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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로이 샬레브를 위하여

 

로이 샬레브, 그의 죽음이 전해진 날, 이 나라는 인질들이 돌아올 거라는 희망으로 모처럼 부풀어 있었다. 이제 하루만 있으면 된다. 너무 시간이 많이 남아 하염없이 시계를 보았다. 그 희망이 로이에게는 오히려 독이 됐을까. 그의 사랑하는 이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므로. 로이는 2년이나 버텨 오던 시간을 그렇게 갑자기 놓아버렸다. 그의 마지막 말, 너무 미안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는 날 용서해 주세요. 

 

 

그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을 그냥 상상만 할 때는, 그래도 좀 버텨주지, 먼저 간 마팔을 위해, 가족들을 위해, 더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견뎌주지 야속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절망을 수긍하며, 그의 선택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리라 염려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를 기억해 보기로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세운 쇼아 재단은 1941-45년까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증언을 비디오로 남기는 작업을 했다. 해당 비디오를 본 적이 있는데, 알아듣기 힘든 내레이션이지만 그 이야기의 힘에 놀랐었다. 쇼아 재단은 10월 7일의 생존자들 역시 증언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번에는 유투브다. 사건 직후에 작업을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2년 동안 보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정말 알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탈 솔로몬이 여동생 힐리에게 있었던 일을 증언하는 비디오는 2023년 12월 1일 업로드되었다. 2023년 10월 9일 비교적 일찍 힐리의 사망이 확정되었기에, 이 끔찍함 속에 안도를 느꼈다고 탈은 말한다. 힐리는 의상 브랜드 '아슈카라' 런칭을 2주 앞둔 그날, 스트레스를 받아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 새벽에 친구들의 전화를 받고 느닷없이 크파르 요나 집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금요일 저녁 식사를 함께 한 가족들 어느 누구도 몰랐다. 친구들은 로이와 마팔 커플이었다. 

 

마팔의 언니 마아얀 아담, 시원시원한 웃음을 터트리며 TV 쇼에서 재잘대던 사람이 이렇게나 처절한 슬픔을 만인 앞에서 드러내다니. 상실이란 건 쉽지 않은 감정이다.  

 

10월 7일 오전 6:30, 그들은 노바 파티 장소를 벗어나 뛰기 시작했다. 마팔과 로이는 총에 맞았다. 힐리는 아직 무사했지만 로이의 제안대로 트럭 밑에 숨어 죽은 척하기로 한다. 죽은 시체에 총알을 낭비할 이유가 없을 거라고 여겼으므로. 잠시 후 물결처럼 밀려든 하마스 테러범들은 그러나 시체들을 향해 일일이 총을 쏘았다. 로이는 도합 세 번이나 총을 맞았지만 무슨 일인지 살아있었고, 마팔과 힐리는 의식이 없었다. 로이는 4시간 이상을 피 흘리며 의식 없는 마팔을 안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감고 있던 로이는 히브리어가 들려 눈을 떴다. 그나마 가까운 거리에 이스라엘 군인이 보였다. 로이는 온 힘을 다해 기어서 군인 쪽으로 움직였다. 교전이 진행중이었고 그의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다녔다. 마침내 이스라엘 군인이 로이의 몸을 잡아챘고, 병원으로 이송하는 데 성공한다. 아마 이때 로이는 저항했을 것이다. 아직 트럭 밑에 마팔과 힐리가 있다면서 그들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군인들은 교전중에 변수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이 점이, 2년 동안 꾸준히 재활해온 로이를 계속해서 무너뜨린 부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살아 있을 수도 있는 마팔과 힐리를 두고 자신만 떠났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마팔이 언니 마아얀과 통화할 때, 로이는 전화기 너머로 자신이 마팔을 반드시 보호하겠다 약속했었다 한다. 그런 자신이 혼자 병원에서 눈을 떴고, 그 후 마팔과 힐리의 가족들에게 그 절망적인 순간을 설명해야 했으니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을까.

 

탈 솔로몬은 비디오에서 로이와 마팔에 대해서 아주 짧게 언급하는데, 당시 2023년 12월인데도 로이는 트라우마와 함께 언급되었다. 그의 지옥은 누구에게나 명확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결국 살아있는 이들에게 미안한 선택을 했다. 생존자들은 그저 끔직한 현장을 보았기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는 게 아니다. 부상당한 이들을 뒤에 남겨둔 채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책으로 더 힘들어 한다. 재앙은 인간의 영혼을 다양하게도 파괴한다.

 

전 세계가 젠지 세대의 희한함에 몸서리치는 요즘, 이스라엘의 젠지는 멸절의 위험을 통과했다. 그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두고 보자. 이 절망과 파괴를 딛고 그들이 세상에 어떤 선물을 돌려줄 수 있을지 기다려 보자. 과연 위대한 세대의 탄생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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