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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교회들

베들레헴בית לחם은 '빵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베들레헴의 들판은 네게브나 브솔의 밀밭과 다른 감정을 일으킨다. 이곳에서는 햇살도 부드럽다. 유다 산지에서 바위에 반사되는 날카로운 햇빛과 다르다. 자고로 먹을 게 많은 곳은 느긋한 법이다.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게 옳다.

무엇보다 이곳은 룻의 이야기가 전해오는 것이다. 모압의 과부가 하나님 백성에게서 따뜻한 안식처를 발견했다. 먹을 것과 거할 처소가 필요한 이방인이 부스러기로 연명하다, 부유한 지주에게 받아들여지고 안전한 보호막을 얻은 것이다. 이 은총의 이야기가 베들레헴 빵집의 배경이다. 그 후손으로 태어난 다윗은 또 어떤가. 아들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홀로 아버지의 양을 치던 소년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다. 그는 헤아릴 수 없이 힘겨운 고난을 뚫고 왕이 되었다. 그를 통해 이 나라가 정의롭고 부강한 나라로 섰다. 베들레헴은 언더독들의 반전을 예비하는 곳이다.

가난한 부모는 이 베들레헴에서 출산할 장소도 구하지 못했다. 이 아기가 세상을 바꾸는 것과 별개로, 왜 이 도시는 그렇게 야박했을까. 룻과 다윗을 거치면서도 배운 게 없나. 아마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은 공짜가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 설사 안식의 공급처 빵집이라 해도, 기적을 위해서는 누군가 희생해야 한다. 그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베들레헴을 방문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거룩한 교회 Church of Nativity에 들어갈 때는 역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플래시백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베들레헴 젊은이 상당수가 투어가이드가 된다. 전에는 유대인 가이드들이 특별 허가를 받아 베들레헴 안에서 가이드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반드시 아랍인 가이드를 고용해 경비를 지불해야 한다. 베들레헴에서 가이드를 찾을 때 기준이 있다. 베들레헴 출신의 기독교인을 찾는다. 자신의 세례와 결혼식과 자녀들의 세례가 이 교회에서 있었던 사람에게서 플래시백을 기대한다. 이 교회가 단순한 돈벌이 수단만이 아니기를 바라게 된다.

광장에 도착해 정신없이 사람들에게 떠밀리다 보면 터무니없지만 교회 입구가 안 보인다. 저기요, 탄생교회가 어디예요? 지금 탄생교회에 있잖아요. 네?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아르메니안 St. Joseph 교회이다. 중간에 있는 게이트로 들어가면 그릭 정교회 제단으로 연결되고 그 왼쪽으로 카톨릭의 St. Catherine교회가 함께 있다. 성탄절 미사가 있는 날 밤, 탄생교회 광장으로 돌진하는 VIP 차량들에 웃음도 안 난다. 왜 그들은 예수의 탄생 교회에서조차 특권을 누리려는 걸까. 교회의 정문은 6세기 아치 아래 12세기 아치가 있고 그 아래 18세기 오토만이 만든 작은 '겸손의 문'이 자리한다. 무슬림조차 이 교회에 들어설 때 머리를 숙이고 겸손히 들어갈 필요를 느꼈다. VIP 차량으로 도착해 보디가드 영접을 받는 곳이 아니다.

이 교회는 같은 자리에 두 번에 걸쳐 세워졌다. 주후 339년 콘스탄티누스 어머니 헬레나 황비가 세웠던(다고 믿는) 첫 교회는 556년 사마리아 반란 도중 불태워진다. 곧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전성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교회를 재건한다. 6세기 비잔틴 제국은 가혹한 천재지변에 자멸할 지경이었다. 에베소 공의회(431년)에서 마리아의 테오토코스 지위가 확정된 터라, 마돈나께서 교회와 제국을 회복시켜 주시리라 기대하며 베들레헴 탄생 교회의 재건을 서두른 것이다. 예루살렘에 마리아 테오토코스를 기념해 세운 교회가 Neo Church이다.

탄생교회에서 가장 벅찬 곳은 339년 최초 건물의 바닥으로 믿어지는 모자이크이다. 1934년에 발견됐다. 복원을 위해 엄청난 돈이 들었다. 예수 탄생 장소가 역사적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그저 감격스럽다.


아기 예수가 탄생한 지점은 동굴, grotto로 알려져 있다. 그릭 정교회 제단 바로 밑이다. 예수님이 동굴에서 태어나셨다고? 마굿간이 동굴에 있나? 초기 전승은 그랬다.

그로토 옆으로 manger 짐승들의 거처가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 지점은 은색으로 된 14각 별이 장식하고 있다. 은별 위에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태어나다" 문장이 라틴어로 쓰여 있다. 14각형인 이유는 마태복음 족보가 이른 것처럼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14대, 다윗에서 바벨론 포로기까지 14대, 바벨론 귀환에서 예수까지 14대임을 나타낸다.
기독교 변증가이자 순교자 Justins은 165년 기록에 이곳이 예수의 탄생 장소라고 했다. 주전 6년 예수님이 태어나신 장소가 여기라고 증명할 도리는 없지만, 그로부터 160년 후부터 이곳이라고 말한 기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 어떤 장소도 이 정도의 백업을 받지 못한다.

십자군 시대의 위용이 느껴지는 Cloister 회랑이다. 십자군이 건설한 예루살렘 왕국의 지도자는 부용의 Godfrey였다. 하지만 그는 왕이 되기를 거절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왕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Advocate of the Holy Sepulchre 즉 성묘교회의 수호자 지위를 받아들인다. 애초에 십자군이 형성된 계기가 압바스 왕조의 무슬림 수호자 칼리프가 예루살렘 성묘교회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고드프리가 일찍 죽고 그의 동생 발드윈 1세가 왕위에 오른다. 그의 제위식은 예루살렘 성묘교회가 아닌 베들레헴 탄생교회였다. 아니 성묘교회 때문에 조직된 십자군의 왕이 왜 베들레헴에서? 당시 성묘교회는 이만저만 초라하지 않았다. 십자군 점령 50주년, 즉 희년을 맞은 1149년에서야 성묘교회의 으리으리한 봉헌식이 열렸다. 베들레헴 교회 회랑은 1948년 안토니오 베를루치가 복원했다.

탄생교회의 카톨릭 예배당 Church of Saint Catherine이다. 중세의 Cloister 구조와 안뜰이 잘 보존되고 있다. 십자군은 이곳에 어거스틴 수도원을 세웠다. 1347년 프란체스칸은 알렉산드리아의 동정녀 순교자 카타리나에게 채플을 헌정한다.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는 18세 때 막시미우스 황제의 핍박을 받는다. 황제는 카타리나에게 가시가 박힌 바퀴에 깔리는 사형을 선고했는데, 카타리나가 만지자 바퀴는 부러졌다. 결국 참수형에 처해졌고, 천사들이 그 시신을 시나이 산으로 옮겼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자발 무사 아래 6세기 후반에 세워진 수도원과 교회가 남아 있는 것이다. 탄생교회의 카톨릭 예배당은 1881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요세프 1세의 자금 지원으로 지어졌다. 요세프 황제는 예루살렘의 프란체스칸 본부 St. Savior 교회도 지원했다.

2019년 성탄절을 앞두고 바티칸은 진짜 구유의 일부를 reliquary(은으로 된 프레임)에 담아 탄생교회에 돌려주었다. 주후 7세기 성지가 이란 사사니드와 이슬람 등에 의해 요동치기 시작하자 예루살렘 총주교였던 소프로니우스는 당시 교황 테오도르 1세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그동안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교회에 보관돼 오다가, 바티칸과 팔레스타인의 관계 발전을 위해 되돌려보낸 것이다. 카톨릭은 성자의 유품이나 사후 뼛조각 등을 relic이라고 부르고 여기 영험한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아기 예수를 눕혔던 거룩한 구유 relic이 도착하고 얼마 안 돼 코로나가 닥쳐서 믿음이 흔들린 사람이 많을 것이다. 회중석에서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 제롬의 동굴이 있다. 제롬이 Vulgata성경을 번역한 자리로 믿는다.
이 교회가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크리스마스 미사 장소이다.

프란체스칸의 호스텔 카사 노바이다. 성지를 방문한 교황들 사진이 걸려 있다. 저 그림에 키스하는 신자를 본 적이 있다.

베들레헴 올 때만 해도 어렵게 오는 기회니까 두루두루 다 보고 가자고 다짐한다. Milk Grotto도, King David's Well도 갈 계획이었으나 배고 고프고 다리가 아프다.
"빵집" 최고의 쉐프 Suleiman Yusef Jacir가 살았던 궁전이나 베들레헴 대학 건물도 볼 만하다. 그러나 해가 진다.
돌아가야 할 때 그래도 한 군데 들러보자고 가는 곳이 Beit Sahour, 목자의 들판이다.
성탄절이었나. 너무 차가 막혀서 천천히 걷자고 걷기 시작했는데 걸어간 사람들이 차 타고 온 사람보다 먼저 도착했었다. 그러하다.

Beit Sahour는 야간 초소라는 뜻이다. 밤중에 들판에서 양을 지키던 이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구원자의 탄생을 알렸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바를루치가 설계한 교회가 서 있다. 대단하다고 하는데, 걸어오기까지 해서 기진맥진이라 피곤할 뿐이다.
일단 교회 건물은 양치기들의 텐트 형태를 반영했단다. 거룩한 밤의 사건을 반영해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구조다. 돔 주변에서 여섯 천사는 땅을, 여섯 천사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이탈리아 화가 Umberto Noni의 The Journey of the Shepherds가 있다. 목자들이 받은 소식, 예수 경배, 기쁨의 귀환 3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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