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흐 레하에 이은 아브라함의 두 번째 파라샤 바예라를 읽는다. 하갈과 이스마엘의 추방, 이츠하크의 아케다가 포함된 파라샤다. 하프타라는 이사야 33:17-35:10, 안정된 처소 시온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에서 시작해 거기 놓이게 될 거룩한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1알리야 (18:1-14) : 헤브론 근처 엘로네 마므레, 여호와께서 나타나신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구운 세몰리나 밀가루빵, 하인이 요리한 기름진 송아지 고기, 버터와 우유를 나란히 내놓는다. 코셔가 아니다.ㅋ 여호와의 말씀은 기한이 이를 때כעת חיה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the season cometh round 계절이 다 채워질 때이다. 현대 히브리어는 즈만 히기아, 때가 됐다는 표현을 쓴다. 이왕 오셨는데 지금 당장 이뤄주시지 않는 이유가 있을까. 기껏해야 때를 기다리라는 말을 들은 아카라 불임여성 사라는 웃는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의 체념이 웃음이다. 눈물도 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그 웃음의 의미를 헤아리신다. 사라의 웃음이 아들의 이름이 되는 것은 전체 스토리에서 대단히 매력적인 문학장치다.
2알리야 (18:15-33) :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הַמְכַסֶּה אֲנִי מֵאַבְרָהָם, אֲשֶׁר אֲנִי עֹשֶׂה 그래서 자신으로 인해 열국이 복을 얻게 된다고 들었던 아브라함은 소돔과 아모라의 멸망 계획을 알게 된다. 그것도 여호와가 직접 내려가 살펴보고 멸망을 결정하실 예정이다. 이때 아브라함의 행동이 참 인상적인데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서 있는עומד 것이다. 앞서 여호와의 멸망 사례는 이미 나왔다. 여호와는 그 계획을 노아흐에게 말씀하셨다. 노아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개입한다.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망하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고 반론한다. 아브라함은 의인의 숫자를 50명에서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으로 줄여가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한다. 그의 용기가 가상한가. 그때마다 여호와는 내가 멸하지 아니하리라לא אשמית를 반복하신다. 여호와가 인간에게 원하는 것은 멸망이 아니라 생명이기 때문이다. 한 도시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의인 열을 유대교는 공동 기도의 최소 숫자, 미니얀מניין으로 지킨다. 미니얀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사람을 미니안 맨이라 한다. 노래도 있다.
한 유대인이 샤밧 오후 알라바마 모빌에 도착해, 자신과 비슷하게 차려입은 사람을 만나 이 동네 유대인이 몇 명이냐고 묻는다. 원래는 미니얀이었는데 최근 한 분이 돌아가셔서 다들 침울하다고 하더니, 또 한 명의 유대인을 만난 것 같다며 청한다. Won’t you stay with us for Shabbos, Minyan Man? 미니얀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기도와 활동들이 있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자기 종교 속에 포함시키는 대신 미니얀 맨을 기다리겠다는 퍽이나 가상한 노래다.
3알리야 (19:1-20) : 두 천사는 밤에 도착해 길거리에서 묵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롯이 손님을 맞아 무교병 마짜를 대접한다. 시간이 걸리지 않는 대신 맛없는 빵이다. 우연일까. 롯의 가족은 구원을 바라고 서둘러 거처를 떠나야 한다는 점에서 출애굽 직전의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였다. 소돔과 아모라 사람들의 패역함은 어나더 레벨이었고 롯의 사위들은 멸망의 경고를 농담מצחק처럼 듣는다. 천사들은 롯의 가족에게 들ככר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가라고 말한다. 롯은 산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가까이 있는 작은 도시 미쯔아르에 머물기를 청한다. 그래서 도시는 쪼아르라는 이름을 얻는다.
4알리야 (19:21-21:4) : 일출과 함께 시작된 멸망기.
-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고ותבט 소금 기둥נתיב מלח이 된다. 바라보는 행위는 원래 열망을 담기 마련이다. 롯의 아내는 이 패역한 도시에서 이루었던 영광을 헤아려본 것이었을까. 진저리나는 이 도시 사람들이 속절없이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며 후련함을 느꼈을까.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롯의 아내는 이 바라봄의 행위로 인해 소금 기둥이 된다. 이때 기둥은 단순한 아무드עמוד가 아니라 נציב바라보고 감시하도록 세워진 수비대를 뜻하는 단어이다.
- 언제 시작된 전설인지 현재 사해 소돔 산에 있는 형상 하나를 두고 롯의 아내가 변한 소금기둥이라는 주장이 있다. 처음에는 웃음이 나왔다מצחק. 농담 같은 이 이야기가 얄팍한 장삿속과 다를 게 없어 보였으니까. 게다가 내게는 상식과 지성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 내 상식과 지성은 조금 달라졌다. 저렇게 서 있는 감시자를 바라보며, 나의 신앙고백이 향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일깨워주고 있다고 느낀다. 성지의 신드롬일 수도 있다.
- 모압과 암몬의 치욕적인 민족 형성사를 다룬다. 두 민족을 조롱할 목적이 아니었을까.
- 선지자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 속였다가 들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이번엔 그랄 땅이다. 여호와는 이 일을 계기로 태를 닫고 여는 능력을 입증하신다.
5알리야 (21:5-21) : 아브라함이 백 세, 사라가 구십 세에 이삭이 태어나 팔 일 만에 할례를 받는다. 아이의 젖을 떼는 날יום הגמל 하갈의 아들이 이삭יצחק을 놀린다מצחק. 웃음과 관련돼 아이의 이름이 된 이 동사는 다른 성경 본문에서 성적인 희롱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사라는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고 요구하고, 근심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사라의 말을 들으라 하신다.
1)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하갈의 어깨에 떡과 물을 얹어주고 아이ילד와 함께 내보낸다.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다 마실 물이 떨어진 하갈은 아이ילד를 관목 덤불에 내려놓고 운다. 아이ילד가 죽는 걸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등도 돌렸다.
2) 그런데 하나님이 나아르נער 즉 소년의 소리를 들으신다. 갑자기 하갈의 아들이 옐레드에서 나아르로 바뀐다. 유대교도 이슬람교도 13살을 넘긴 남자아이는 성인으로 대우한다.
3) 천사는 하갈에게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고 한다. קוּמִי שְׂאִי אֶת-הַנַּעַר, וְהַחֲזִיקִי אֶת-יָדֵךְ בּוֹ 아이를 일으켜 세워 강하게 붙들라는 것은 단순한 모성만이 아니다.
4) 하갈은 자신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룬다는 예언을 받는다. 하갈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흔치 않은 구약의 여성이다.
5) 하갈은 눈이 밝아져 샘물을 발견하고 아이에게 마시운다. 아이는 광야에서 자라 활 쏘는 자רבה קשת가 된다. 로베 케쉐트는 언뜻 이해가 안 가는 단어다. 직역하면 활이 넘쳐난다는 의미다. 현대 히브리어에서 로베 마임이 물총인 것과 연관시키면 좋다.
이 단락은 파라샤 바예라에서 가장 주목받는 본문이다. 22장 아케다와 평행하기 때문이다.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을 바치는 우물 곁 통곡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는 아케다의 전조이다. 그래서 유대교는 로쉬 하샤나에 21장과 22장을 나란히 읽는다. 미쉬나는 진작부터 하갈과 이스마엘의 이야기에 관심을 쏟았다. 요하난 벤 자카이의 제자 엘리에제르 히르카누스가 남긴 '피르케이 데라비 엘리에제르', 즉 PdRE가 상세히 다룬다. 현재 유대교 종교인들이 이스마엘의 후손들을 대하는 태도와 비교할 수 없는 애착과 관심으로, 주후 2세기 랍비들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해석했다. 사라가 죽고 아브라함이 맞이하는 또 다른 아내 그두라를 하갈과 동일인물로 해석하는 경향도 이들로부터 시작됐다. 주후 7세기 패권을 잡은 이슬람이 자기 조상의 이야기를 재창조할 때 당연히 이런 유대교 해석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6알리야 (21:22-34) : 아브라함과 그랄 아비멜렉 사이에 서로 우물을 뺏지 않기로 맹세한다. 이런 맹세가 가능한 이유는 아브라함이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아비멜렉이 보았기 때문이다. 맹세에 사용된 암양이 일곱이라 쉐바의 우물, 혹은 우물을 두고 맹세했기에 브에르의 맹세, 브엘쉐바가 됐다. 우물 옆에는 그늘이 필요하니 아브라함은 브엘쉐바에 에쉘 나무 tamarix 즉 salt cedar를 심는다.
에쉘 나무와 관련된 사람은 아브라함 외에도 사울이 있다. 사울은 다윗을 추적할 때 기브아 높은 곳에서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삼상 22:6). 또 길보아 산에서 죽고 벧샨 성벽에 박힌 사울과 아들들의 시체를 야베스 주민들이 에셀 나무 아래 장사지냈다.
이스라엘 광야에 가면 쉽게 발견되는 나무이다. 사실 이 정도 우거진 사이즈는 희귀하고 대개 관목에 가까운 자잘한 크기이다. 라틴어로 tamarix라고 불리는 이유는 부들부들한 잎사귀가 tammis 깃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염분 함량이 높아 물이 별로 필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삼투압 현상으로 나무에서 수분이 증발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에쉘 나무 아래 들어가면 같은 그늘이라도 훨씬 시원하다. 류마티즘, 천식, 간질 등에 좋은 약재이기도 하다. 브엘세바에서 가자 방향 (그랄 땅)으로 가는 길 주변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런데 수퍼에서 파는 유제품 중에 에쉘이라는 이름의, 발효유, 버터 밀크, 히브리어로 레벤לבן이 있다. 요구르트와 사워 크림שמנת 중간 정도의 맛이다. 솔직히 세 가지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라면 못하겠다. 목축업 국가들에서 유제품의 다양함은 쌀 농사 짓는 우리가 따라가기 벅찰 정도다. 아무튼 트누바라는 유제품 회사가 레벤의 브랜드 이름으로 아브라함이 심은 나무 이름 에쉘을 붙인 것이다. 아니, 발효유하고 광야 나무하고 너무 얼토당토하지 않나.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의 언어생활이 희한해서, 이 레벤으로 만든 도넛을 수프가니야 에쉘이라고 부른다. 수프가니야 레벤이라고 부르면 다들 이상하게 쳐다본다.
7알리야 (22:1-24) : 아케다, binding 스토리다. 21장과 평행한다.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
2) 나아르 이삭을 위해 하나님은 친히 보이실(예비하실) 것이다. 여호와 이레יהוה יראה.
3) 천사는 아브라함을 말리며 나아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고 한다.
4) 아브라함의 씨가 크게 번성할 것이다.
5) 아브라함은 돌아가 브엘세바에 거주한다.
파라샤 바예라는 리브카를 소개하며 마친다. 이어지는 이야기가 사라의 죽음과 이삭의 결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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