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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ha

파라샤 브레쉬트 (창 1:1-6:8)

첫 번째 파라샤인 브레쉬트는 창세기 1:1에서 6:8까지이다. 꽤 많은 분량이다. 창세기가 50장인데 유대교는 12개 파라샤로 나눈다. 창세기를 3개월 동안 읽는 것이다. 다른 토라도 마찬가지지만 창세기는 장소의 기원을 다루는 본문이 많다. 그래서 이런 책을 참고하면 좋다. 파라샤의 장소 Place of Parasha 절판됐다ㅋ. 이스라엘 사람들도 요즘 책을 잘 안 읽는 모양이다. 요엘 엘리쭈르의 박사 논문이다. 우파 종교인이고 이스라엘 땅은 유대 민족과 하나님의 영으로 신비롭게 연결돼 있다는 구쉬 에무님의 사상에 동의하는 분이다. 거주지도 오프라이다. 성서학계는 아직도 결론 나지 않는 본문 쪼개기에 정신 없는데, 성경의 지리학적 의미라도 철저하게 풀어주는 책이니 고맙다. 800페이지가 넘지만 좋은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1알리야 (1:1-2:3) 천지창조 이야기다. 순서가 중요하니 짚어본다.

  • 욤리숀(첫째 날) 빛אור으로 인해 낮יום과 밤לילה이 나뉘었다.
  • 욤쉐니(둘째 날) 라키아, 물 사이 창공이 생겨 물과 물이 나뉘니 하늘שמיים이다.
  • 욤슐리쉬(셋째 날) 하늘 아래 물이 모여 바다ימים가 되고 에레츠가 드러난다. 에레츠에 식물이 난다.
  • 욤르비이(넷째 날) 하늘에 메오로트가 떠서 에레츠를 비추자, 낮과 밤 사이에 오트(징조), 모에드(절기), 욤(일), 샤나(해)가 생긴다. 큰 마오르는 낮을, 작은 마오르는 밤과 별들을 다스린다. 
  • 욤하미쉬(다섯째 날) 물מיים 안이 번성하고, 에레츠ארץ와 샤마임שמיים에 네페쉬 하야(살아있는 것)와 오프(새)가 생긴다. 하나님이 창조하시는ברא 첫 번째 생명은 타니님과 물 속의 개체들, 그리고 새들이다. 이들에게 명령이 주어진다.   .פְּרוּ וּרְבוּ, וּמִלְאוּ אֶת-הַמַּיִם בַּיַּמִּים, וְהָעוֹף, יִרֶב בָּאָרֶץ 새끼를 낳고 많아져서 바다들의 물을 채우라, 새는 땅에 많아지라. 
  • 욤쉬시(여섯째 날) 땅이 네피쉬 하야, 즉 가축(베헤마), 곤충(레메스),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그리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최초의 창조물은 타니님이지만 하나님 형상을 받은 창조물이 인간이다. 이들도 명령을 받는다. פְּרוּ וּרְבוּ וּמִלְאוּ אֶת-הָאָרֶץ, וְכִבְשֻׁהָ; וּרְדוּ בִּדְגַת הַיָּם, וּבְעוֹף הַשָּׁמַיִם, וּבְכָל-חַיָּה, הָרֹמֶשֶׂת עַל-הָאָרֶץ새끼를 낳고 많아져서 에레츠를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כבשוה. 물의 생선, 하늘의 새, 땅에서 움직이는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제압하라רדה 
  • 욤슈브이, וַיְכֻלּוּ הַשָּׁמַיִם וְהָאָרֶץ, וְכָל-צְבָאָם 하늘과 땅과 그들의 주인이 완성됐다. 샤밧이다.

 

브레쉬트는 히브리어 문법으로 설명이 안 되는 단어이다. 베는 전치사이고 레쉬트는 여성형 형용사 혹은 부사인데 이게 어떻게 한 단어를 이루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레쉬트가 명사라는 건 현대 히브리어의 타협이다.) 메소포타미아 창조 신화의 첫 소절 에누마 엘리쉬와 유사하다. 에누마는 때를 나타내는 접속사이고 엘리쉬는 엘 전치사와 리쉬 형용사의 결합이다. 그래서 when on high라는 기묘한 번역을 한다. 문학적 문서적 영향사는 확실하다. 이걸 부인하는 건 아카드어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히브리어가 모국어인 이스라엘 성서학계도 수긍한다. 자신들을 쉽게 몰살해 버릴 수도 있는 대제국이 만신전의 수장으로 마르둑을 추대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선포되는 종교적 헤게모니를 거부하고 한줌도 안 되는 이들이 야훼 신앙을 고수한 것이기에 이 신앙이 더 특별한 것이다.

 

2알리야(2:4-19) 창세기는 11개의 톨도트 역사로 이뤄진 본문이다. 첫 번째 톨도트 하늘과 땅의 역사이다. 창조 이야기가 다시 반복된다. 일종의 미시적 관점이다. 하나님이 아파르 민하아다마, 아다마의 먼지로 아담의 형태를 만드시고 그의 코에 니슈맛 하임,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자 아담이 네페쉬 하야로 되었다. 하나님이 그를 동방에 에덴에 정원에 두셨다. 에덴 주위에는 네 강이 흘렀다.

  • 첫째 강은 피숀으로 하윌라 땅을 둘러쌌는데 그 땅에서는 질 좋은 금과 브돌라흐와 슈함이 났다. 슈함은 제사장의 흉배에 달리는 열두 돌 중의 하나이다. 아라비아 북부, 혹은 북아프리카를 가리킨다는 견해가 각각 있다. (*요세푸스는 겐지즈 강(!)이라 했고, 라쉬는 나일 강으로 보았다. 주석가는 자기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떤 주석도 절대시돼서는 안 된다. 아라비아 반도를 가로지르는 게 상식적으로는 맞다. 아라비아 반도가 하윌라 땅이기 때문이다. NASA에서 일하시는 분이 Wadi Rumah를 밝혀냈다. 근본주의자들은 곧 NASA를 이단시할 것이다. 원치 않는 걸 자꾸 밝혀내니까.)
  • 둘째 강은 기혼으로 쿠쉬 땅, 즉 에티오피아를 둘러싼다. (*이 주석을 단 라쉬의 권위에 도전할 주제는 못 되지만, 말이 안 된다. 요즘은 이란으로 흐르는 karun river라는 데 대개 동의한다. 물론 동의 안 하는 사람도 다수다.) 
  • 셋째 강은 티그리스, 힛데켈
  •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 프라트이다. (기혼과 프라트가 예루살렘 근방에 있는데 이 때문에 오해가 상당하다. 오해다.)

하나님이 아담을 에덴 정원에 두셨는데 여기서 일하고 지키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선과 악을 아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고 명하시며, 먹는 날엔 죽는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왜 죽는다고 하셨을까? 거짓말일 수는 없으니 영적 죽음의 은유일까? 모든 걸 직설적으로 하신 분이 이 문제만 은유를 사용하신다?  

또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사는 게 좋지 않다고 보시고 땅의 생물과 하늘의 새를 데려다 아담에게 이름을 짓게 하신다. 

 

3알리야(2:20-3:21)

  • 아담은 땅의 가축과 하늘의 새들에 이름을 주었지만 자신의 에제르 케네그도, 즉 돕는 배필을 발견하지 못했다. 에제르 케네그도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다. 나와 남의 관계를 가리킨다. 남이란 내가 아니지만, 남이 없다면 나도 완성되지 못한다. 케네그도, 그의 상대방으로서, 그에게 없는 걸 채워줄 수 있는 도움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아담을 재우시고 갈비뼈 하나를 꺼내 그것을 이샤אשה로 지으신다בנה. 아담은 이샤를 보고 자신의 살과 자신의 뼈에서 나온 존재임을 알아본다.
  • 아담과 이샤는 벗었지만ערום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땅의 생물 가운데 가장 교활ערום한 뱀이 이샤에게 말한다. 정원 열매를 전부 먹을 수 없느냐? 아니다.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 먹지도 만져서도 안 되는데 죽을 까봐서이다. 뱀은 말한다. 안 죽는다. 먹으면 너희들 눈이 열려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걸 아시기 때문이다. 이샤가 과일을 보니 눈에 즐겁고תאווה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 만해להשכיל 보였다. (보암직과 먹음직은 이샤의 욕망을 과소평가한 번역이다. 이샤는 영특해지고 형통하고 싶었다.) 이샤가 하나를 취해 먹고, 또 아담에게 주어 먹게 했다. 그들의 눈이 열려 벗은 걸 알고 무화과 잎으로 가렸다.
  • 하나님은 동산을 거니시고 התהלך 그들은 숨었다 התחבא. 동산에서 일하고 지키는 게 아담의 사명이다. 죄는 사명을 방해하고 반대로 가게 한다.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신다. 아예카, 너는 어디이냐?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하나님은 이샤에게 물으신다. 뭘 했느냐? 행위에 대한 질문이다. 당연하지만 하나님은 뱀에게는 묻지 않고 처벌을 내리신다. 너는 저주를 받아ארור 배로 기고 먼지를 먹으며 이샤와 사이에 적대감이 생겨 이샤의 후손이 네 머리를 치고 너는 그의 발꿈치를 친다.
  • 이샤는 행위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네 자녀의 생산 때 네 슬픔과 고통을 내가 배가시키리라. 너는 네 이쉬를 열망하고תשוקה 그가 너를 다스린다. 
  • 아담은 존재가 변질됐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않고 이샤의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아담의 존재의 근원인 아다마가 저주를 받는다. 아담은 평생 고통을 삼키게 된다. 아다마는 이제 코츠와 다르다르를 내어 아담의 노동을 힘겹게 한다. 다시 아담은 아다마로 돌아갈 것이다. 이 일 후에 아담이 이샤를 하와, 생명이라 이름 한다. 하나님이 둘에게 카토노트 오르, 가죽으로 된 가운을 만들어 입히신다.      

 

4알리야(3:22-4:18)

  • 에츠 하하임, 생명나무에 손대지 못하도록 아담은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난다. 거기서 아담은 아다마를 경작해야 한다. 동산을 지키는 임무는 케루빔, 스랍들이 맡는다. 불 칼이 에츠 하임,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킨다. 
  • 아담과 하와의 첫째 아들 카인이 태어난다. 하와는 말한다. קָנִיתִי אִישׁ אֶת-יְהוָה 내가 하나님과 함께 사람을 만들었다. 그래서 하와는 생명의 어미이다. 히브리어 동사 카나קנה는 사다, 창조하다의 뜻이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창조자, 코네קונה이다(창 14:19). 켄, 보금자리와도 관련돼 있다. 집을 세우는 것이다. 질투하는 것도 역시 카나קנא이다. 자신의 질투를 잠재우지 못하는 사람은 집을 허물게 된다는 표현도 있다.    
  • 형제 헤벨이 태어난다. 공허하다는 뜻의 이름이다. 생명이 짧기에, 아다마의 임무와 상관없는 양치기이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여긴다. 유대교 외경 희년서는 창세기에 등장하지 않는 이름들을 소개하는데 아담과 하와의 두 딸의 이름이 나온다. Awanאון과 Azuraעצרה이다. 아웬이 카인의 부인, 아쭈라는 셋의 부인이다. 
  • 헤벨을 살해한 가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아다마에서 쫓아내 달라고 청한다 מֵעַל פְּנֵי הָאֲדָמָה. 아담이 아다마를 경작하는 사명도 저버린 것이다. 숨어 도망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카인은 하나님께 표를 받아 에덴의 동쪽 에레츠 노드에 거하게 된다. 
  • 카인의 자손이 하노흐, 이라드, 메후야엘, 메투샤엘, 레메흐로 이어진다.  

 

5알리야(4:19-22) 레메흐의 가족사만 짧게 다룬다. 아다는 야발과 유발을 낳고, 찔라는 투발 카인과 나아마를 낳는다. 두 명의 아내도 처음 소개되지만 레메흐의 아들들에서 특정한 세계들이 열린다. 

 

6알리야(4:23-5:24)

  • 레메흐는 두 번째 살인자이다. 카인을 능가하는 죄였다. 그것을 아내들에게 고백한다. 
  • 아담과 하와는 헤벨을 대신한 아들을 낳는다.שְׁמוֹ שֵׁת:  כִּי שָׁת-לִי אֱלֹהִים 그의 이름은 셋인데 하나님이 내게 주셨기 때문이다. 
  • 아담의 톨도트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닮게 창조하신 아담은 자신을 닮은 아들을 낳았다. 아담은 930살에 죽는다. 셋은 912세, 에노쉬(Human이라는 뜻)는 905세, 케난은 910세, 마할랄엘은 895세, 예레드는 962세에 죽는다. 에노흐는 메투살라를 낳고 365세에 사라진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 וְאֵינֶנּוּ, כִּי-לָקַח אֹתוֹ אֱלֹהִים

 

7알리야(5:25-6:8)

  • 메투셀라가 969세에, 레메흐가 777세에 죽고, 노아는 500세에 셈, 함, 야펫을 낳는다.
  • 아담이 아다마에서 많아지자 딸들이 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담의 딸들을 아내로 삼았다. 여호와는 아담에게 불어넣어주신 당신의 영이 영원할 수 없음을 아시고 아담의 날을 120년으로 정하신다. 세상에 네필림이 태어난다. 
  • 아담의 죄가 가득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다시 아담을 아다마에서 지워버리시기로 결정하신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의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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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샤 브레쉿트는 두 개의 톨도트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늘과 땅의 톨도트, 그리고 아담의 톨도트이다. 수미쌍관에 따라 궁극적으로 두 사람을 내세우고 있다. 아담과 노아이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여러 세대를 거듭하며 아담과 아다마의 관계에 집중한다. 아담은 아다마를 지키고 보호해야 하지만 번번히 죄를 짓고 아다마로부터 쫓겨난다. 결국 하나님은 아다마에서 아담을 지워버리기로 결정하신다. 그때 하나님의 마음에 든 유일한 아담, 바로 노아흐가 나타난다. 그래서 창세기 파라샤는 노아흐의 파라샤로 이어진다.

 

하프타라는 이사야 61장이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며 나사렛 회당에서 처음 읽으셨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 그 본문이다. 이 본문을 브레쉬트, 아담과 아다마의 톨도트로 읽으면 11절이 새롭게 다가온다. 

כִּי כָאָרֶץ תּוֹצִיא צִמְחָהּ, וּכְגַנָּה זֵרוּעֶיהָ תַצְמִיחַ--כֵּן אֲדֹנָי יְהוִה, יַצְמִיחַ צְדָקָה וּתְהִלָּה, נֶגֶד, כָּל-הַגּוֹיִם 땅이 식물을 내는 것처럼, 동산이 뿌린 것을 자라게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은 공의와 찬송을 모든 이방 앞에서 자라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성장을 증명해야 하는 이유다. 아다마에서 쫓겨남을 반복하는 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멘 출신의 아히노암 니니이다. 이스라엘 가수 중에는 특이할 정도로 예멘 출신이 많은데, 역시나 독특한 음색을 자랑한다. 니니의 무대 이름이 노아이다. 노아흐가 아니다. 노아흐נוח는 멈춤을 의미하고 노아נוע는 움직임이다. 유발 하라리의 중간 이름이 노아흐이다. 그래서인지, 대리모를 써서 아이를 낳는 일은 아직까지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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