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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ed

2025 사순절 복음서 읽기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 이상한 루머가 있다. 세속 유대인은 말할 것도 없고, 종교 유대인도 토라만 읽기 때문에 성경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제발 좀 그랬으면. 대신 이건 말할 수 있다. 유대인은 신약 내용을 모른다. 나사렛 예수가 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냐고 묻는 식이다. 막상 이 질문을 받으면 답이 궁색해진다. 아겔라우스의 인구조사는 주후 6년이라. 

  

근대 계몽주의 시대, 유대인은 신약성경을 읽으면 헤렘, 공동체에서 추방됐다. 다 옛날 얘기라지만, 신약에 정말 흥미를 느끼고 개종을 각오한 입장이라면 헤렘 조항은 여전히 큰 위협이다. 오늘날에는 헤렘과 상관 없이, 생업 때문에 신약성경을 알아야 하는 유대인도 있다. 종교예술사를 전공한다면 신약성경에 대한 지식은 필수다. 미술품 옥션의 세계에 유달리 유대인이 많다는 건 상식이다. 그들이 신약 내용을 모른다면 재미나겠지. 아무튼 이런 유대인들 덕분에 신약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긴다. 

 

요한복음은 유대인 입장에서 말도 안 되는 책이다. 이걸 히브리어로 읽다가는 뼈도 못 추린다. 그나마 헬라어 지식이 유용하다. 마태복음은 그보다는 낫지만 반발이 심하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타나흐에 대한 이해가 엉터리라고 비난한다. 누가복음은 일단 여성 주인공들이 진입 장벽이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복음서를 읽자면 마가복음이 최선이다. 

 

아마도 이것이 복음서가 기록된 역사적 과정에도 부합했을 것이다. 마가복음은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다. 저자인 마가는 베드로를 보좌해 그의 편지를 대필하는 역할이었다(벧전 5:13). 마태와 요한처럼 예수님의 핵심 제자 명단에 들지는 못했지만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간증, 적어도 그 영향 아래 있었다고 할 만하다. 예수님의 공생애도 당연히 목격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잡혀 끌려가시자, 뒤를 따르다가 적발돼 알몸이 되어 도망친 청년이 마가다(막 14:52).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와 친분이 있었고(행 1:14),  그의 삼촌 바나바는 초대교회의 주춧돌이었다. 한 성깔 하는 바울과 사이가 틀어졌지만 이 빛나는 집안의 후광 덕에 또 다른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예수님 제자 대부분이 보잘것없는 직업을 가진 변방 출신인데, 예루살렘에 이층집을 소유한 부잣집 도련님 아닌가.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정통 바리새인임을 내세운 것처럼 마가 역시 비슷한 배경이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디아스포라가 아닌 예루살렘 출신이라는 데 마가의 막강한 특권이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제사장이 아닌 예루살렘 거주민이라면, 대개 토라 학습에 전념하는 서기관 지망생이었을 것이다.  

 

마가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창시자로 알려진다. 콥틱 교회의 수장이기도 하다. 마가의 아이콘에는 복음서 기자임을 알리는 책이 들려 있고, 순교자 신분을 드러내는 붉은 이마티온himation을 입고 있다. 피아포스톨로스, 엄연한 사도로 불린다. 배경으로는 항구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연상시키는 등대와 바다가 등장하고, 에스겔의 스랍 환상 가운데 얼굴에 해당하는 사자도 등장한다. 정교회와 카톨릭의 아이콘이 똑같이 보인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마티온과 토가만 구분해도 된다.  

 

성 마르쿠스의 라틴어가 산마르코이다. 베네치아의 수호신이라 베니스 공화국의 앰블럼이나 동상이 날개 달린 사자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에 의해 순교했는데, 무덤은 베네치아 산마르코 성당이다. 

 

기원후 828년 1월 31일 베네치아 공화국으로 납치되는 성 마가의 시신. 공화국의 Doge Giustiniano의 궁에 보관되는데 훗날 여기 산마르코 성당이 지어진다. 시신을 훔친 도굴꾼은 Buono da Malamocco와 Rustico da Torcello다. 성 마가의 시신은 그 뒤로도 여러 번 사라지지만 기적적으로 발견됐고, 현재 산마르코 성당에서 가장 높은 제단 아래 묻혔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다. 자기 조상의 범죄 사실을 자랑스럽게 기록한 화가 티토레토가 제일 이상하다. 

 

한편 성지 예루살렘에서 마가 기념교회는 시리아 정교회이다. 올드시티 아르메니아 구역에 있다. 라틴 교회와 달리 이분들은 마가의 다락방이 이곳이라고 믿는다.

 

정교회 십자가 중에 가장 비잔틴 스럽다. 이케아 백을 누가 놓고 들어가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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