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북쪽에는 넘을 수 있는 국경이 없다. 거기 있는 나라들과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의 우리나라에 반도 기질, 섬 기질이 있는 것처럼, 이런 지형학적 한계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했다. 북쪽으로는 갈 수도 없고, 동쪽으로는 말만 들어도 갑갑한 나라들이 연이어 있고, 남쪽이라고 별수 없는 이 막힌 지형이 주는 답답함 때문에 자꾸 비행기 타고 나가는 것 같다. 유럽이나 북미라도 갈 곳이 있다는 느낌을 주니까.
이스라엘이 말 그대로 피땀눈물을 바쳐 차지한 골란고원. 시리아와의 국경이다. 정확히 말하면 UN군과의 국경이다. 1973년 10월 욤키푸르 전쟁이 끝났지만 1974년 5월까지도 이곳에서는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군사 대립이 거셌다. UN 안보리가 개입해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간신히 협정을 맺고 충돌 지역에서 각각 철군했다. 원래 충돌하는 양자가 타협에 의해 정하는 것이 '국경'인데, 이 양자는 여기 타협이란 걸 한 일이 없다. 그래서 이조차 국경이라 할 수 없고, 일종의 휴전선이다. UNDOF, UNITED NATIONS DISENGAGEMENT OBSERVER FORCE가 양측의 범프 존을 지키고 있다. 유엔평화군은 분쟁 당사국과 이해관계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 근무하는 군인들은 주로 네팔과 인도에서 왔다.
벤탈에서 바라본 아비탈과 쿠네이라. 1967년부터 1973년까지 이스라엘이 점령했고, 1974년 철수하며 파괴한 쿠네이라는 여전히 파괴된 채로 남아 있다. 시리아는 '시오니스트에 의한 파괴의 증거'로 이 도시를 남겨두고 있다. 이 와중에 땅이 얼마나 비옥한지 도드라진다.
과거 시리아 정보부의 본부 건물이다.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스파이 엘리 코헨 루트의 시작이기도 하다. 저기 차를 댄 인물이 누군지 보려고 기다렸다. 드루즈인들이 많이 찾아온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므로.
히브리어는 죽은 사람 이름 옆에 ז"ל 그의 기억이 복되기를-이라는 표현을 덧붙인다. 우리말에서 (고)를 붙이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런데 엘리 코헨은 הי״ד (הַשֵּׁם יִקּוֹם דָּמוֹ) 가 붙는다. "하나님이 그의 피를 갚아주시기를"이란 뜻이다. 넷플릭스에 사샤 바론 코헨이 연기한 엘리 코헨 드라마 the Spy가 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국경은 더 이상하다.
왼쪽으로 상부 갈릴리, 오른쪽으로 골란 고원을 둔 저지대는 에쯔바트 갈릴, 갈릴리의 손가락이라 불린다. 가닥가닥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경이 여러 곳에 있는데 일단 이 지도상으로 두 군데이다. 메툴라와 아자르.
메툴라는 19세기 로스칠드의 도움으로 형성된 모샤바이다. 유대인이 거주하며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레바논 전쟁 당시 이스라엘 군대가 이곳을 통과해 레바논으로 들어갔다. 1982년 샬롬 하갈릴 전쟁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이 국경을 통해 레바논의 남부 기독교 용병에게 무기와 식량을 제공했다. 그래서 이름이 Good Border이다. 국경은 폐쇄됐고 그 너머로 이스라엘 군대의 초소가 있다.
메툴라에서 보이는 레바논 땅.
정말 신기한 곳은 Ghajar 아자르이다. 저기 골짜기 하얀 색 탑이 UNIFIL, UNITED NATIONS INTERIM FORCE IN LEBANON의 초소이다. 그 너머가 레바논이다. 이곳은 레바논 영토인데 시리아 국민이 살고 이스라엘이 점령한 곳이다. 1967년 6월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을 점령하면서 아자르의 운명은 수없이 뒤바뀌었다. 아자르가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에 반반씩 걸쳐 있기 때문이다. 아자르 시민들은 원래 시리아인들이기 때문에 레바논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다른 시리아 드루즈 마을들(마잘 샴스, 마싸데, 엔 키니예, 부카타)처럼 이스라엘 점령지가 되기를 원했다.
1978년 레바논 내전, 1982년 레바논 1차 전쟁, 그 이후 늪에 빠지는 것처럼 레바논 상황에 끌려다니며 엄청난 피해를 입은 이스라엘은 2000년 전군 철수를 결정한다. 하지만 레바논 영토가 걸쳐 있는 아자르에서 헤즈볼라에 의한 도발이 그치지 않았다. 이스라엘 내각은 여러 차례 아자르 북쪽 지역에서 이스라엘 군대의 철수를 결정했지만 레바논에서 헤즈볼라가 강성해지면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철수를 반대하는 아자르 시민들의 시위도 거셌다. 2013년 시리아 내전까지 발발하면서 아자르에서 철군은 더욱 불가능해졌다. 현재 아자르의 인구 2800명은 모두 이스라엘 시민이다.
이들이 Alawite, 즉 알리를 믿는 무슬림이라는 게 이유일 수 있다. 알리는 아부 바크르, 오마르, 오스만에 이은 네 번째 칼리프였고, 파티마의 남편으로 무함마드의 사위이자 사촌이다. 무함마드가 아들 없이 죽자 그의 부인이자 아부 바크르의 딸 아이샤는 이슬람 권력투쟁, 즉 내전 파티마를 주도한다. 알라위트는 무함마드가 죽기 직전 알리를 후계자 Mawla로 세웠다고 믿는다. 그래서 Eid al Ghadir가 가장 큰 축일이다. 시아파와 비슷하지만 알리의 아들 후세인에게는 관심이 없어서 이름이Alawite이다. 시아파와 달리 타종교에게 관대하다. 이런 관대함이 현실을 직시하고 이스라엘 시민권을 선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자르의 선택에 이스라엘도 부응했다. 저녁 8시가 되면 다음날 아침까지 닫힌 문 안에 갇혀야 하는 마을이 골란고원 최고의 관광지로 부상한 것이다. 주말이면 하루 방문객이 5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갑자기 식당과 커피숍들이 생겨나고 있다.
아자르 평화의 공원에 있는 이슬람 꾸란과 카톨릭 마리아 동상과 드루즈의 이드로 무덤. 우크라이나에서 온 주민이 있어 크리스마스 트리도 세우고 있다. 알라위트의 독특한 종교성이다. 현재 시리아 대통령 아사드 가문과 모로코 왕 무함마드 6세 가문이 알라위트이다 (그래서 자기 나라 무슬림들한테 인기가 없다).
이스라엘의 해안선 국경은 로쉬 하니크라이다. Grotto의 Head라는 뜻이다. 여호수아서에는 미스르봇마임이라고 되어 있다. משרפות מים 불타는 물이라는 뜻이다. 무슨 수로 물이 불에 타나? 아마도 해수를 증발시켜 소금을 얻는 곳이었을 것이다.
영국은 이곳을 다스릴 때 로쉬 하니크라를 통해 철도를 설치했다. 카이로에서 이스탄불까지 이어지는 철도다. 아랍과 전쟁이 임박하자 이스라엘 용병대 팔마흐가 1948년 2월 이 철로를 폭파했다. 이스라엘 철도 북단은 나하리야이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표어가 생 각나는 곳이다. 키부츠로 들어가면 레바논과 국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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