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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단 귀 술의 청색 끈

고대 이스라엘 사회는 색깔로 신분을 드러냈다. 보라색은 왕의 색깔이다. 왜 보라색이 고귀했을까? 아니 애초에 색깔을 어떻게 식별했을까? 

사무엘이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는 다윗. 두라 유로포스 회당의 벽화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색은 청색이었다. 민수기 15장에 이런 명령이 나온다. "옷단 귀에 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술'이 히브리어로 찌찟ציצית, 청색 끈이 프틸 트헬렛פתיל תכלת이다. 이게 자기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는 것을 막아줄 텐데,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종의 파블로프 조건 반사이다. 슬그머니 딴 생각이 올라올 때 트헬렛 색깔의 찌찟을 보면 하나님의 계명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하필 이름도 찌찌네. 

 

색깔을 구분하는 능력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트헬렛을 물어보면 대개 하늘을 가리킨다. 대한민국 하늘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지중해에 붙어 있는 이스라엘의 하늘은 태양과 구름과 바다가 영향을 미친다. 트헬렛 하늘은 구름이 끼면 안 된다. 햇빛을 담고 적당히 지중해를 반사해야 한다. 과학으로 말할 수 없는 색깔이다. 관념이기 때문이다. 굳이 규정하자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네 가지 색깔 중 하나이다. (빌 게이츠는 유대인이 아니다. 유대인인지 아닌지로 루머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다. 유대인 음모론을 파고든 게 일본 극우들이다. 우연일까.)  

 

트헬렛 색깔 위에 흔히 Royal Purple이라고 부르는 색깔의 천들을 올렸다. 히브리어는 이들을 모두 아르가만ארגמן이라고 한다. 아르가만은 모두 Sea-snail, 학명으로 Murex trunculus, 히브리어로 힐라존חילזון에서 채취한다. 아르가만과 트헬렛의 차이는 빛에 노출 여부뿐이다. 빛을 받으면 트헬렛이 된다.   

 

오른쪽부터 the banded dye-murex, the spiny dye-murex, the red-mouthed rock-shell. 지중해에서 자라는 해산물의 종류와 양은 매우 야박한 수준이지만 바다달팽이만큼은 여러 종류가 있다. 바다달팽이를 먹어 치우는 민족이라면 이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다. 먹지 않고 염색에 양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다달팽이를 먹어치우지 않는 민족은 여기만 있으니까 힐라존은 지중해 연안에만 산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거긴 블레셋이 살았으니까. 대신 북쪽에서 해상무역을 주관하던 두로 사람들이 이를 발굴했다. 그래서 Tyrian purple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비잔틴 제국은 지중해 힐라존의 비밀을 즐겼다. 비잔틴의 마지막 전성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6세기 모자이크이다. 이탈리아 라벤나의 상비탈레 바실리카에서 나왔다. 

 

 

 

 

 

 

 

2021년 약 3000년 된 천 조각이 발견됐다. 네게브 사막 팀나의 Slave Hill이었다. 텔아비브 대학의 Ben Yosef 교수가 발견했다. Nelson Gluck과 Ben Rotenberg에 이어 팀나와 솔로몬의 관계를 연구중이다. 3000년이면 주전 10세기 다윗과 솔로몬 시대, 철기 I기이다. 이왕이면 Royal Purple이 예루살렘에서 발견되면 금상첨화겠지만 이 천조각이 보존된 건 사막의 건조함 덕분이다.


다윗의 궁전에서 왕들은 물론 성전 제사장과 예수님도 모두 보라색 옷을 입었다. 고대 사회에서 보라색 옷은 귀족이나 사제와 관련된 색깔로, 화려하면서도 바래지 않는다는 미적 가치 외에, 연체동물의 몸에서 극소량 발견되는 희귀성 때문에 염료 가운데 가장 가치가 높았다. 금보다 높았으리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고고학은 이렇게 또 하나의 성경 진술을 확인해 주었다. 

 

참, 찌찟에 트헬렛 색깔로 달아야 하는 피틸을 꼬는 방법은 많은 랍비들이 할라하로 전수했다. 하나님은 달라고 말씀만 하셨지 어떻게 달아야 하는지 방법을 말씀 안 하셨으니 랍비들이 제각각 연구한 것이다. 람밤의 방법이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되지 않을까. 8개의 실 중에 하나만 트헬렛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자세히 안 보면 청색이 아니라 흰색으로 보인다. 비용 요인이 컸을 것이다. 사실 이방인이고 게다가 여자인 내가 유대 종교인의 찌찟을 자세히 아는 것도 웃긴다. 애초에 찌찟은 속옷의 역할이기 때문에 그 술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게 상식적이다. 찌짓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은 다티 레우미 종교 시오니스트들이다. 종교 시오니스트 여성들은 헤드 기어를 과할 만큼 높고 화려하게 틀어올린다. 성경을 제대로 좀 읽었으면. 마음과 눈의 욕심을 막기 위한 일들이 왜 이렇게 노골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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