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16년 동안 살인죄로 수감 생활을 했던 로만 즈도로브가 풀려났다. 이미 1년 반 전에 감옥에서 나와 가택연금 상태였고 이제 그로부터도 자유롭게 된 것이다. 마침 이스라엘 사법부 시스템에 문제제기를 하던 사람들은, 이것이 마치 사법 개혁의 정당한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거보라고 한다. 아니, 이건 그런 일은 아니다.
유명한 표현이 있다. 모든 사법부는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 왔고 앞으로도 이를 피하기 어렵다. 마치 인간이 운전면허를 가지고도 교통사고를 낼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그 수가 적기를, 그 억울함이 거대하지 않기를 희망할 뿐이다. 내 생각에 이스라엘 사법 시스템의 문제점은 언론과 대중이 너무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TV에 드라마 숫자만큼 이스라엘은 뉴스가 제작된다. 다큐, 인터뷰, 심층 토론, 없는 게 없다. 4시부터 사회자와 패널들 수준에 따라 포맷을 달리하다가 8시 뉴스에서 전면적으로 폭발하는 양상이다. 밤이 될 때는 그날 초점이 된 사건에 대해 거의 모르는 게 없다. 그걸로 안 끝나고 주말이 되면 그걸 다 요약 정리해 준다. TV뿐 아니라 사람들도 앉으면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모두가 자기 의견을 갖게 된다.
지나가는 가십 이야기도 아니고, 살인 사건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2006년 12월 골란고원 카쯔린에 살고 있던 타이르 라다, 당시 13살 소녀가 학교 화장실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이스라엘 교육기관은 높은 담장으로 에워싸여 경비원이 지키고 있다. 동급생이 연루될 가능성이 보도됐지만 이내 부정되었고 학교 근처의 노숙자거나 정원사 같은 성인 남성들이 조사를 받았다. 2주 후 경찰은 생중계를 통해 우크라이나 출신 로만 즈도로브가 살인을 자백하고 현장검증을 마쳤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로만 즈도로브는 다음날 이를 부인한다. 재판이 시작되었고 명확한 증거도, 증인도 없는 사건은 일단 즈도로브에게 종신형을 선고하지만 계속된 항소 과정에서, 검찰의 기소 쟁점은 무너지고 만다. 사실 경찰은 초등수사에 실패한 면이 없지 않다.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의 용의자를 드넓은 골란고원에서 찾으려고 했으니까. 타이르 라다의 어머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당시 사탄숭배에 물든 학생들이 저지른 사건이라고 의심했다. 정황상 화장실 안에서 타이르는 살인자들과 육탄전을 벌였고 그동안 여자 화장실을 수많은 사람이 다녀갔고 일부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눈치채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반응한 사회집단이 있다. 이민자 출신 공동체를 중심으로 당시 불법체류자에 가까웠고 히브리어도 잘 하지 못하는 즈도로브가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비난이 형성된 것이다. 즈도로브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생기고, 이들의 줄기찬 탄원은 마침내 다큐멘터리로 결실을 본다. Shadow of Truth라는 제목의 다큐이다. 여론은 요동쳤다. 다큐에서 제기한 용의자에 대한 마녀사냥이 일어났다. 타이라 라다의 어머니는 다큐에서 지목된 이들을 체포하라고 요구한다.
2015년 항소에서 즈도로브는 O.K라는 이니셜로 알려진 다큐 속 인물을 증인으로 채택한다. 올라 크라브첸코이다. 하지만 검찰은 끝내 올라를 기소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올라 크라브첸코는 공황 장애와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대법원은 즈도로브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유는 그의 고백, 그 고백 내용이 살인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는 점, 그리고 현장 검증이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즈도로브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급등한다. 사법부가 오류를 바로잡지 않는다고 느낀 것이다.
2021년 3월 오데사 할머니 집으로 이사했던 올가도 이스라엘 미디어의 인터뷰에 응한다. 이번 다큐의 제목은 Heavy Shadow. 타이라 라다의 어머니는 다시 견해를 바꾼다. 올가가 범인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2021년 5월 대법원은 로만 즈도로브에 대한 재심을 명한다. 그리고 2023년 3월 30일, 세 명의 재판관은 2:1로 그가 유죄가 아니라고 판결한다. 이것이 로만 즈도로브의 결백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한 명의 재판관은 즈도로브가 살인자라는 증거도 여전히 있다고 보았다.
타이라 라다의 살인자는 여전히 Shadow 속에 있다. 타이라 라다의 죽음은 여전히 해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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