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ed

만나는 무엇인가

2025년 유월절, 4월 중반에 폭우가 쏟아졌다. 간밤에 몇 번이나 깼는데 너무 추워서였다. 춥다고? 결국 다 정리해둔 옷장을 열고 겨울옷을 꺼내 입었다. 히터도 꺼낼까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귀찮았다. 이게 4월에 일어난 일이 맞는 거지? 도무지 기뻐할 수 없는 10월 7일 이래 두 번째 유월절, 여전히 살아있는 24명의 인질들에게 생각이 미친다. 기이한 자연현상은 하늘의 뜻을 헤아리게 만드는 도구일까. 저 하늘은 많은 것을 인간에게 내려주었다. 파라샤를 폈더니, 마침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늘에서 떨어진 아이템이 나온다.  

 

먹을 것이 없어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 앞에 하늘에서 양식이 내린다. 만나. 출애굽기 16장 31절은 만나를 이렇게 묘사한다. 

וַיִּקְרְאוּ בֵית-יִשְׂרָאֵל אֶת-שְׁמוֹ, מָן; וְהוּא, כְּזֶרַע גַּד לָבָן, וְטַעְמוֹ, כְּצַפִּיחִת בִּדְבָשׁ

이스라엘 백성이 이름을 '만'이라 불렀는데, 모양은 하얀 "gad" 씨와 같고, 맛은 꿀 입힌 "차피히트"와 같다. 

이름과 모양과 맛이 나왔는데 그래도 모르겠다. 일단 이름이 "무엇"이다. 넌 뭐냐, 본 적 없는 새로운 아이템이란 거다. 그렇다 치고.  

 

1. 모양보다는 맛이 쉽다. 꿀을 입힌 "차피히트"는 뭘까. 어원적으로 접근하면 쉽다. chapati와 어근이 같다. 산스크리트어로 charpa가 flat의 뜻이다. 차파티가 뭔지 모르면 도움이 안 된다. 이스트가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이다.  

 

인도 같은 고대 문명국의 빵과 비슷한 어휘라는 게 완전한 답은 아니다. 해석은 여전히 필요하다. 아슈케나짐의 본진 헝가리 유대인은 자신들이 사용한 이디쉬어 פלאָדען fladan이 차피히트라고 주장했다. 지금도 부다페스트에서 인기있는 디저트 flodni다.

계피는 그렇다 치고 갑자기 견과류가 등장한 건 뭔가. 라쉬의 손자인 라쉬밤의 해석이다. 차피히트가 갈거나 가공하기 전의 견과류라는 것이다. 그런가? 같은 히브리어에서 차파하트צפחת는 flask, jug를 가리킨다. 아카드어 타피후ṭapī-ḫu와 유사하다. 다윗을 쫓아 광야에 들어온 사울은 쿨쿨 잠이 드는데, 그 밤에 다윗이 부하들과 함께 몰래 들어왔다. 아비새가 나서서 사울을 죽이자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 받은 자를 해하지 말아야 한다며 사울의 머리 맡에 있는 창과 "차파하트"를 들고 나온다. 사울은 광야에서 하이드레이션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물병을 지참한 것이다. 무튼 차피히트는 차파하트 같은 도구에 적합한 요리이지 않을까?

 

2. 모양은 하얀 "gad" 씨와 같단다. 자, 갓 씨를 보여주세요.

 

갓 씨가 하얀가? 히브리어로 גד השדה가 corriander 고수를 뜻한다는 걸 모르는 이스라엘 사람이 많다. 아랍어 쿠스바라כוסברה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이 발음 주의해야 한다. 쿠스는 아랍어로 여성 생식기를 뜻한다). 샐러드나 고기요리에 가장 흔하게 첨가되는 허브다. 욤 쉬쉬에 장보러 가서는 아무 생각 없이 고수 한 단을 집어 오곤 한다. 절반도 못 쓰고 버리는 일이 허다하지만, 그래도 없어서는 안 되는 식재료다. 잎사귀야 너무 익숙하지만 씨앗을 볼 기회는 없다. 아무튼 이 gad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갓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희한한 유대교 현자들의 해석이 등장한다. 카발라 경전 <조하르>에는 "갓"을 고수로만 봐서는 안 되고, 남성의 생식기로 읽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히브리어로 גיד다. 

신명기 33장에서 모세는 갓을 이렇게 축복한다. בָּרוּךְ מַרְחִיב גָּד:  כְּלָבִיא שָׁכֵן, וְטָרַף זְרוֹעַ אַף-קָדְקֹד 직역하면 "갓을 확장시키신 하나님을 찬양"인데, 유대교 해석은 이 구절이 남성 생식기의 축복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하얀 "갓" 씨는 "하얀" 남성 생식기의 씨앗인 것이다. 유대교의 본질은 전혀 영적이지 않다. 

여기에서 시칠리아 마도니에 지역이 등장한다. 약 500그루의 ash tree 물푸레나무가 자란다고 한다. 길고 건조한 여름이 절정에 달하면, 이들 물푸레나무에서 나무껍질을 정교하게 자르고 수액을 채취한단다. 이 수액이 아주 달콤하고 하얀데, 그래서 적어도 1,200년 동안 성경에 나오는 그 만나로 불려왔다.


물푸레나무는 라틴어로 Fraxinus ornus인데, 시칠리아 식생의 일부였다. 약 3,000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폴리나 인근 언덕 중 하나 이름이 기빌만나(Gibilmanna)이다. 아랍어 "산"과 "만나(manna)"가 결합된 단어다. 11세기에 끝난 아랍의 시칠리아 지배를 암시하는 명칭이다. 성경의 언급 외에도 물푸레나무 수액을 채취하는 방법을 묘사한 것으로, 고대 그리스 문헌이 있다. 가장 구체적인 언급은 9세기 아랍의 의학서와, 11세기 페르시아 철학자 Avicenna아비센나가 쓴 'The Canon of Medicine'에서 발견된다. 장사꾼이 빠지면 안 되지. 1770년 베네치아 공화국 문서에 따르면 베네치아는 비단 산업에서 직물의 색상을 보존하기 위해 만나를 대량으로 수입하여 다른 비단 생산자들에게 판매했다고 한다.

나무에서 나오는 달콤한 즙은 금방 굳어버리는데, 그걸 모아 햇볕에 말린다. 이 "만나"는 당뇨병 환자에게 적합한 천연 감미료로 제약 회사들 사이에서 수요가 높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1950년대 주요 화학 성분인 만니톨을 합성하는 데 성공한 후, 천연 만나는 외면받았다. 오늘날 시칠리아 지역 제빵사들은 만나를 쿠키와 케이크의 양념 재료로 사용하는데, 특히 코코아 함량이 높은 "만나 초콜릿"도 생산한다. 만나가 초콜릿의 쓴맛을 완화해 주기 때문에, 아주 진한 초콜릿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만나의 보습 효과를 활용한 화장품도 생산된다.
현재 시칠리아에는 만나 생산자가 10명 정도 남아 있다고 한다. 시칠리아에 갈 일이 또 이렇게 생겼다.

'Moe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무나, 파스하  (0) 2025.04.20
2025 부활절 פסחא과 나무  (0) 2025.04.19
2025 트리플 푸림  (0) 2025.03.14
2025 사순절 복음서 읽기  (1) 2025.03.04
투 비슈밧  (0) 2025.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