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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ed

유월절 저녁 렐하세데르

렐하세데르 ליל הסדר는 유월절 저녁 식사이다. 온가족이 모여 하가다를 읽으며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원해준 과정을 상기하는 시간이다. 모든 민족의 명절이 그러듯이, 엄청난 가사노동을 전제로 대가족 소집의 날이다. 친인척 집을 방문하기 위한 어마어마한 교통체증은 덤이다.   

유월절 하가다는 책으로 아예 제작되어 있다. 그야말로 각양각색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가다는 하누흐 피븐이 교육부 요청으로 장애 어린이들과 함께 만든 출애굽 스토리이다.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감탄스러운 작품이다. 하누흐 피븐은 우르과이 출신으로 현재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는 이스라엘 작가이다. 특이한 물건들로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비주얼 아트의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표지의 모세의 눈은 '게필테피쉬'라는 아슈케나짐 요리이다. 생선이니까 우리 식으로 하면 어묵 개념인데, 잉어로 만들기 때문에 맛은 좀, 너무한다.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지만 미즈라힘들은 특히 게필테피쉬를 싫어한다. 

모세의 수염은 마짜, 즉 무교병으로 장식했고, 그 사이에 수갑을 넣었다. 대단한 재기다. 

 

2023년 소위 얼터너티브 하가다가 선보였다. 2017 맨부커 상 수상자로 노벨 문학상에 번번히 언급되는 다비드 그로스만과 히브리 단편의 대가 에트가르 케레트가 함께 썼다. 제목이 Hagada of the Freedom, 전부 네 페이지인데 그중 두 페이지가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선언문이다. 

 

 

일단 상차림에 들어가야 하는 것은 세데르 접시와 마짜 세 조각이다. 키두쉬를 위해 와인이 필요한데, 콘디톤이 가장 유명하다. 미성년자는 티로슈라는 포도즙을 마신다. 세데르 중에 네 번이나 와인 마시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한 병은 쉽게 비워진다. 유대인의 알코올 문제가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 만하다.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술 먹고 실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발효주라 그런가.   

 

  • 즈루아는 유월절에 식구 수대로 잡은 어린 양에서 나온 고기이다. 정강이뼈를 올리는 법이지만, 보통 가정에서는 아무거나 준비된 고기를 올리기 마련이다.
  • 하로셋은 넛츠와 사과를 갈아 만든 mixture이다. 마짜 두 조각 사이에 끼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데, 벽돌을 이어주는 mortar를 상징한다.
  • 베이짜는 삶은 계란이다. 생명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독교가 부활절에 삶은 달걀을...
  • 카르파스는 파슬리다. 쓴맛이다.
  • 마로르는 쓰다는 뜻이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쓴나물'을 가리킨다. 보통 가정에서는 상추를 올린다. 
  • 하제렛은 horseradish, 겨자무로 만든 쓴맛 나는 소스다. 아슈케나짐은 샤밧 때 게필테피쉬와 하제렛을 함께 먹는다. 느끼한 어묵을 톡 쏘는 고추냉이 맛이 잡아주는 원리다.

 

 

세데르란 순서를 뜻하는데, 렐하세데르는 열 다섯 가지 상징적인 행위를 순서대로 하는 의식이다.

  1. 카데쉬, 즉 포도주를 거룩하게 하라. 포도 열매를 창조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문을 읽는다. 
  2. 우레하츠, 그리고 손을 씻으라. 한 사람이 큰 물동이를 들고 식탁에 앉은 사람에게 다가가면, 네틸랏 야다임이라는 그릇을 사용해 한 손에 세 번씩 물을 붓는다. 
  3. 카르파스, 파슬리를 소금물에 찍어 먹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야 했던 고된 노동을 상징하는 쓴 맛을 내는 채소이다. 양파를 소금물에 담궜다가 사용하기도 한다. 세데르에서 가장 먼저 카르파스를 먹는 것은 고된 노동을 통해 땅의 열매를 얻게 된 데 감사하는 의미가 있다. 
  4. 야하츠, 반절로 쪼개라. 세 개의 마짜 중, 가운데 마짜를 꺼내 쪼갠 다음, ‘아피코만’이라고 쓰인 천에 넣어 숨긴다. 세데르 마지막에 이 숨겨놓은 마짜를 찾는 어린이에게 선물을 준다. 아피코만은 그리스어로 디저트나 저녁 식사 후 유희를 뜻한다.
  5. 마기드, 이야기를 말하라. 어린이가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냐고 질문하면, 어른들이 그날 일을 말해준다. 한 사람이 길게 말하는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모두가 하가다 책을 들고 순서대로 읽어나간다. 출애굽기 구절뿐만 아니라 탈무드의 유명한 우화들도 들어 있고, 노래를 부르는 대목도 있다. 마기드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네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유명하다.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지혜자와 악한 자와 순진한 자와 어리석은 자를 구분하는 내용이다. 또 하나님이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드짜흐 아다쉬 베아하브'도 하나하나 발음한다. 담(피), 쯔파르데아(개구리), 키님(이), 아로브(무서운 동물), 데베르(가축 돌림병), 스힌(사람 종기), 바라드(우박), 아르베(메뚜기), 호쉐흐(흑암), 마캇 베호롯(장자 죽음) 순서이다. 마기드 중간에 두 번째 와인을 마신다.
  6. 라흐짜, 다시 식사를 위한 손 씻기. 처음 손을 씻을 때와 기도문 내용이 조금 다르다. 
  7. 모찌, 마짜를 꺼내는 순서이다.
  8. 마짜, 마짜를 먹기 앞서 축복한다. 땅의 소산물, 특히 곡류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이다.
  9. 마로르, 쓴나물을 먹기 위해, 
  10. 코레흐, 샌드위치를 만든다. 마짜를 쪼개 두 조각을 만들고 가운데에 마로르를 끼워 샌드위치처럼 만들어 먹는다. 이집트에서 힘든 노동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11. 슐한 오레흐, 명절 저녁 식사이다. 크네이들라흐(Matzah ball)라는 닭고기스프와 고기나 생선 같은 주요리를 먹는다. 보통 가정에서는 이것으로 세데르를 생략한다. 여기까지 한 시간쯤 걸리기 때문에 그만 해도 충분히 긴 시간이다.
  12. 짜푼, 문자적으로 ‘숨겨 놓았다’는 뜻으로 아피코만에 넣어둔 마짜를 찾아오는 시간이다.   
  13. 바레흐, 주신 음식에 대해 감사한다. 이때 세 번째 포도주를 따르고 문을 열어 엘리야 선지자를 환영한다. 문을 여는 이유는 이 밤이 렐 하쉬무림, 즉 여호와 앞에서 지켜야 하는 밤으로서, 그날 밤 이스라엘 백성이 문지방에 피를 바른 것을 보고 여호와의 사자가 건너가셨음을 기억하는 행위이다. 또 하필 엘리야 선지자를 초대하는 이유는 엘리야가 할례를 주관하는 선지자로서 여호와가 생명에 두신 언약의 징표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엘리야 선지자 때문에라도 세데르 식사는 할례받은 사람만 참여하게 되어 있다. 
  14. 할렐, 찬양하는 시간이다. 네 번째 와인을 마신다. 유월절과 관련된 성경 구절들이 노래로 많이 있다.  특히 '다예누'가 대표적인데, 이스라엘에게 너무나 선하고 기쁜 일 열 네 가지를 차례대로 언급한다. 선창자가 기쁜 일 두 가지를 부정 가정법으로 선포하고, 만약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묻는다. 그럼 모두 합창으로 다예누, 즉 다행히도 일어났기에 지금 우리는 만족할 수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하고 기쁜 일은 다음 14가지인데, 하나님이 애굽에서 구해내신 것, 애굽을 심판하신 것, 애굽의 신들을 심판하신 것, 애굽의 장자를 죽이신 것, 이스라엘에게 여비(마모남)를 주신 것, 이스라엘을 위해 바다를 갈라주신 것, 그 바다 속을 통과가게 하신 것, 이스라엘의 적을 그 바다 속에 가라앉히신 것,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필요를 채워 주신 것, 만나를 먹이신 것, 안식일을 주신 것, 시내 산 근처로 데려가신 것, 토라를 주신 것, 이스라엘 땅으로 들이신 것, 성전을 지어 주신 것이다.
  15. 니르짜, 세데르 예식을 마치는 순서로, 레샤나 하바 비루샬라임, ‘내년에 예루살렘에서’라는 말로 마친다. 

전통과 형식으로 굳어지긴 했지만 유태인이 수천 년 동안 지켜온 세데르에는 분명 여호와의 은혜를 기억할 만한 요소가 많이 있다. 예수님부터 이 유월절 예식을 치르셨다. 그리고 이 밤의 식사에서 새로운 예식을 제정하셨는데, 포도주와 마짜를 들어올리시며 자신의 피와 몸을 기억하라고 하셨다. 이 예식은 기독교인들에게 성찬, 성례라고 불린다. 언젠가 새 포도주와 새 빵으로 이날을 함께 기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닭고기 한 마리를 통째로 삶은 뒤 이런저런 양념을 하고, 마짜볼(크네이들라흐)을 첨가한다. 저 볼 하나만 먹어도 배가 가득 차지만 두 개는 먹어야 한다. 

 

영양학적으로 고기는 설 익어야 몸에 좋다. 하지만 대가족이 모두 스테이크를 먹으려면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유대교 명절에 오르는 고기 요리는 한결같이 오래 졸여지던지 물에 삶아지던지 한다. 그래서 맛은 별로.

  

하로셋 카리흐, 샌드위치 사이에 넛츠와 사과를 갈아 만든 믹스처를 마치 접착제처럼 바른다.

 

밀가루를 쓸 수 없는 유월절의 디저트로는, 레몬과 치즈, 초콜렛과 넛츠가 많이 활용된다. 요즘은 마카롱 붐이다. 과일은 딸기와 파인애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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