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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오슬로 참사 생존 어린이

아마존 정글에서 살아남은 콜롬비아 아이들 이야기가 놀랍기만 하다. 더 놀라운 건, 이스라엘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는 거다. 이 조그만 나라는 이 짧은 역사 동안 별일을 다 겪었다.

 

위키피디아가 Hurum Air Disaster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사건이다. 히브리어는 אסון ילדי אוסלו, 오슬로 어린이 참사 사건이다. 신생국가 이스라엘이 맞닥뜨린 시련과 좌절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1949년 11월 20일 오슬로 남서부 후룸 지역 숲에서 더글라스 DC-3기가 추락해 타고 있던 35명 가운데 어린이 27명 포함 34명이 사망했다. 유일한 생존자가 당시 11세의 이츠하크 알랄Issac Alal.

 

이들은 신생국가 이스라엘에 정착하기 위해 선발된 8-12세 튀니지 유대인 아이들이었다. 당시 튀니지와 모로코는 유대인 인구가 50만 명이나 됐다. 아직 프랑스가 지배중이었지만 적대국이 될 가능성이 큰 나라들이었다. 실제 이들 나라는 1956년 이슬람 국가로 독립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전쟁중이라 정신이 없었고 미국 등 해외  유대인 기관들이 이들의 알리야, 이스라엘로 이민을 주선한다.

 

우선 부모 없이 어린이들만의 이민이었다. 어린이들의 적응이 빠르고 무엇보다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매우 잔인하지만 모로코와 튀니지 유대인 부모들은 미래를 위해 자식들을 내주었다. 훗날 이스라엘 사회의 인종주의를 조형하는 마로카임의 피해의식은 이처럼 불가피한 면이 있다.     

 

또 어린이들은 이스라엘로 바로 옮겨지지 못했다. 거주 시설이 있어야 말이지. 우방국들의 도움을 받는데 그게 노르웨이다. 전쟁 직후 비어 있던 시설에 유대인 어린이들을 입주시켜 6개월 동안 돌봐주고 이스라엘로 보내주었다. 무슬림 인구 많은 현 좌파 성향으로는 상상이 안 되지만 노르웨이는 2차대전 직후 이스라엘에 우호적이었다. 노르웨이 왕실은 영국 왕실의 일원이었고 나치에 반대했으니까. 어쨌든 두 나라 공히 노동당이 집권한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이런 인연으로 노르웨이는 70년대 모사드 활동의 중심지가 되는 등 이스라엘 역사에 자주 등장한다 (aka. 봉이 된다. ex. 릴리함메르 사건). 

 

그래서 튀니지 이민자 어린이들이 오슬로로 오다가 참사를 당한 것이다. 당시 노르웨이 노동당이 자금을 모아 세워준 모샤브가 샤론 평야의 야누브이다. 생존자 이츠하크 알랄은 1987년 질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야누브에 거주했다. 참사 당시 노르웨이는 사건에 대한 기록영화를 방영했는데 여기 영감을 받은 유명 화가 Erling Enger가 알랄의 그림을 남겼다. 그 그림이 이번에 알랄 가족에 전달됐다. 

 

화가는 1990년 사망했고 행방이 묘연하던 그림은 12년 전 벼룩시장에서 Eigil Jespersen에게 발견된다. 아마존에서 살아남은 어린이들 이야기에 감동한 예스퍼슨은 이스라엘 기관에 연락해 비슷한 사연의 주인공 그림을 그 가족에 전달한 것이다. 내년 11월에 이스라엘은 이 참사의 75주년을 추념할 예정이다. 그림을 전달받은 가족들 중에는 당시 할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의 손자도 있었다. 삶의 영속성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