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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혼 샘, 물 긷는 데로 올라가

나는 도무지 이 지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 탓인 줄은 알지만 이렇게 이해가 어렵다면 제작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 고통의 분담을 요구했다. 지도의 제작자는 웃으며 말했다. Be creative! 

 

고대 도시는 주민을 보호하고 먹고 살 수 있도록 물을 공급하며 농사를 위해 토양이 비옥하고 물자 수송이 용이한 접근성 등을 고려해 세워졌다. 제의적 기능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예루살렘은 이 모든 조건을 충족했는데 무엇보다 기혼 샘의 존재가 그랬다. 

 

이스라엘은 일년 중 평균 60일 동안 비가 내린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 의지하다가는 문명이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대개 도시 옆에는 천연샘이 있어야 한다. 기혼(גיחון)은 터지다란 뜻이다. 천연샘에서 물이 솟구치는 현상을 사이펀 효과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사이펀 샘이다. 연간 650,000 큐빅 미터의 물을 공급한다. 

 

1867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명령으로 찰스 워렌 경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처음에 성전산(엘악사 컴플렉스) 근처를 파다가 오토만의 제재를 받았다.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어 도시의 남동쪽을 파기 시작했는데, 기혼샘을 염두에 둔 결과였다.

 

찰스 워렌은 예상대로 터널을 찾았다. 천장이 없는 구멍이었다. 성경 본문이 스쳤다. 여기가 바로 다윗의 부하들이 여부스 족의 성을 공격한 '물 긷는 데צינור'구나(삼하 5:8). 이들은 사다리를 만들어 꼭대기로 올라갔는데 사다리 3개를 붙여 약 13m 높이였다. 그런 다음 꼭대기에서부터 도시(오늘날 이르 다비드)까지 올라갔다. 찰스 워렌은 도시가 이 찌노르를 통해 기혼 샘으로 연결된다고 믿었다. 찌노르의 이름은 Warren's Shaft가 된다. 인간이 끌로 파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샤프트였다. 한 가지 걸리는 건 사용된 적이 없는 자연 상태라는 점이었다. 어쨌든 찰스 워렌의 발견은 고대 예루살렘 성의 위치를 바꾼다. 다윗이 자기 수도로 삼은 곳, 자기 궁을 지은 곳 (그리고 묻힌 곳). 현재의 올드 시티나 십자군이 믿은 대로 시온 산 위치가 아니라, 그 남동쪽이었던 것이다.

 

워렌 샤프트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이 그림을 붙여 놓았으나 아무도 보지 않고 지나간다. 고대 요새에서 찌노르의 역할을 묘사하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그림이다. 기원전 9세기 아슈르나시르팔 2세 궁전의 벽화이다. 도시 공성전을 묘사하고 있다. 군인이라기보다는 제사장에 가까운 복장을 한 인물이 전투가 치열한 틈에 성 근처로 와서 줄을 끊고 있다. 줄 끝에는 양동이가 달려 있어 물을 긷는 장소임을 보여준다. 도시는 샘까지 전부 성벽을 두르지 못했고 샘의 원천에서 양동이로 물을 길어 '올리는' 게 있었던 것이다. 찌노르의 단서가 되는 그림이고, 워렌 샤프트가 이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아직도 배제되지 않았다. 이게 가능하다는 실험이 이뤄졌다. Then so what?

우리말이 전에 찌노르를 '수로'로 번역했었다. 문화적 고려 없는 번역이 이렇게 문제가 된다. '물 긷는 데' 역시 썩 좋은 표현은 아니다. 영어 쓰는 사람들은 gutter에 만족하는 듯하다.  

 

1965년 아직 이곳의 통치자가 요르단일 때 영국의 캐서린 캐년이 고고학 발굴을 시작한다. Trenches 공법으로 알려진 기술을 사용한다. 경사진 곳을 따라 아래로 연차로 파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 지역 초토화? 한 자리만 파느라 놓칠 수 있는 성벽을 찾는 게 목표였다. 이렇게 발견된 게 가나안 성벽 (다윗이 점령했다고 믿는) Step Stone Structure이다. 

1978년 이갈 실로가 발굴을 시작한다. 이 성에서 살았던 거주민의 삶이 드러난다(Area G). 그 유명한 사방구조가 나온다.

 

A. Stepped Stone Structure: a retaining wall built to support the "Large Stone Structure (David's palace)"  
B. House of Ahiel
C. Burnt Room
D. House of the Bullae
E. Nehemiah’s Wall

 

1995년 로니 라이흐와 엘리 슈크론의 발굴이 시작되고 모든 가설이 새로워진다. 

기원전 8세기가 아니라 기원전 18세기 이미 이곳에는 샘을 보호하기 위한 요새화가 진행됐다 (여기에서 깜놀 안 하면 이상한 거다). 키드론 계곡 바닥에 있는 기혼 샘은 요새화된 성으로부터 35미터나 떨어져 있다. 이 샘을 보호하기 위해 가나안 시대 성벽이 건설된다. 탑을 쌓아서 샘을 보호하고 요새 성벽에 연결시킨 것이다. 이 베트 마아얀에서 솔로몬의 대관식이 열렸다. 하지만 카본 14 검사법은 요새화가 기원전 9세기 이전이라는 데 반대한다. 엘리 슈크론의 가설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성경을 증명하려는 의욕이 앞선다고 말해야겠지. 

 

기혼 샘에서 실로암 연못까지 물을 나르는 지하 터널이 있었다는 게 확인된다. 물을 실어나르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적들의 포위 공격이 오래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기원전 8세기 히스기야 왕이 기혼 샘물을 안쪽으로 들여와 실로암으로 연결하는 전체 길이 533m의 터널을 건설했을 것이다. 성경이 이를 증명한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군대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해 물 근원과 땅 시내를 막고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성 서쪽(=실로암) 곧게 끌어들였다(대하 32). 히스기야가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대 왕 역대지략에도 기록돼 있다(왕하 20).

 

공사에 참여한 자들이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히스기야 왕 이름은 없다. 바위 깎는 소리가 여전한 동안 이쪽에서 저쪽 사람을 불렀고, 도끼가 도끼를 만나자 물이 서로에게 흘러들어갔다는 내용이다. 자신은 가장 깊은 곳 40미터에 있다고 한다. 세번째 줄의 zeda라는 단어가 묘하다. 아마 균열, 틈을 의미할 것이다. Amos Frumkin이라는 지질학자가 터널 공학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한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 만나기 위해서는 일직선보다 지그재그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터무니없이 터널 높이가 높은 것은 계산 착오다. 아마 9개월 정도의 시일이 걸렸을 것이라고 한다. 이 비문은 1880년 실로암 못에 놀러온 소년 제이콥 엘리야후가 발견했고 아르메니안 쿼터에서 일하던 자신의 스승 콘라드 칙을 불러온다. 엘리야후는 훗날 호라시오 스패포드에게 입양된다. 증기선 사고로 네 딸이 사망한 대서양에서 "내 영혼 평안해"를 작사했다는 선교사다. 예루살렘 북쪽의 후세이니 하물라와 사이좋게 지내며 꽤나 큰 아메리칸 콜로니를 개척했다. 

 

정교회 기독교인은 기혼 샘을 "처녀의 샘"이라 불렀다. 아랍어로 "Ain Sitti Maryam"이다. 키드론 계곡은 지금도 와디 싯티 마리암(Wadi Sitti Maryam)으로 불린다.

 

 

최근 이곳이 대중 개방됐다. 비주얼 임팩트를 가미해 뛰어난 영상도 만들었다. 여기를 보고 나오면서, 그래서 기혼 샘이 어디에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아마도 한국인에게 가장 도전적인 고고학 사이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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