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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파르 바르부르그

이스라엘에도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가 있다. 키리얏 말라히. 히브리 성경 마지막 책도 말라히인데, 종교적인 용어로 하나님의 사자란 뜻이지만 결국 천사다. 

 

이스라엘이 48년 전쟁을 마무리하고 한숨 돌렸을 때, 아랍 국가들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이 일시에 몰려들었다. 당연히 이들을 정착시킬 도시가 변변치 않았는데, 벤구리온은 급히 마아라바(거점 도시)를 지정한다. 말이 좋아 도시지, 허허벌판에 텐트를 세우고 막 도착한 이민자들을 밀어넣은 데 불과했다. 1964년 이스라엘 영화 "살라흐 샤바티"가 이때의 실상을 담고 있는데, 주인공 이름인 영화 제목은 사실 "내가 여기로 이민 와서 (민폐를 끼쳐) 미안하게 됐수다"סלחה שבאתי의 워드플레이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주인공 하임 토폴이 주연을 맡았다. 

 

우리나라도 경험이 있으니 전쟁 이후 참상이 어떤지는 가늠할 만하다. 이 시기를 쩨나, austerity, 배급 시기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에 인종 차별 서사가 깔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유럽에서 건너온 아슈케나짐은 텔아비브나 갈릴리에 이미 알고 있는 지인들, 란츠만이 있었다. 교육 수준이 높은 이들은 새로운 땅에서 언어도 빨리 습득하고 좋은 직업을 구해 잘 정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에서 건너온 소위 미즈라힘들은 그야말로 맨땅에서 굴러야 했다. 출발점이 다른데 당연히 도착점도 다르다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미즈라힘의 이 울분이 이스라엘 정치에 역동성을 만든 계기다.

 

텔아비브에서 남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쉐펠라 지역, 아랍어로 Qastina로 불리던 지역에는 네 개의 타운이 세워졌다. 크파르 아힘, 키리얏 말라히, 아루곳, 브에르 투비야이다. 폴란드 루마니야에서 온 이민자들이 정착했다. 아슈케나짐 역시 맨땅에서 출발한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중에 키리얏 말라히가 도시로 성장했고, 나머지는 여전히 모샤브이다.

키리얏 말라히 출신 중에 이스라엘 대통령이 나왔다. 모세 카짜브, 대통령 중에 유일하게 감옥에서 실형을 살고 만기출소한 인물이다. 죄명은 강간. 후임 대통령이 시몬 페레스인데, 대통령 궁에서 모세 카짜브의 동상을 치워 버린 걸로 유명하다. 크파르 아힘 출신 중에는 베니 간츠가 있다. IDF 참모총장이었다가 국방부 장관을 지내고 현재 야당 지도자이다. 

 

내가 어쩌다 이 동네에 정을 들였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여기를 자주 다닌다. 브에르 투비야에는 염소 우유와 치즈를 만들어 파는 사무엘 농장이 있다. 크파르 아힘에는 친구가 산다. 아루곳은 에스겔서를 읽으러 가곤 한다. 키리얏 말라히는 네게브에 가야 할 때 버스를 타기 위해 들른다.

 

그러다 또 한 마을을 알게 됐는데 크파르 바르부르그이다. 뭐? 바 뭐? 한 세 번 물어본 것 같다. Warburg, 우리말 표기는 '와버그'이다 (우리나라 국어국립원은 영어 의존도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뉴욕 맨하탄 어퍼이스트 사이드에 가 본 사람은 잊기 힘든 하얀 맨션, 유대인 박물관이 바로 펠릭스 바르부르그의 집이다. 아니 이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 펠릭스 바르부르그는 히브리 대학을 지원했던 미국 유대인 협회 회장이자,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굶주리는 유대인을 돕기 위해 자금을 지원한 인물이기도 하다. 원래 독일계 뱅킹 가문으로 로스칠드 가문과 혼맥으로 연결돼 있다. 아무튼 이스라엘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하신 미국 사람이라서 이 동네가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모샤브 사는 친구를 알게 되어 동네에 관해 몇 번 물어보면 샤밧에 밥 먹으러 오라고 초대한다. 그때 얼씨구나 가야 한다. 

 

모샤브나 키부츠 중앙에는 물을 모아두기 위해 세운 워터 타워가 반드시 있다. 최근에 정비를 했는지 너무 멀쩡하다. 48년 전쟁 때 크파르 바르부르그가 이집트 군대를 막는 체크포인트였다. 모샤브에서 희생자가 적지 않았다. 

 

모샤브인 줄은 알았지만 집 앞에 떡 하니 소들이 살고 있는 줄은 몰랐다. 이런 cowshed를 히브리어는 רפת라고 한다.닭장은 לול, 마굿간은 אורווה, 양이나 염소 우리는 דיר이다. 벼농사 짓는 우리말조차 동물마다 거처의 명칭이 다른데, 목축하는 조상을 둔 히브리인은 오죽하겠나. 아기 예수를 뉘인 manger는 헬라어 phatne이고, 히브리어로는 אבוס 에부스다.   

그나저나 냄새가 심하다! 뭐 개의치 않으니까 여기 사는 거겠지. 나름 목가적인 풍경이 반나절 구경만 하기에 꽤 좋았다. 살짝 집 값을 물어보고 깜짝, 시골이지만 결코 싸지 않다. 

 

모샤브의 흔한 점심 식탁. 바깥 온도가 17도 정도였지만 실내에서는 난로를 피워야 한다. 저 난로를 히브리어는 '타누르' 그냥 오븐이라고 부른다. 우리말은 이걸 '페치카'라고 하는데, 일본어 영향이다. 원어 발음은 '페치'이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라 안티파스타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농장들이 규모가 크고 잘 가꿔진 편이라 여기에서 전원 장면을 촬영하러 오는 영화인들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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