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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바의 하루

"신약 성경에서 욥바는 베드로와 관련돼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베드로는 병든 자를 고치며 복음을 증거했어요." 유대인들에게 신약 성경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멈춰 눈치를 본다. 듣기 싫은 말을 일부러 할 필요는 없으니까. 해도 될 것 같아 이어간다. "베드로는 룻다에서 애니아라는 중풍병자를 고쳐주었어요. 그때 욥바에 사는 도르가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오, 그래서 베드로가 도르가를 살아나게 했어요? 한 사람이 내 말을 가로채더니, 자기들끼리 한참을 떠든다. 그게 부활이잖아. 예수도 그거 한 거잖아요. 여기서 표정이 굳으면 하수다. "네, 여러분 잘 알고 있네요. 우리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나눌 수 있어 참 기쁩니다."

딱히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초현실적 신비에 대해 유대인들은 어색한 것뿐이다. 그래도 예수를 언급이라도 할 수 있는 건 이들이 세속인이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은 아랍인의 도시였고 교회의 거점인 욥바를 거의 찾지 않는다.

 

욥바, 혹은 자파는 예루살렘의 항구였다. 욥바 성문의 이름이 예루살렘 게이트이고, 거기에서 곧게 뻗은 예루살렘 대로를 거쳐 예루살렘 올드 시티의 자파 게이트까지 연결된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위해 레바논 백향목이 필요했을 때, 두로 왕은 레바논 바다에서 지중해를 통해 나무를 내려보냈다. 자파 항구에서 받아 예루살렘으로 운반한 것이다. 

 

자파의 예루살렘 게이트로 들어가면 좁은 골목들이 쿠르카르로 지어진 건물들 사이로 촘촘히 연결돼 있다. 텔 자파에는 주전 15세기 람세스 게이트가 있다. 람세스 2세의 요새가 자리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 전부터 복원 공사중이다. 원본은 자파 박물관에 있고 어차피 레플리카만 놓여 있다. 람세스 게이트에는 이야기 하나가 전해온다. 

 

투트모세 3세의 군대장관 타호티는 자파를 점령하는 데 계속 실패하자, 자파의 수장에게 메신저를 보낸다. 투트모세를 배신하고 자파에 투항하려는데, 이만저만하니 이 장소로 와서 항복의 증거를 받으라는 것이다. 자파의 수장은 타호티의 배신을 믿기 어려웠지만 항복의 증거인 투트모세의 홀을 받기 위해 오라는 곳에 갔고 결국 포로가 된다. 그날 밤 타호티가 보내는 선물이 200개의 큰 항아리에 담겨 자파 성 안으로 들어오는데, 그 속에는 200명의 병사가 숨어 있었다. 이집트의 항복을 받은 줄 알고 밤새 잔치를 벌이던 자파는 항아리에서 나온 병사들에 의해 점령된다.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 아닌가?

텔아비브를 대표하는 작가 나훔 구트만이 텔아비브 역사를 전체 12장면 모자이크로 표현한 바 있는데, 그중 자파와 관련된 것은 투트모세 군대의 자파 정복과 안드로메다 전설이다.

 

Jamma al Baher 바다 모스크와 안드로메다 바위이다.

 

자파의 카시오페아 왕비는 아주 거만해서 자기 딸 안드로메다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곤 했다. 바다 요정들이 이걸 듣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불평한다. 열받은 포세이돈은 자파를 무너뜨리려고 괴물 키투스를 보낸다. 자파의 왕 카페우스는 신탁을 받는데, 처녀를 괴물에게 바치라는 것이고 제비를 뽑았더니 왕의 딸 안드로메다가 뽑힌다. 키투스가 안드로메다에게 다가갈 때 하늘에서 페가수스를 타고 가던 페르세우스가 이를 지켜보았다. 메두사를 죽여 머리를 들고 가던 중이었다.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에게 눈을 감으라 하고, 메두사의 머리를 키투스에게 들이댄다. 괴물은 죽고 항구에서 이를 지켜보던 자파 백성은 환호하고 공주와 왕자는 행복한...이 그리스 신화의 배경이 자파일 줄이야. 

 

자파 항구의 랜드마크! 왼쪽 첨탑이 성 베드로 교회, 오른쪽 끝 등대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이다. 1799년 나폴레옹은 레반트 원정에서 자파를 정복했다.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은 개나 줘버리고 전염병에 신음하는 자기 병사들과 항복한 오토만 병사들 수천 명을 지중해에 몰아넣고 사살해 버렸다.

 

시몬의 집이 저기라는 건 아무 근거도 없다. 하지만 항구의 등대가 기능하던 1936년 이래 아르메니안 Zakarian 패밀리가 등대를 운영하면서 자파 항에 도착하는 기독교 순례자들은 저곳에서 베드로의 비전을 기념하기 시작한 것이다. 관광객에 지쳐버린 자카리안 패밀리가 문을 닫아 건 지 꽤 오래됐다. 현재 텔아비브-야포 시청이 재건작업을 하고 있다. 조만간 진정한 관광지로 거듭날 것이다. The Tanner's만으로는 마음이 안 놓였는지 der Gerbe까지 써놓았다. 

 

프란체스칸 성 베드로 교회이다. 고넬료의 방문에 앞서 환상을 보았던 사건을 기념하고 있다. 성지에서 교회 제단은 동쪽 예루살렘 성묘교회를 향하게 되어 있는데, 복음이 이방인을 향하기 시작한 곳이기에 제단이 서쪽을 향하고 있다. 교회 뒤쪽으로 바티칸의 대사관이 자리하고 있다. 자파에는 라 실레와 도르가 학교 등 기독교 교육기관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 

 

텔 자파에서 조금 떨어진 Abu Kabir 동네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성 베드로와 성 도르가 교회 Pravoslavny Kostel Svateho Petra a Pavla이다. 전에는 텔아비브의 슬럼가라고 할 수 있는 동네여서 근처에 가는 것도 꺼려졌는데, 소위 젠트리피케이션 시대에 편승해 교회를 둘러싼 공원 근처가 훤해졌다. 러시아 이민자가 많아진 결과이기도 하다.

 

철의 장막 속에 살던 구소련 유대인은 체제가 붕괴한 1990년대 약 100만 명이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여파로 가장 많은 이민자 그룹을 형성중이다. 이들이 모두 유대인일까? 1970년대 이민자들은 대개 유대인 신분을 증명할 수 있었다. 유대인은 삶의 주기가 랍비의 통제 아래 있다. 결혼과 출산과 할례와 바르미츠바 모두 랍비가 기록한 회당 자료에 있다. 그게 없다면 유대인의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 신분을 숨기거나 회당 활동이 위축되면서 구소련 유대인들에게 서류를 구비해 이민오라는 것은 황당한 요구였다. 물론 구소련에서 많은 유대인은 그 사회에 동화된 경우가 많았다. 이스라엘 이민법은 배우자가 유대인이거나 심지어 손자가 유대인이어도 이스라엘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 유대인이 아닌 구소련인들도 상당수 이민 자격을 얻어 이스라엘로 이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전체 9백만 인구 중에 유대인이 600만 명인데 그중에서 100만 명 이상이 구소련계다. 이스라엘 공식언어는 히브리어이고 아랍어가 비슷한 지위를 갖고 있으며 영어는 실용적인 이유에서 활용된다. 그런데 6명 중 1명이 구소련 출신이다. 대개 이들은 엄청난 교육열이 있기 때문에 히브리어를 빨리 습득하고 과학, 공학, 의학, 약학 분야에 쉽게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건 젊은 세대 이야기다. 구소련계의 초창기 이민에는 노년층이 꽤 많았다. 이들이 다시 언어를 익혀 새로운 도전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의 이민은 한꺼번에 이뤄졌다. 그래서 다른 어떤 이민자 그룹도 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난다. 즉 러시아 가게를 열고, 러시아 신문을 발행하고, 러시아 방송을 운영한 것이다. 히브리어 부활이라는 독특한 역사가 있는 이스라엘에서 어떤 이민자 그룹도 자기 모국어를 히브리어보다 앞세운 적이 없다. 그게 시오니즘이다. 그런데 러시아인은 자기 삶의 편리를 위해 시오니즘을 포기했다. 아니 애초에 유대인이 아니니 시오니즘도 내세울 이유가 없다. 

 

일반화이긴 하지만, 역사상 가장 인종주의에 많이 노출된 나라가 러시아이다. 아랍인은 말할 것도 없고, 스파라딤계 유대인, 에티오피아계 유대인에 대한 러시아계의 인종차별은 벌써 떠들썩하다. 아시아계는 어떻게 보냐고? 개인적인 경험으로 가장 밑바닥인 것 같다. 물론 인종차별은 모두 개인적인 경험이고, 교육 수준이나 사회 환경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따뜻하고 친절한 바부쉬카들을 물론 많이 만났다. 친구들 집에 초대받아 히브리어를 모르시는 분들에게 러시아어를 건네면 너무나 좋아하신다. (감히) 러시아어를 할 줄 아냐고 추켜세워주신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우연히 부딪친 러시아계에게서 친절함과 인간다운 대접을 받은 기억은 거의 없다. 이스라엘에서 아시아계는 대개 노약자를 돌보기 위해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인종차별은 당연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숨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런 인간의 본능을 자제시키는 건 현행법의 엄정함이고, 존엄을 지키려는 약자의 투쟁뿐이다.

 

이런 선입견 속에 성 베드로와 도르가 교회를 방문하면 조금 놀라게 된다. 이 교회를 지키는 러시아 성도들의 믿을 수 없이 환한 미소와 따뜻한 환대 때문이다. 나는 키릴 문자를 배워서 떠듬떠듬 읽는 수준인데 그런 나를 상대로 폭발적인 러시아어 가이딩을 해주셨다. 러시아 정교회를 Red Church가 장악하기 전, 로마노프 왕조의 후원으로 에레츠이스라엘에 들어온 러시아 정교회 white church의 특징일 수도 있다. 

 

러시아 정교회에 느끼는 친밀함 중 하나는 이 교회가 유난히 신약 성경 속 여성들을 기념한다는 점이다. 왜 그런 거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마돈나부터 당연히 여성이 중요하지 않냐는 답이다. 그렇지만 단지 마돈나만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 기념교회나 도르가 기념교회도 러시아 정교회뿐이다. 로마노프 왕가에서 교회의 후원자가 여성이었던 것과 관련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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