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시는 아름답다. 어렵기 때문이다. 뭘 모르면 아름다운 법이다. 나는 시를 쓰는데, 내가 썼는데도 뭔 말인가 싶을 때가 많다. 그래도 일단 쓰고 나면 쉽게 버리지 않는데, 시간이 지나 읽기 위해서다. 그렇게 걸러진 것들을 곱게 간직하는 편이다. 시는 절대로 한 번에 결판내면 안 된다.
신명기의 시도 마찬가지다. 이 시의 진정성은 오랜 되새김으로 드러난다. 아마도 유대인들은 매년 이 본문을 읽으며 그 경지에 도달했기가 쉽다. 신명기 32장의 부제는 "슬픈 노래를 부르는 이유" 정도가 될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시는 노래다. 왜 하나님의 백성은 성전에서 자신들에게 닥칠 비극을 노래한 것일까.
잠에서 깰 때마다 즐거운 노래가 귓가에 흘러나오는지 시험해 본다. 그러지 않은 지 오래 됐다. 심지어 그날의 주요 일정이 슬픔과 애도인 날도 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하아지누는 이 어려운 과정 끝에 좀 더 깊고 의미 있는 삶이 있다는 걸 일러준다. 마침 하아지누는 로쉬 하샤나와 욤 키푸르 사이에 읽게 된다. 유대인이 자신의 약함으로 인한 고통에 직면하는 시간이다. 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과 관계가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간이다. 그분이 우리를 기다리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돌아오기를, 돌아와 용납되기를 기다려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욤키푸를 앞둔 샤밧은 샤밧 츄바, 돌이킴의 안식일이다. 하프타라로 호세아 14장을 읽는다. 이 본문은 심각한 오해를 야기한다. 용서와 위로와 회복의 약속인 줄 착각한다. 호세아 선지자가 향하는 이들이 북이스라엘의 멸망할 우상숭배자들이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돌이킬 줄 모르는 자들이다. 입만 살아서 수송아지 대신 입술의 열매를 드린다고 너스레를 떤다. 이제 하나님이 기쁘게 사랑해 주시면 다시는 우상을 못 본 척하겠다 장담한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이것이다. אֲנִי כִּבְרוֹשׁ רַעֲנָן 나는 푸르른 브로쉬와 같다. 무화과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서 음행하던 북이스라엘은 결코 브로쉬 같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다. 죄인은 결국 걸려 넘어져 쓰러지게 되어 있다.
이스라엘에서 브로쉬를 볼 때마다 이 구절을 떠올린다. 브로쉬, Cyprus 나무는 유독 묘지에 많다.
올해 80살이 된 아리엘 질베르의 소싯적 노래다. 너무너무 좋아했었다.
나 근데 사이프러스를 봤어 ואני ראיתי ברוש
들판에서 태양을 향해 버티는 שניצב בתוך שדה מול פני השמש
폭염에도, 추위에도 בחמסין, בקרה
폭우 앞에서도 אל מול פני הסערה
사이프러스는 그 쪽으로 기울어 על צידו נטה הברוש
우린 기울어져도 꺾이지 않을 거야 לא נשבר את צמרתו הרכין עד עשב
여기 바다 앞에 והנה, מול הים
사이프러스는 푸르게 일어나 외쳤어 קם הברוש ירוק ורם
여기 사이프러스 혼자 있어 הנה ברוש, לבדו
물과 불에 맞서서 מול אש ומים
여기 사이프러스 혼자 있어 הנה ברוש, לבדו
하늘까지 עד השמיים
사이프러스는 혼자 같이 있어 ברוש, לבדו איתן
그럴 수밖에 나는 알게 됐지 לו רק ניתן ואלמד
한 나무의 길을 את דרכו של עץ אחד
기울어져 꺾이지 않는 사이프러스를 알아본 사람이 왜 이렇게 됐을까. 하바드 하시딤 랍비로 변신한 질베르가 두마 방화 테러범 벤 울리엘의 종신형 항소를 위해 기부금을 냈다. 10월 25일 텔아비브 문화의 전당에서 80세 생일을 기념하는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었다. 함께 공연할 예정이던 샬롬 하누흐, 아비브 게펜, 아르카드 두힌이 출연을 철회했다.
질베르는 사이프러스 나무의 길을 배우겠다고 했는데. כִּי-יְשָׁרִים דַּרְכֵי יְהוָה, וְצַדִּקִים יֵלְכוּ בָם, וּפֹשְׁעִים, יִכָּשְׁלוּ בָם 하나님의 길이 곧아서 곧은 이들만 갈 수 있다는 그 길. 여전히 맴도는 멜로디를 되뇌다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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