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살면서 직접 만나보지 않아 아쉬운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분의 사망 소식이 들렸을 때, 더 이상 만남을 기약할 수 없다는 사실에 서글펐었다. Bargil Pixner 베네딕트회 수사이다. 이분의 강의 파일을 갖고 있는데, 가끔 열어서 듣고 또 듣는다. 에레츠이스라엘의 십자군 역사 강의는 정말 최고다.
픽스너 수사의 유명한 표현이 있다. "성지 순례는 제5복음서이다." 이 땅의 지형이, 사람이, 건물이, 사건이 네 복음서에 이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또 하나의 복음서라는 것이다. 막달라를 비롯한 갈릴리의 기독교 유적지를 발굴했고, 쿰란 문서 연구를 통해 에세네 파와 예수님의 영향사를 주장했으며, 예루살렘 시온산에 에세네 쿼터와 에세네 게이트가 있었다고 규정했고, 예수님의 십자가형이 주후 30년 4월 7일 금요일이라는 의견도 내놓았다. 1970년대 Bruno Hussar 도미니칸 신부가 이스라엘 평화운동의 상징 네베 샬롬을 창시하는 것을 돕기도 했다. 픽스너 수사는 갈릴리 바닷가 타브가 교회에서 12년간 사역했고, 예루살렘 하기아 시온에서 말년을 보냈다.
픽스너 수사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제5복음서의 위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나사렛에 대해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체 이 도시는 왜 이러냐고.
나사렛은 이스라엘 영토에서 가장 큰 아랍 도시이다. 이 도시의 70퍼센트가 무슬림이다. 나머지 30퍼센트가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개 기독교인인데, 이건 엄청나게 많은 거다. 이스라엘에서 기독교인 숫자는 전체 인구의 2퍼센트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나사렛이 어색한 건 기독교인 인구가 적어서가 아니다. 어디서나 기독교인은 적다. 게다가 무슬림은 예수님의 신성은 거부해도 마리아 동정녀 잉태 같은 기독교 도그마를 거부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자신을 유대교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과 별개로, 유대교보다는 이슬람이 기독교를 훨씬 포용하는 입장이다. 유대교는 교회에 발을 들여놓는 것조차 금한다. 각종 아이콘과 조각상들이 유일신앙에 저촉되는 내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사렛의 도시 엠블럼을 보다 뭔가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나사렛의 상징이 우물이잖아?
정교회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 태동된 곳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다양한 전승들을 간직하고 있다. 500년경 겔라시안 칙령에 의해 금지된 야고보 복음이 대표적인 출처이다. 겔라시안 칙령보다 전인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이단시되어 로마 교회와 인연을 끊은 정교회들은 야고보 복음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고, 같은 정교회인 그릭 정교회도 이에 대한 선호를 멈추지 않았다.
야고보 복음은 로마 교회에서조차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카톨릭에서도 여전히 마리아가 성전에서 자랐다는 전통에 익숙하고, 마리아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가 성전의 동문에서 마리아 탄생 고지를 받았다는 점도 Mariology 차원에서 믿는다. 그래서 현재 예루살렘에서 동문 근처에 마리아가 탄생했다고 믿는 St. Anne 교회가 있고, 이슬람도 이 교회를 파괴하는 대신 미드라사로 개조해 사용했던 것이다.
야고보 복음서에 따르면,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은 것은 나사렛의 우물에서 물을 뜨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현재 나사렛의 도시 이미지가 이 마리아 우물이다.
그런데 내게 나자렛이란 단어는 이런 이미지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 וְיָצָא חֹטֶר, מִגֵּזַע יִשָׁי; וְנֵצֶר, מִשָּׁרָשָׁיו יִפְרֶה
여기서 우리말이 '한 가지'로 옮긴 '네쩨르'가 twig이다.
네쩨르에는 다른 뜻도 있다.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이 외치는 날이 있을 것이라"(렘 31:6). כִּי יֶשׁ-יוֹם, קָרְאוּ נֹצְרִים בְּהַר אֶפְרָיִם 이때 노쯔림은 파수꾼, 포도밭을 지키는 자라는 뜻이다.
이 네쩨르, 복수형 노쯔림이 히브리어로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기독교인은 나사렛 사람들인 것이다.
인정한다. 나는 나사렛의 마리아 숭상이 불편했고, 야고보 복음서가 껄끄러웠다. 기독교 최대 정파가 한쪽에서는 Hail Maria에 열을 내고, 다른 쪽에서는 가나안 시대도 아닌 십자군이 판 우물로 전설을 만드는 인위적인 도시가 노엽기만 했다. 2천년 전 이 도시가 예수님을 내쳤던 것처럼 지금도 예수님은 여기 계실 곳이 없다고 느꼈다.
작년 성탄절, 코로나가 마무리되고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진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사렛으로 몰려들었다. 과장 좀 보태면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는 심정이었다. 유대인들도 꽤 많이 찾았다. 웬일로 나사렛이 크리스마스 불빛으로 찬란했다.
작년 이맘 때 베들레헴은 나사렛만큼 회복되지 못했다. 베들레헴을 가리는 분리장벽의 위력을 실감했다. 동예루살렘에 있는 기독교 정파들의 총주교들은 성탄절 만큼은 분리장벽을 열고 베들레헴 안으로 행진하는 기념식을 갖는다. 아무나 참석할 수는 없으니 그저 스트리밍으로 지켜보는데 베들레헴의 초라함이 왜 이렇게 안쓰러운지 모르겠다. 아기 예수가 아직도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버려져 있는 기분이다.
이런 지도 한 장도 행정력이 돼야 만들어진다. 전 세계 기독교인을 더 많이 끌어들여 도시를 윤택하게 만들려는 나사렛의 무슬림 시장 알리 쌀람은 이스라엘의 아랍인들도 적극 투표에 참여하고 정부에 들어가 실질적인 혜택을 아랍인에게 돌려야 한다고 믿는 실용적인 인물이다. 2014년 이래 나사렛의 변화를 시장 한 명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이 알리 쌀람으로 인해 설명되기도 한다.
교회들은 이렇게 올드 시티에 몰려 있다. 8번 카톨릭 수태고지 교회에서 15번 정교회의 수태고지 교회까지 걸으며 나사렛만의 독특함을 느낄 수 있다. 중간에 있는 레스토랑 티슈린은 나사렛의 자랑이다.
3번이 JESUS trail이 시작되는 호스텔 Fauzi Azar이다.
6번이 Synagogue Church이다. 시장 안에 자리하고 있다. 이름이 다소 어색하다. 누가복음 4장에 따르면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 이사야 61장을 읽으시자, 나사렛 사람들은 쟤가 목수 아들 아냐? 쑤근거렸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 받지 못한다는 걸 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 엘리야 시대는 사렙다 과부만이, 엘리사 때는 수리아 사람 나아만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말에 불쾌해진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쫓아내고 산 낭떠러지에 끌고 가 밀쳐 떨어뜨리려 했다. 그곳이 현재 하르 크피짜. Mt. precipice이다.
7번 White Mosque는 전통적으로 기독교 축일을 함께 기념하는 모스크이다. 모스크는 비무슬림 신자를 반기지 않는 법인데 이곳은 기도 시간만 피하면 들어가서 꽤 환대를 받을 수 있다. 종교 관용을 실현하는 건 친밀함과 우호감이다.
나사렛은 꽤 규모가 큰 호텔도 있지만 거기 오가느라 교통 정체와 싸우다 보면 아무 보람도 느낄 수가 없다. 가능하면 도시 안에서 숙박하는 것이 좋다. 하루 종일 올드 시티를 돌아다니며 교회들과 모스크와 시장과 사람들을 돌아보는 게 정말 재미있다. 나사렛에 갈 때는 카톨릭 교회의 casa nova에 방이 있는 날을 알아보고 그날로 날짜를 잡는 편이다. 반대로 할 수가 없다. 카사 노바는 언제나 만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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