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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ha

파라샤 바예히 (창 47:28-50:26)

창세기의 마지막 파라샤 바예히를 읽는다. 애굽에 도착한 지 17년이 지나 147세가 된 야아콥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요세프의 두 아들을 축복하고, 이어서 자신의 12 아들에 대한 평을 남긴다. 그래서 하프타라는 다윗의 유언이 담긴 열왕기상 2장이다. 창세기의 마지막 구절은 요세프가 110살에 죽었다는 내용이다. 

 

1알리야: 창 47:28–48:9

애굽에서 17년이 지났다. 야아콥은 요세프를 불러 자신을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겠다는 맹세를 청한다. 요세프는 맹세했고, 야아콥이 병들자 두 아들 므나셰와 에프라임을 데려온다. 야아콥은 요세프의 두 아들에게 이제까지 야아콥의 아들들만 누렸던 지파의 조상 지위를 부여한다.

 
2알리야: 창 48:10–16

요세프가 두 아들을 축복해 달라고 아버지에게 청한다. 장자인 므나세가 야아콥의 오른쪽에, 차자인 에프라임이 왼쪽이었다. 거의 눈이 보이지 않는 야아콥이 손을 꼬아 오른손을 에프라임의 머리에 얹는다. 그리고 이들이 아브라함과 이츠학과 야아콥의 이름으로 일컬어지고 세상에서 번식하기를 기원한다.


3알리야: 창 48:17–22

요세프는 아버지의 오른손이 차남의 머리에 있는 걸 근심했다. 하지만 야아콥은 동생이 더 클 것이라고 말한다. 또 앞으로 이스라엘의 축복은 이 두 아들을 기준으로 하게 된다고 말한다. יְשִׂמְךָ אֱלֹהִים כְּאֶפְרַיִם וְכִמְנַשֶּׁה 야아콥이 차지했던 세겜 땅은 다른 형제들이 아닌 요세프의 차지가 된다. 요세프가 장자의 몫을 얻은 것이다. 


4알리야: 창 49:1–18

야아콥이 죽음의 침상, ערש דווי 에 모든 아들을 불러 각각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르우벤은 그의 성품과 과거의 행위로 질책을 받는다. 시므온과 레비도 세겜 사람들을 죽이고 혈기를 부른 데 대한 질책을 받는다. 유다는 포도주와 우유의 축복을 받는다. 해안에 거하는 즈불론은 해상 무역에서 성공하리라 축복을 받는다. 잇샤할은 당나귀로 비유된다. 단은 판단 능력과 뱀같은 강함의 축복을 받는다.

5알리야: 창 49:19–26

갓은 전투에서 용감함을 발휘할 것이다. 아쉐르는 올리브 기름 같은 풍성함을 누릴 것이다. 나프탈리는 암사슴처럼 달릴 것이다. 요세프는 그의 고난과 의로움을 인정받고 다양한 축복을 받는다.

 


6알리야: 창 49:27–50:20

비냐민은 늑대에 비유된다. 열두 아들에 대한 말을 마치고 야아콥은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굴에 묻어 달라는 요청을 반복한다. 147세의 나이로 야아콥이 세상을 떠나자, 국가적 애도 기간을 갖는다. 그 후 요세프는 직접 아버지의 시신을 가나안 땅으로 가져간다. 거대한 장례 행렬이 요단 강 건너 아닷 타작마당גֹּרֶן הָאָטָד 에서 애곡한다. 애굽 사람들이 애곡했다고 해서 아벨 미쯔라임이 된다. 야아콥이 막벨라에 장사된다.

애굽으로 돌아온 후 요세프의 형들은 이제 복수가 시작될까 두려워한다. 요세프는 그럴 일은 없다고 안심시킨다.


7알리야: 창 50:21–26

요세프가 형제들에게 유언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돌려보내실 때, 반드시 자신의 해골을 메고 가 달라는 것이다. 요세프가 110세에 죽는다. 

이스라엘 국립공원이 그리심 산에 조성한 전망대 이름이 '요셉 전망대'이다. 거기서 세겜, 오늘날 나블루스를 내려다볼 수 있다. 고대 세겜으로 믿어지는 텔 발라타에서 오른쪽으로 요셉의 무덤으로 믿어지는 장소가 있다.

 

희한한 내용을 많이 생각해내는 유대교 하시딤은 요세프가 탐무즈 월에 태어났다고 믿는다. 요세프가 태어나고 야아콥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 형 에사브와 대면할 각오를 하는데, 요세프의 선한 기운이 에사브의 악한 기운을 막았기 때문이란다 (유대교 역시 이런 얘기를 하는 종교다). 탐무즈와 아브 월은 낮이 길고 더운 기간이다. 태양이 악의 권세이다. 이 시기에 유대교 역사상 가장 슬픈 성전 멸망이 이뤄진다. 모세가 호렙 산에 오른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숭배를 하거나, 가나안에 보낸 정탐꾼들이 돌아와 우린 다 죽었다고 보고하는 것도 탐무즈 17일에 있었던 일로 본다.  

요셉이 탐무즈 월에 태어났다는 것은 그의 생일이 탐무즈 월 첫째 날이라는 뜻이다. 초하루일 때 날 수를 생략하기 때문이다. 현대 유대교는 요셉의 힐룰라, 즉 죽은 기일도 탐무즈 월 첫째 날에 지킨다. 그가 의인이기 때문에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이 같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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