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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ha

파라샤 미케츠 (창 41:1-44:17)

하누카 기간 중 샤밧에 파라샤 미케츠를 읽는다. 2년의 끝(케츠)에 감옥에서 나와 바로의 마슈비르가 된 요셉이, 애굽을 찾아온 형제들과 재회하는 이야기이다. 하프타라는 하누카 기간이기 때문에 스가랴 4:1-14 메노라와 두 감람나무의 환상이다. 

파라샤 미케츠의 하프타라는 대부분 스가랴서를 읽지만, 하누카가 아니라면 열왕기상에서 솔로몬의 재판 부분을 읽게 된다. 모에드, 절기라는 것은 참 독특하다. 매년 그저 흐르는 시간 속에 돌아오는 일인데 매번 새롭다.

 

1949년 2월 10일 이스라엘 국가의 상징으로 채택된 엠블럼이다. 이걸 보고 나면 상상 속 스가랴 4장의 이미지가 달라진다. 그래도 여전히 이게 무슨 소립니까 묻지 않을 수 없게 난해하다. 

 

메노랏 자하브, 금으로 된 등잔대 꼭대기에 굴라, 일종의 knob 혹 (우리말 기름 그릇)이 달려 있다. 그 knob 위로 오일 램프가 7개인데, 램프마다 무짜카 기름을 담는 항아리가 있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천사에게 물었다. 천사는 굳이 이걸 정말 모르냐고 되묻고 선지자는 정말 모른다고 재차 답한다. 그제서야 이것들의 뜻이 알려지는데, 첫째, 여호와가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이라는 것이고, 둘째 힘이나 능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된다는 것이다 לֹא בְחַיִל, וְלֹא בְכֹחַ--כִּי אִם-בְּרוּחִי.

스가랴 3장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스가랴 4장은 총독 스룹바벨에게 주어졌다. 스룹바벨은 다윗 왕가의 자손이지만 그를 통해 유다 왕국이 회복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그를 세우실 수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주권을 상징하는 국회의 엠블럼으로 스가랴 4장의 이미지를 택하며, 이 기관이 궁극적으로 하나님 영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메노라 양쪽으로는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금으로 된 파이프צנתר가 있어서 기름이 흘러간다. 기름부음 받은 자 둘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두 증인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파라샤를 읽어 보자. 

 

1알리야: 창 41:1–14 바로의 꿈

바로는 두 번의 꿈을 꾼다. 야윈 암소들이 살찐 암소들을 잡아먹는 꿈, 마른 이삭이 무성한 이삭을 삼키는 꿈이다. 애굽의 점술가들 어느 누구도 해석하지 못하는 가운데, 술 관원이 '히브리 청년'을 기억해 낸다. 요세프는 옥에서 나와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는다.


2알리야: 창 41:15–38 요세프의 해몽

요세프는 "꿈이 하나"지만 하나님이 이 일을 '속히 이루신다'고 선언한다. 풍년 동안 곡물의 1/5을 저장해서 흉년을 대비하는 것이 요세프의 해결책이었다. 

3알리야: 창 41:39–52 바로의 집을 다스리는 요세프

바로는 요세프가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임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그에게 애굽 온 땅을 주었다. 그 증표로 바로의 타바아트를 빼주고 쉐쉬 옷을 입히고 금으로 된 라비드를 목에 걸어준다. 그리고 버금 수레를 내주었다. 

 

히브리어 본문에 '총리'란 단어는 나오지 않고 애굽 온 땅을 요세프에게 주었다고만 한다. 요세프를 버금 수레에 태우고 아브레흐אברך 라고 외치는데, 우리말은 '엎드리라'고 옮겼다. 아브레흐의 어근이 바라흐, 절하는 동작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이 단어를 동작이 아니라 요세프의 지위로 해석한다. 그러니까 "아브레흐 나가신다 모두 비켜라" 정도의 외침이 된 것이다. 현대 히브리어에서 아브레흐는 예쉬바 학생 중에 결혼하지 않은 주요 직책을 가진 청년을 뜻한다.

요세프의 이름은 짜프낫 파아네아흐 צָפְנַת פַּעְנֵחַ가 된다. 짜폰은 원래 북쪽을 뜻하고 그래서 비밀의 의미이다. 즉 숨겨진 비밀을 해석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유대교와 개신교는 대개 언어학적 의미에 충실한 해석을 선호한다. 

불가타를 번역한 제롬은 이 표현을 salvator mundi, 세상의 구원자라고 옮긴다. 파아네아흐의 'nh가 크룩스 안사타 '앙크'의 뜻이기 때문이다. 즉 생명과 관련된 단어다. 요세프를 그리스도의 Prefiguration으로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콥트어는 '시대의 구원자'로 이해한다. 

 

요세프는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פּוֹטִי פֶרַע의 딸 아스낫을 아내로 맞이한다. 보디베라는 보디발פוטיפר과 거의 같은 스펠링이다. 보디발의 직책이 שר הטבחים 동물제사와 관련된 이름이다. Eunuch였을 보디발이 Osnat (סנה)를 입양했으리라고 여긴다. 요세프가 낳는 두 아들은 므낫세 נשה 잊는다와 에프라임 הפרה 번성하다의 뜻이다.

 

4알리야: 창 41:53–42:18 애굽에 온 요세프의 형제들

풍년이 끝나고 기근이 시작되었다. 기근은 "모든 땅"에 임했고 가나안 땅의 야아콥에게도 이르렀다. 야아콥은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아들들을 보낸다. "우리가 죽지 않기 위해서"였다. 야아콥이 비냐민은 보내지 않는다.

요세프의 관직명이 6절에 나온다. 마슈비르, 곡식을 사들이는 사람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노동조합은 에레츠이스라엘의 유대인에게 식량과 물품을 제공하는데, 그 기관의 이름이 마슈비르였다. 훗날 소비자들을 위한 마슈비르라는 이름의 백화점이 되었다. 이스라엘에 유일한 백화점이다. 

 

요세프는 형들을 알아보고 정탐꾼이라고 트집을 잡는다. 그리고 가나안에 있는 형제를 데려오라고 요구한다.


5알리야: 창 42:19–43:15 비냐민도 애굽에 이르다

요세프는 사흘 동안 형들을 가두었다가 풀어주며 한 명만 남고 가나안에 돌아가 집안의 굶주림을 면하게 한다. 이때 르우벤이 이 사태가 요세프의 애걸을 외면한 데 대한 응분의 대가라고 주장한다. 요세프는 이를 듣고 나가서 울고 돌아온다. 그리고 시므온을 결박하고 형들을 보낸다. 르우벤이 이렇게까지 사태를 꿰뚫어볼 수 있다면 반드시 일을 성사시키라 믿었기 때문에 르우벤을 가두는 대신 가나안으로 보낸 게 아닐까.   

가나안에 돌아온 형제는 돈뭉치가 그대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두려워한다. 르우벤이 비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야 한다면서 비냐민의 생명을 보장한다. 하지만 야아콥은 거절한다. 

기근이 심해 애굽에서 가져온 양식은 곧 다시 떨어진다. 이번엔 유다가 비냐민의 생명을 담보하며 나선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비냐민도 애굽으로 데려가도록 허락한다. 

 

6알리야: 창 43:16–29 비냐민을 만나는 요세프

요세프는 비냐민과 형들을 자기 집으로 청한다. 더욱 두려워진 형들은 청지기에게 돈뭉치를 꺼내 보이며 지난번 일을 해명한다. 정오에 요세프가 돌아와 비냐민과 형들을 마주한다. 

 

7알리야: 창 43:30–44:17 형들을 시험하는 요세프

요세프가 자기 음식을 형제들에게 주고, 비냐민에게는 다섯 배나 준다. 

비냐민의 양식 자루에 요세프의 그비아 하케세프, 은잔이 넣어진다. 형제들은 아침에 길을 나섰다가 쫓아온 청지기에게서 주인의 은잔을 훔친 자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은잔은 비냐민의 자루에서 나오고 형제 모두 요세프에게 돌아온다. 비냐민 혼자 내팽개치고 자기들 살 길을 구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유다는 비냐민 대신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나선다.

 

하누카의 기적 속에 이 파라샤를 읽는 이들은 형제 간의 분열을 봉합하며 궁극적으로 모두를 살리신 하나님의 은총을 떠올릴 것이다. 이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이고, 그들의 형제인 전 세계 25억 명이 기념하는 날이라는 것도 기억해주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