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온 후 처음 몇 년 동안 헤브론에 가지 않았다.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느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나는 신앙 안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들이고,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실존인물처럼 느껴지지만 그걸 굳이 검증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헤브론에는 저 세 족장이 부인들과 함께 묻혀 있다. 막벨라, 성경은 아브라함이 이 땅을 값을 치르고 구매했다고 증거한다.
땅의 소유주를 둘러싸고 이토록 첨예한 분쟁이 계속되는 나라에서 역사적 실체를 검증할 수 없는 누군가가 값을 치르고 산 땅이라니, 헤브론은 애당초 평화가 요원한 곳이다. 1997년 헤브론 협정이 체결되면서 H1은 팔레스틴에, H2는 이스라엘 통제가 된다. 막벨라와 중세 이래 유대인 거주지를 포함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헤브론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수님이 보고 오라고 하셨다.ㅋ 헤브론은 유다의 본진으로 다윗의 첫 번째 수도였다.
헤브론은 유대인에게 두 번째로 거룩한 장소다. 거룩을 무슨 근거로 측정할까. 어쨌든 내가 배운 순서는 첫 번째 예루살렘 하코텔, 통곡의 벽이고, 두 번째 헤브론 막벨라이며, 세 번째 야곱의 아내이자 요셉의 어머니 라헬의 무덤이다. 참 피곤하다. 이 순서를 내가 정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말하면 이의 제기가 빗발친다. 유대인에게 가장 거룩한 사이트는 통곡의 벽이 아니라 성전 산이라는 주장이다. 당연히 지성소가 가장 거룩하겠지. 그 지성소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으니 가장 근접한 곳인 통곡의 벽이라고 말하는 거다. 실태를 알고 나서 다음에는 방문객이 가장 많이 찾는 사이트 순으로 소개한다. 1위가 마사다, 2위가 통곡의 벽, 3위가 메론 산 시몬 바르 요하이 무덤이다. 이 나라 통계청이 그런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게 또 말이 안 된다고 항의한다. 이스라엘에서 투어가이드, 모레 데레흐는 극한 직업이다.
최근 모두가 만족할 결론을 찾았다. 유대교의 4 holy cities: Hebron (soil), Jerusalem (fire), Tiberias (water), Tzfat (wind).
헤브론에는 Bronze Age, 즉 성경 시대 가나안 족속의 텔이 있다. 별건 안 나왔다. 그래도 굳이 Tel Rumeida의 위치를 가늠할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의 부동산 매매 계약이 가나안 도시 성문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막벨라 건물의 건너편이다. 막벨라와 텔 헤브론(혹은 텔 루메이다) 사이는 골짜기인데 이곳이 중세 이래 유대인의 거주지로 지금까지 이어진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막벨라에 있는 밭을 샀는데 그것이 마므레 동쪽으로, 막벨라에 속한 굴과 그 밭과 주위 나무를 포함한다고 말한다. 유대인 거주지 벳트 하다사 위쪽, 즉 막벨라의 북서쪽 지명이 jabel nimre이다. 셈어에서 n과 m은 교환된다.
성경에 막벨라 '동굴'이라고 했는데? 저 멋진 돌로 된 건물은 헤롯이 세운 것이다. 65m long, 35m wide, 20m high이다. 돌 하나가 3m 두께다. 예루살렘 성전 산과 똑같은 공법으로 지었다. 헤롯이 유대교 성전에 투자한 이유는 알 만하지만 왜 굳이 여기를? 헤롯이 진정한 야심가라는 것은 성전보다 막벨라 재건 때문일 수 있다. 아브라함은 유일신교를 세상에 전파한 최초의 인물이다. 30억 명 이상의 신자를 가진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그로부터 시작됐다. 지금이야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2천 년 전에 이를 간파한 사람이 있었다는 게 대단하지 않나? 아브라함이라는 기초에서 시작될 영원의 이야기를 내다볼 줄 아는 헤롯의 통찰력이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헤롯은 미쳐 버린다. 자신이 내다본 영원한 것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막벨라 הַמַּכְפֵּלָה, 히브리어 어근 카풀은 두 배라는 뜻이다. 뭐가 두 배일까? 동굴 구조가 위아래, 상하단으로 되어 있다는 뜻일까? 검증하기는 어렵다. 막벨라는 부부가 묻혔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카, 야곱과 레아 세 쌍이다. 카발라 신앙이 끼어든다. 이곳은 에덴 동산의 입구이고 아담과 하와의 무덤이다. 헤브론의 또 다른 이름은 키리얏 아르바다. 넷의 마을. 넷이 쌍으로 묻힌 장소란 뜻이 아닐까? 그런가 하면 doubled는 'folded'의 의미일 수도 있다. 막벨라 동굴 아래에 이스라엘 온 땅과 예루살렘이 '접혀' 있다는 것이다(시작 지점이 이곳이라는 뜻).
아브라함은 힛타이트 족 에프론에게 충분한 대가בכסף מלא를 지불했다 (창 23:9). 은 400세켈이었다. 토라 속에는 인신 매매가 묘사되는데 성인 남성 요셉은 은 30세켈에 팔렸고, 처녀 여성의 값은 100세켈이었다(신 22).
헤롯의 건물은 3층 구조이다. 현재 우리가 밟을 수 있는 곳은 Ground Zero로서 바깥에서 볼 때 건물의 중간 위쪽이다. 들어갈 수 없는 지하 -1이 바깥에서 볼 때 건물의 아래쪽이다. 지하 -2가 더 있는데 그건 건물 아래 묻혀 있는 실제 무덤 공간이다.
헤롯은 건물을 짓고 상단부에 6개의 무덤 표시를 했다. 중앙에 아브라함과 사라, 남동쪽에 이삭과 리브카, 북서쪽에 야곱과 레아를 기념했다. 기원후 4세기에 비잔틴 제국은 이곳을 교회로 바꾼다. 7세기 이슬람 칼리프는 모스크로 바꾼다. 12세기 십자군이 다시 교회로 바꾼다. 13세기 이집트 맘룩이 다시 모스크로 바꾼다. 이때 외벽 위에 첨탑(미나렛)을 추가하고 내부를 방으로 나누고 이슬람 비문으로 장식했다. 또 남쪽에 건물을 추가하고 그곳으로 입구를 뚫었다.
1267년부터 1967년까지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이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 1967년 이스라엘 군대가 헤브론을 점령했지만, 유대인이 이곳을 차지하는 것은 엘악사 모스크만큼이나 난해한 과제였다. 국방부 장관 모세 다얀은 이슬람 성지를 보호하는 Waqf에게 막벨라의 절반을 내준다.
19, 20=야곱과 레아, 8, 17=아브라함과 사라 무덤 기념비가 있는 유대교 회당이다. 16번이 이삭과 리브카의 기념비인데 이슬람 모스크로 유대인과 관광객은 입장 불가다. 원래는 양쪽이 드나들 수 있었다. 1929년 유대인 학살 이래 수많은 슬픈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두 민족은 자신들의 공동 조상을 함께 기념했었다. 1994년 2월 25일 유대인 바루흐 골드슈타인이 총을 난사해 무슬림 29명을 죽이고 즉사했다. 정치적으로 팔레스틴에 영토를 떼어주는 오슬로 협정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우파 종교인 이갈 아미르는 1995년 11월 4일 이츠하크 라빈 총리를 암살한다.
그래도 헤브론의 두 민족은 다시 공존을 선택했다. 일 년에 10일 각자가 원하는 날을 지정해 막벨라 동굴을 통합 개방한다. 유대인이 원하는 날은 유월절, 엘룰 첫날, 로쉬 하샤나, 욤키푸르, 숙콧 외에 파라샤에서 하예이 사라 (창세기 23-25장)를 읽는 샤밧이다. 10월 12, 13, 17일, 11월 19일이 예정돼 있다. 무슬림이 원하는 10일은 무함마드 선지자의 승천 날, 라마단, 계시를 받은 날, 무함마드 선지자 탄생일 등이다. 지난 10월 8일을 끝으로 무슬림의 올해 일정은 모두 끝났다.
아마추어 고고학자 모세 다얀은 막벨라 굴의 절반을 Waqf에 넘겨주기 전, 족장들의 실제 무덤을 찾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지 비공식 탐사를 진행한다. 당시 예루살렘 보안국 책임자 예후다 아르벨이 12살 딸 미할 아르벨을 데려왔다. 그렇게 작은 몸집만이 내려갈 수 있는 구멍이었던 것이다.
미할은 26번을 통해 지하 -1로 내려가 복도를 지나 계단을 발견한다. 용감한 소녀는 계단을 올라가 출구로 보이는 돌을 밀어보았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다시 계단을 내려와 26번으로 올라왔다. 모세 다얀은 소녀가 본 것들에 근거해 스케치를 남겼다.
몇 년 후 족장들의 무덤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찬 키리얏 아르바의 젊은이들이 엘룰 월 첫날을 이용해 몰래 지하 탐사를 시작한다. 유대인에게 허락된 열흘의 개방 날짜 중 하나였다. 그들은 몸집이 컸기 때문에 미할이 뚫지 못한 25번을 공략한다. 밖에서 기도소리와 노래소리가 커진 틈에 돌을 깰 수 있었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 미할이 지나갔던 복도를 통과한다. 그런데 바람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26번으로 올라가는 곳에 또 하나의 구멍이 있고 그 아래가 진짜 무덤이 있는 곳이었다. 지하 -2의 발견이었다.
소문은 퍼졌고 결국 이스라엘 정부는 고고학자들을 보내 이곳을 탐사하게 했다. 1차 성전시대 도자기들이 발견됐다. 사람의 뼈도 나왔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헤브론은 하베르, 친구와 관련된 이름이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당신의 친구라고 부르셨다 (이사야 41:8, 야고보서 2:23). 하나님과 벗 된 이의 자손들이 이 우정의 도시에서 평화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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