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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ha

파라샤 톨도트 (창 25:19-28:9)

파라샤 톨도트를 읽기 앞서, 지난 '샤밧 하레이 사라'(창세기 23:1-26:18을 읽는 샤밧)에 헤브론에서 있었던 일을 요약하고자 한다. 

 

 

חשש וזעם בקרב הסוחרים הפלסטינים בחברון: "מעולם לא חווינו הסתערות כזו"

בהתפרעויות בעיר, שאליה הגיעו רבבות לרגל שבת "חיי שרה", השליכו יהודים אבנים, חפצים ואפילו עופות, ופצעו שני פלסטינים לצד חיילת. יוסף אבו-עיישה, 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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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유대인들이 막대기로 이스라엘 여군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네? 누가 누구를 공격해요?

  • 약 삼만 명의 종교 유대인이 헤브론 막벨라에 도착했고 예상대로 폭력적인 충돌이 발생했다. 충돌 중에 이스라엘 군인이 이스라엘 민간인에게 부상을 입었고 2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돌에 맞았다. 이스라엘 군은 여러 '이스라엘' 시민을 체포했다. 이스라엘 군 참모총장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매우 심각한,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범죄 행위"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가해자들에게 정의를 내리겠다"고 말했다.
  • 종교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서로 돌을 던지며 충돌했다. 시작은 이스라엘 쪽이었다. 이스라엘 군이 투입돼 양측을 분리하고 시위를 해산시키는 동안, 한 유태인이 막대기로 여군을 공격했다. 부상을 입은 여군은 그 자리에서 치료받았다. 빡치는 부분이 '여군' 대목이다. 체격 좋고 거칠기로 유명한 국경보안대 남자군인은 눈도 못 쳐다보면서 여군을 골라 공격하셨다니. 비열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한 영역에서만 비열하지 않다. 
  • 이타마르 벤그비르도 현장에 도착했는데, 술취한 남성과 그의 보디가드들 사이에 시비가 붙어 그중 한 명이 부상당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음주로 인한 단순 폭력 사건으로 정리됐다. 
  • 결국 일 년 중 단 열흘 보장된 유대인의 막벨라 순례 중 하루가 이렇게 중단됐다.
  • 헤브론은 위태로운 긴장 상태를 순전히 주민들의 자발적인 평화 의지로 버티는 도시다. 뭐 이제 와서 다시 쪼갤 수도 없고 같이 살자니 어쩔 수 없이 냉담하게나마 어울리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팔레스타인 상인들 사이에서 공포와 분노가 대단하다. 종교 유대인들은 말 그대로 폭도가 되어 아랍 가게들의 물건을 깨뜨리고 돌을 던졌다. 헤브론의 유대인 정착촌 대변인은 폭동의 주동자가 "먼 지방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다큐를 제작하면 제목은 '먼 지방에서 온 이들'이라 하시라.
  • 두 민족 모두가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무덤이다. 이럴 필요가 있나. 하지만 갈등과 분쟁은 원래 합리적이지 않다.

 

파라샤 톨도트를 읽어보자. 하나님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 완전한 '이야기'다. 성서 형성사에서는 다윗 시대에 일어난 정치적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창조된 이야기로 본다. 기원전 10세기 초 에돔이 아직 이스라엘 속박에 있을 때로, 당시 이스라엘은 합법적으로 자신의 것이 아닌 상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느꼈다. 하프타라는 드물게도 소선지서 말라기 1-2장이다.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했고 에서는 미워했다는 대목이다.

 

1알리야 (25:19–26:5): 리브카의 출산

  • 리브카 역시 아카라, 불임여성이었다. 보기 드문 표현이 나온다. 이츠하크가 리브카를 위해 여호와께 바예타르ויעתר하자 여호와께서 그를 위해 바예아르ויעתר하셨다. 같은 어원으로 능동과 수동을 사용했다. 이츠하크는 탄원했고 여호와께서는 탄원을 받으셨다. 현대 히브리어에서도 아타르는 청원의 뜻을 갖는다. 이 쌍방 활동의 결과로 리브카는 임신을 했고 쌍둥이가 잉태됐다. 
  • 리브카는 뱃속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사내아이들이 바이트로체쭈ויתרוצצו 한 것이다. 우리말 성경이 '싸우다'로 옮긴 건 지나치다. 어원에 충실하게 그저 쉼없이 움직이는 상태로 옮겨야 한다. 어쨌든 이에 리브카도 특이한 일을 한다. 여호와께 물으러 간 것이다. 어디로 가서 어떤 방식으로 물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여호와는 답하신다.  
  • שְׁנֵי גֹיִים בְּבִטְנֵךְ, וּשְׁנֵי לְאֻמִּים,מִמֵּעַיִךְ יִפָּרֵדוּ 네 배에서 두 나라가, 네 속에서 두 민족이 나뉠 것이다.  
    וּלְאֹם מִלְאֹם יֶאֱמָץ, וְרַב יַעֲבֹד צָעִיר 이 민족이 저 민족보다 강하겠고, 라브רב가 짜이르צעיר를 섬길 것이다. 
  • 라브 야아보드 짜이르에서 주어는 라브도 될 수 있지만 짜이르도 될 수 있다. 앞에 오는 단어가 관습적으로 주어지만, 아닌 경우가 없지 않다. 히브리어 문법상 짜이르가 라브를 섬긴다고 해석해도 잘못은 아니다. 히브리어의 문법적 논란은 이 문장 자체의 애매함을 증폭시킨다. 여호와의 의도는 정말 무엇일까? 아바드라는 동사는 위해서 일한다는 뜻이다. 라브(많이 가진 자)가 짜이르(어린 자)를 야아보드(섬긴다). 은혜롭다. 이 본문에서 두 민족의 쟁투 상황을 예언하고 결국 어린 자의 승리를 예측하는 것은 히브리성경 자체의 해석이기도 하다. 말라기서가 그렇게 보지 않나. 여호와가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했다고. 왕조 시대를 거치며 에돔은 이스라엘의 철천지 원수가 됐다. 알고 보니 한 태에서 나왔다는 것도 참을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뿌리로 거슬러 올라와 이들의 원죄를 물은 것이다. 하나님은 너희 편이 아니셨다고. 리브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에서 이 말씀을 해석했을 것이다. 어머니로서 더 어리고 약한 자식에게 끌리는 마음을 투영해서. 
  • 온몸이 붉고 털투성이라 에사브,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와 야아콥, 두 형제의 대결구도가 나온다. 야아콥이 에사브에게서 나지드, 국 한 그릇을 주고 장자권을 산다. 예리한 성서 기자는 에사브가 장자권을 경멸했다고 기록한다. 
  • 이츠하크는 가뭄을 견디다 못해 길을 떠난다. 피난처는 이집트밖에 없다. 그 도상에 그랄 땅이 있다 (현재의 가자 지구 근처다). 하나님이 이츠하크에게 이집트로 가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2알리야 (26:6–12): 그랄의 이츠하크

  • 그래서 이츠하크는 그랄에 머문다. 아브라함이 행한 일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부인을 누이라 속였다. 이츠하크가 리브카를 메짜헤크하는 것을 플리슈팀(블레셋이 벌써 등장한다!)의 왕 아비멜렉이 창문 너머로 본다 (히브리성경의 창문 에피소드는 워낙 유명하다). 아비멜렉은 통렬히 비난한다. 베헤베타 알레누 아샴! 네가 우리에게 죄를 가져왔으리라. 
  • 그런데도 이츠하크는 그해 농사에서 백 배, 메아 쉐아림을 거둔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 하레딤 동네 이름이 메아 쉐아림인데, 단어만 옮겨서 백 개의 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사실은 이츠하크처럼 여호와의 복을 받아 백 배 이상 성장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예루살렘 성벽 밖 다섯 번째 정착촌으로 1874년 독일 출신의 선교사 콘라드 칙이 설계한 곳이다. 


3알리야 (26:13–22): 거부가 되는 이츠하크

이츠하크가 거부가 되자 아비멜렉은 자충수를 둔다. 자기 땅을 떠나 골짜기로 옮기라고 한 것이다. 금싸라기 땅을 넘겨준 것이다. 골짜기에서 이츠하크의 종들은 물의 근원을 찾는다. 지형학적으로 올바른 선택이다. 뒤늦게 그랄의 목자들이 샘을 두고 시비를 건다. 그래서 그 우물은 에쎅이 된다. 우리말이 다툼이라고 옮겼는데 비지니스를 위한 경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두 번째 우물을 파도 시비가 붙자 이번엔 시트나가 된다. 미움보다 조금 약한 의미의 불호를 뜻한다. 이삭은 세 번째 옮겨가서도 우물을 얻는데 더는 다툼이 없어 르호봇, 넓은 곳이라 이름한다. 1890년 쉐펠라에 세워진 유대인 도시 이름이 르호봇이다. 와이츠만 연구소가 르호봇에 있다.     


4알리야 (26:23–29): 브엘세바로 올라가는 이츠하크

이츠하크는 브엘세바에서도 우물을 발견한다. 두 가지 버전이 나란히 나온다. 하나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고 하셔서 이츠하크가 단을 쌓고 그의 종들이 우물을 발견한다. 다른 하나는 아비멜렉이 휘하를 거느리고 와서 이츠하크와 협약을 맺는다. 그래서 쉐바라는 이름이 된다. 현재 이스라엘 네게브에는 가나안 유적지 텔 브엘세바가 있고 베두인 도시 텔 아-사비가 있다. 사비는 쉐바다. 

가나안 브엘세바는 성벽 밖에 있는 와디 헤브론이 겨울철 물이 불어날 때 그 물을 끌여와 저장할 수 있도록 cistern을 팠다. 물이 흙으로 파고들지 않도록 플라스터를 발라서 하얗게 보인다. 그 cistern저수로를 걷는데, 이 깊은 구덩이를 파고 플라스터를 바르다 와락 자빠질 번했는지 인부가 플라스터가 마르지 않은 벽을 만진 흔적을 발견했다. 그곳에 손을 대 보면 역사와 시간을 체험하는 게 고고학의 묘미이다. 


5알리야 (26:30–27:27): 이츠하크의 틀어진 계획

  • 브엘세바와 세바의 이야기 끝에 에사브가 가나안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했음이 언급된다.
  • 노년의 이츠하크가 죽음을 대비한다. 그것은 자식을 축복하는 것이다. 이 축복의 전제가 왜 '먹을 것'인지 곰곰 생각해본다. 본인이 넉넉히 만족해야 충분히 자식을 축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혼자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후손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키는 과제가 남았음을, 그것이 죽음 앞에서 성도가 해야 할 일임을 기억하자. 
  • 리브카가 끼어들어 이삭의 계획을 틀어버린다. 요즘은 많이 알려진 용어지만 역기능가정에 대해 성경이 조망하는 비전은 실로 대단하다. 대체 짐승의 수준에서 크게 나을 바 없었을 고대 인류가 무슨 수로 인간활동의 부작용까지 통찰할 수 있었던 것일까. 나때만 해도 리브카가 태중에 아이가 있을 때 받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야아콥을 내세우는 걸 정당화하는 해설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이건 편애다. 지금 편애하는 부모들한테 물어보면 편애의 이유는 꽤나 정교하고 심지어 정당해 보이기까지 한다. 편애하는 부모는 이츠하크든 리브카든 부모로서 제대로 역할하지 못한 것이다. 아마도 그걸 인정하는 데서 가정의 치유가 시작될 수도 있다. 
  • 어머니와 짜고 아버지를 속이는 야아콥의 모습이 나온다. 어떻게 벌써 왔냐고 하니까 여호와께서 순조롭게 짐승을 만나게 하셨다고까지 한다. הקרה 직역하면 하나님이 내 앞에서 발생하게 하셨다는 뜻이다. 거짓과 속임수는 거듭할수록 능숙해진다. 누구나 거짓과 속임수를 더해가며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 안타까운 것일 수도. 그런데 이츠하크는 새끼 염소גדי 고기와 사냥한 고기도 구분 못 한다. 결국 야아콥을 축복한다.


6알리야 (27:28–28:4): 이츠하크의 축복과 저주

  • 축복의 내용은 하늘의 이슬, 땅의 기름짐, 풍성한 곡식, 포도주다. 창조주의 간섭이 기대되는 모든 영역에서 승승장구하라는 뜻이다. 그 결과 만민의 머리가 될 것이다.
  • 에사브도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온다. 이츠하크는 심히 크게 떤다. ויחרד הרדה גדולה 자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단 둘밖에 없는데 속았으니 놀라기도 했을 것이다. 
  • 에사브는 남은 축복이 하나라도 있을 게 아니냐면서 떼를 쓴다. 여기에서 에사브가 아버지의 축복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만하다. 하나님 나라는 침노하는 자의 것이 아닌가.
  • 리브카는 야아콥을 빼돌린다.  

 

7알리야 (28:5–9): 야아콥을 내보내는 이츠하크

야아콥은 밧단아람, 리브카의 오빠 라반에게 피신하고, 에서는 이스마엘 딸을 아내로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