬 왕이 초막절에 군중 앞에서 두루마리를 읽었을 가능성 때문이다. 성전 봉헌식이 초막절에 있었다. 코헬렛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절은 2장 10절이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וְכֹל אֲשֶׁר שָׁאֲלוּ עֵינַי, לֹא אָצַלְתִּי מֵהֶם: לֹא-מָנַעְתִּי אֶת-לִבִּי מִכָּל-שִׂמְחָה, כִּי-לִבִּי שָׂמֵחַ מִכָּל-עֲמָלִי, וְזֶה-הָיָה חֶלְקִי, מִכָּל-עֲמָלִי
세상 기쁨의 무익함을 조롱하고 본질적이고 참된 토라의 기쁨을 알아보는 현자로 솔로몬이 제격이다.
7. 코헬렛은 '지혜 문학'에 속한다. 세상에서 인간의 지위, 신의 섭리, 정의와 같은 보편적인 철학적 질문을 다루는 문학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인간의 의미와 행복해지기 위한 비결에 대해 논리적, 철학적 고찰을 한다. 지혜, 정의, 성, 가족, 돈, 명예 등 세상이 제공할 가능성이 있는 행복의 요인들을 차례대로 검증하고, 이들이 결코 인간이 추구하는 절대적인 행복과 마음의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8. 코헬렛이 행복의 요건을 검증하는 방식은 일정한 순서대로 진행된다. 즉 삶의 의미가 될 수도 있을 선한 것을 제시하고, 이를 먼저 칭찬한다. 그런 다음 이를 거부하고 행복의 비결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코헬렛은 본인이 부자라서 그런지 재산을 축적하고 부를 늘리기 위해 수고הֶעָמֵל 하는 데 대한 통찰력이 남다르다. 죄인이나 재물을 위해 수고하고(2:26), 누구도 재물로는 만족하지 못하며(4:8, 5:9), 보물의 주인은 잠도 설치고(5:12),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온 대로 돌아갈 것이라(5:14)는 결론이다.
9. 코헬렛은 모든 것을 들었으니 그 명령대로 하라고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미쯔보트를 지키는 것이다. אֶת-הָאֱלֹהִים יְרָא וְאֶת-מִצְוֺתָיו שְׁמוֹר 왜냐하면 "이게 사람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כִּי-זֶה כָּל-הָאָדָם 코헬렛은 결론이 참 멋진 책이다.
10. 코헬렛이 반복하는 "헤벨" 즉 헛됨은 신약 성경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헤벨을 옮긴 헬라어 ματαιότης는 로마서에 등장한다. 창세기 3장 이래로 죄 아래 있게 된 피조물은 자기 뜻이 아닌데도 허무한 데 굴복했던 것이다. 이 허무함, 무익함은 비움과도 관련이 있는데, 빌립서는 예수님이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취했다고 말한다. 그분의 십자가는 인생을 헤벨로 낙담케 한 결정적 원인인 사망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한편 심핫 토라에는 아론 하코데쉬에 있는 토라 스크롤을 꺼낸다. 거의 모든 남성이 비마에 올라와 이 스크롤을 만지게 되어 있다. 코헨, 레위가 먼저, 그외, 어린이들 순서로 올라가고, 하탄 토라와 하탄 브레쉬트가 베조트 하브라하의 마지막 부분과 창세기 본문을 읽는다. 하탄 토라와 하탄 브레쉬트가 되는 것은 특별한 영예이다. 마프티르까지 읽고 하프타라는 암송한다. 이날 하그바하와 글릴라가 있다. 스파라딤은 토라를 읽기 전에 한다.
하그바하הגבהה는 들어올린다는 뜻이다. 토라 스크롤을 들어올리자면 손목 힘이 어마어마해야 한다. 떨어뜨리는 불상사라도 일어나면 아마 그 회당은 향후 일 년은 넛때문이야 싸움이 날 것이다. 일순 긴장감이 도는 걸 느낄 정도다. 하그바하를 맡는 건 대단한 영광이지만, 할 수 없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 스파라딤은 일단 들어올려서 세 칼럼까지 펼치는데, 이때 봉제선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사고가 났을 때 봉제선 이하로 수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토라 스크롤은 수천 세켈의 비용이 든다. 한 바퀴를 돌아 전체 회중에게 보인다. 현대 기독교 예전을 조형하다시피 한 위대한 랍비 조셉 카로는 하그바하를 바라보는 게 모든 남성과 여성의 의무라고 했다. 그래서 회중은 어느 본문인지 알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소머즈도 아니고 무슨 수로 저 먼 거리에서 알아보겠나. 전통에 따르면 하그바하를 하고 나서 파라샤 리딩을 했다는데, 요즘은 거의 파라샤 리딩을 먼저 하고 나서 하그바하를 한다. 스파라딤은 펼쳐진 토라를 다시 비마에 올리고 접은 다음 미리 마련된 의자에 앉는다.
글릴라גלילה는 둘둘 만다는 뜻이다. 하지만 스파라딤은 비마 단상 위에서 두루마리를 말기 때문에, 글릴라가 커버를 씌우는 일 dressing의 개념으로 통한다. 글릴라를 맡아 하는 사람을 골렐גולל roller라고 부른다.
아슈케나짐은 토라 본문을 좀 더 많이 펼쳐서 자기 쪽을 향하게 들고 한바퀴 돈 다음 스크롤이 펼쳐진 상태로 그냥 앉는다. 그럼 골렐, 롤러가 다가와 함께 글릴라를 한다. 아슈케나짐은 글릴라의 rolling의 의미에 더 충실하려는 듯하다.
이후에 회당 안에서 הפקה ראשונה를 하고 오후에 오픈 공간으로 가서 הקפות שניות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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