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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ha

파라샤 미슈파팀 (출 21-24)

1월이 지나면 학교는 잠깐 소강상태다. 궤도에 올랐으니 그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개인 일정을 많이 잡는데 한 달 내내 가이드 스케줄에 끌려가다 보면, 출애굽기 중반 이후 파라샤를 거의 못 읽는다. 왜 이렇게 본문이 낯설지 싶어 보면 영락없이 이 부분이다. Exodus Code라 불리는, 맥락없이 열거된 법조항들이다. 2024년 2월 아무도 성지를 찾지 않고, 전쟁은 나를 출애굽기 읽기로 인도한다.   

 

1알리야 21:1–19
파라샤의 제목이기도 한 미슈파팀은 유대인이 지켜야 할 계명 미쯔바에서 논리적 합리성을 담고 있는 법률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명령하지 않으셨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당연히 지키게 되어 있는 내용,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 같은 것이다. 이에 대비되는 것이 후킴, 법령인데 초합리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다(많은 유대교 관습들이 여기 속한다). 또 다른 장르는 에도트, 즉 목격된 내용으로 토라에 나오기 때문에 따르는 미쯔바들이다. 이런 장르 구성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파라샤 '미슈파팀'에 나오는 53개 미쯔바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전제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가 인간으로서 당연하다고 느낀, 굳이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어도 하나님 백성이기에 따라야 하는 내용을 읽게 되는 것이다. 

 

  • '히브리 남종'은 남자 동족이기 때문에 영원한 종이 아니다. 6년 간 종이었다면 7년째 석방חפשי חינם돼야 한다. 유다 왕국은 훗날 이 미슈파트를 지키지 않아 하나님의 질타를 받는다 (하프타라가 예레미야 34장 희년 선포이다). 히브리 종의 가족은 주인에게 소유권이 있다. 가족의 속량은 거의 불가능한지, 히브리 종이 가족과 계속 살려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 '아름다운 구속'인가. 여기 골탕 먹은 인물이 야곱이다. 야곱은 아내들과 자식들의 속전을 치르는 불가능한 일을 속임수로 해낸 것이다. 그런데 속량을 포기한 히브리 종을 우리말 성경은 '재판관'에게 데려간다고 했는데 히브리 본문은 엘로힘, 신이다. 어디로 데려간 거지? 
  • '히브리 여종'은 7년째도 속량되지 않는다. 여종의 노동력은 성적 역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음식과 옷과 결혼권리 שְׁאֵרָהּ כְּסוּתָהּ וְעֹנָתָהּ 를 보장하지 않으면 내보내야 한다. 오나는 단순한 '동침'이 아니다. 
  • 사람을 쳐죽이면 반드시 죽인다. 모세가 떠오르는걸? 고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사람을 넘긴 경우라면 도망친다. 
  • 고의로 죽였으면 하나님의 제단에서조차 끌어내려 죽인다.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가서 제단 뿔을 잡았지만 솔로몬이 보낸 브나야가 그를 죽였다. 
  • 부모를 때리는 자와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인다. 이 두 구절 사이에 사람을 납치해서 팔아넘긴 자를 죽인다가 끼어 있다. 위치가 왜 여기 있게 된 걸까? 구절이 떨어진 효과는 부모를 때리는 것과 부모를 저주하는 게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묵상하게 된다. 아무튼 16절 사람을 납치해서 팔아넘긴 자들이 바로 요셉의 형들인데, 미드라쉬 엘레 에즈케라에 따르면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열 명의 현자들을 죽인 게 그 죄에 따른 결과다.  
  • 두 사람이 싸우다가 쳤는데 현장에서 죽지 않고 자리 보전을 하다 지팡이라도 짚고 일어나면, 친 사람은 형벌을 면한다. 살인죄가 상해죄로 넘어가는 것이다.  

 

2알리야 21:20–22:3
상해에 관한 미슈파팀이다.

  • 주인이 종을 때렸는데 바로 죽으면 형벌을 받지만, 하루이틀 연명하다 죽으면 죄가 없다. 종은 재산이기 때문이다.
  • 남자들이 싸우다가 임신한 여성을 쳐서 유산만 하고 다른 해가 없으면, 여자의 남편이 청구한 돈으로 갚는다. '재판장의 판결'בפלילים을 בנפלים '유산에 대해서'로 읽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 다른 해가 있을 때는 lex talionis, 히브리어로 עין תחת עין 법에 따른다. 생명은 생명,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는다. 화상은 화상כויה으로, 피가 난 상처는 피를 내는 상처פצע로, 멍이 들면 멍을 내는חַבּוּרָה 것으로 갚는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함무라비 법전과 아주 유사한 부분이다.  
  • 그런데 lex talionis에는 심오한 면이 있다. 눈과 이 자체가 인생과 맞먹는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다음 절에 이어서 나온다. 종의 눈이나 이를 상하게 했으면 그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 
  • 소가 사람을 치어 죽게 했으면 그 소는 돌로 쳐죽이고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소는 어지간하면 사람을 받지 않는다. 고대 사회에서 가축의 질병에 대한 이해가 크지도 않을 텐데 현명한 조처다. 이상한 소인 것이다. 주인은 죄가 없다.
  • 소가 사람을 받은 적이 있는데 주인이 단속하지 않아 사람을 죽이면 그때는 소는 물론 소의 주인도 죽인다. 주인이 살고 싶으면 생명을 대가로 제공해야 한다. 아들이나 딸을 내주는 것이다. 종을 죽였으면 은 삼십 세켈을 문다. 
  • 구덩이에 가축이 빠져 죽으면 구덩이 임자가 돈을 내고 죽은 가축을 차지한다.
  • 소끼리 싸워 한 마리가 죽으면, 산 소를 팔아 둘로 나눠 갖고, 죽은 소도 나눠 갖는다.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한 소가 명백하면 주인은 산 소를 내주고 죽은 소를 갖는다. 
  • 히브리 성경 21:37이 우리말성경 22:1이다. 가축을 도둑질해서 잡거나 팔았으면 소는 5배, 양은 4배로 갚는다. 도둑이 몰래 들어오면 돌로 쳐죽여도 되지만, 해가 뜬 상태에서 죽이면 죄를 묻는다. 도둑은 반드시 배상하되 배상 능력이 없으면 자기 몸으로 갚는다. 도둑질한 가축이 아직 도둑 손에 있으면 갑절로 배상한다.  

이 모든 내용에서 재산권을 보호하고 있다는 게 특이점이다. 

 

3알리야 22:4–26
절도나 횡령 등에 관한 미슈파팀이 나올 차례다.

  • 남의 밭이나 포도원에 피해를 입힌 경우이다. 이런 고약한 심보가 있나. 왜 남의 밭에서 자기 가축을 먹이나. 그랬으면 자기 밭과 포도원의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한다.
  • 밭에 불을 놓은 방화범은 배상한다.
  • 이웃에 맡긴 물품이 사라졌을 때, 도둑을 찾으면 그가 배상하고, 도둑을 찾지 못하면 물건 맡은 사람이 재판관 앞에서 심사를 받는다.
  • 이웃에 맡긴 가축이 사라졌을 때, 목격자가 없으면 여호와께 맹세하고 사건을 마무리하고, 맡은 자가 도둑 맞았으면 배상하고, 가축이 찢겼으면 그것으로 마무리하고, 임자 앞에서 가축이 사라지면 배상의 책임이 없다. 
  • 처녀와 잠을 잤으면 지참금을 지불하고 아내로 삼거나, 돈으로 배상한다. 
  • 무당מְכַשֵּׁפָה , 수간자, 이방신에 제사한 자는 죽인다.  
  • 히브리어 원문에 접속사 ve가 있다. 이와는 달리, 나그네, 과부, 고아는 구박하지 않는다. 이 세 계층의 사회적 지위가 앞의 세 계층과 다를 바 없다는 게 포인트다. 과부와 고아가 학대를 받아 여호와께 호소하면 여호와의 진노로 말미암아 학대한 자의 아내가 과부가 되고, 자녀가 고아가 될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실감난다.
  • 가난한 동.족.에게 돈을 빌려주었으면 이자를 받지 말고, 옷을 저당 잡았으면 밤에 돌려줘서 입고 자게 하라. 여호와는 자비로운 분이기 때문이다. כִּי-חַנּוּן אָנִי

 

4알리야 22:27–23:5
엘로힘(재판관)으로 시작해 송사와 관련된 미슈파팀이다.

  • 재판관이나 통치자를 저주하는 말라.
  • 초실물과 초태생을 여호와께 드리고, 초태생 동물은 생후 8일째 여호와께 제사로 드리라.
  • 절차대로 도살되지 않은 고기는 먹지 말라.
  • 위증에 주의하고, 다수 의견대로 편향되거나 가난한 자를 두둔하는 등 사법적 부패를 경계하라.
  • 원수의 것이라도 길을 잃은 동물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무거운 짐을 진 동물에게서 짐 내리는 것을 도우라. 적에 대한 인도적 처우를 당부하고 있다고 짐작할 만하다. 

 

5알리야 23:6–19

  • 분쟁 중인 가난한 자를 편들지 말라.
  • 거짓된 것으로부터 멀리 하라(거짓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고 주장들 한다.)
  • 뇌물을 받지 말라.  
  • 나그네를 학대하지 말라.
  • 농작물의 안식년 슈미타를 지키라.
  • 일주일에서 안식일을 지키라.
  •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
  • 세 번의 명절שָׁלוֹשׁ רְגָלִים에 여호와 앞에 나아가라.
  • 제물을 드릴 때 소제는 무교병이어야 하고, 명절의 기름(버터)는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고, 첫 열매ביכורים의 처음은 좋은 것으로 여호와께 드린다. 또 어미의 젖에 염소 새끼를 삶지 말라. 

코셔법의 근거인 19절 마지막 조항은 요리법이 지켜야 할 인도애를 가리킨다. 젖חלב은 아침까지 남겨두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어차피 버려야 한다. 희생제사를 마치고 고기를 요리해야 할 때 우유가 물보다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아마도 이교도의 관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금하는 이유는 영양학적 이유보다는 아무리 동물이라도 어미와 새끼를 한꺼번에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와 관련돼 있다. 이게 어쩌다 고기와 우유를 따로 먹으라는 내용으로 발전했을까. 


6알리야 23:20–25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지며 여호와의 육성이 나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 당신의 천사를 보낼 것인데,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천사의 말을 들으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갈 것이다. 또 그 땅에서 우상이 아닌 여호와만 섬긴다면 큰 상을 받게 되는데, 가나안의 적들이 그들 앞에서 쓰러지고 그들의 빵과 물이 축복을 받아 그들 가운데 질병이 없을 것이다.

엄청나게 탄탄한 논리 구조다. 하나님의 대리인, 약속의 땅으로의 여전, 그 땅의 미덕과 유혹, 백성의 승리, 축복의 약속. 


7알리야 23:26–24:18

여호와를 섬길 경우 받게 될 축복은 인구 증가이다. 여호와가 그의 '위엄אימה'과 '왕벌צרועה'를 먼저 보내 땅을 정복하게 하실 것이다. '왕벌'이 재미있는데, 히브리어 쯔루아는 여로보암, 혹은 그의 아버지 느밧의 어머니 스루아의 이름이기도 하다. 뭔진 모르지만 여호와에게 쓰임받은 도구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가나안 원주민을 쫓아낼 것이다. 하지만 땅이 황폐해지지 않도록 그 속도는 천천히 진행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국경은 홍해에서 블레셋 바다(지중해)까지, 광야에서 강(요르단)까지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기억해야 할 것은 가나안의 신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24장은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언약식이다. 중재자인 모세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모세와 아론과 70 장로가 산으로 올라갔으나 하나님 앞으로는 모세만 나아갔다. 모세가 여호와께 받은 것을 전하니 모든 백성이 이를 지키겠다고 언약했다. 모세는 이를 기록하고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한다. 모세가 제물의 피를 담아 백성에게 뿌리고 언약서를 낭독한다. 백성은 모두 이를 준행하겠다고 맹세한다. 모세와 아론과 아론의 두 아들과 70장로가 올라가 보니 하나님의 발이 청옥 같고 하늘 같았다. כְּמַעֲשֵׂה לִבְנַת הַסַּפִּיר, וּכְעֶצֶם הַשָּׁמַיִם, לָטֹהַר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셨다. 모세는 다시 여호수아와 함께 산으로 올라가니 구름이 그를 가렸고 일곱째 날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셨다. 모세는 구름이 가린 산 속에서 40일 주야를 머물게 된다. 

 

하프타라가 여러 곳이다.

  • 일반적으로는 예레미야 34장, 시드기야 왕 때 있었던 히브리 노예 해방을 읽는다.
  • 아달 알렙이나 아달 벳의 첫 샤밧, 즉 샤밧 슈칼림에 떨어지면 열왕기하 12:1–17를 읽는다. 요아스 왕 때 있었던 성전 보수 사건이다. 성전을 위해 내야 하는 셰켈과 관련된 본문이기 때문이다.
  • 샤밧이 로쉬 호데쉬, 즉 아달월 첫날과 겹치면 이사야 66:1–24를 읽는다. 하늘이 여호와의 보좌, 땅이 여호와의 발판이라는 본문이다.  
  • 샤밧이 로쉬 호데쉬 전날, 즉 마하르 호데쉬면 사무엘상 20:18–42, 다윗과 요나단의 언약을 읽는다. 

올해 미슈파팀을 읽는 샤밧 2월 10일이 로쉬 호데쉬다. 그래서 하프타라는 이사야 66장이다.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기쁜 마음을 연한 풀의 무성함에 비유한 것도 신박하다. 코셔를 엄격히 지킨 자도 결국 돼지고기 먹은 자와 함게 망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처럼 그릇에 담겨 여호와의 성전에 드려질 것이다. 이사야 66장이 이런 내용이었나? 벌레는 죽지 않고, 불은 꺼지지 않고, 모든 육체는 혐오물דראון이 될 것이다. 심판의 지옥의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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