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봄은 연두다.
좀 더 쨍한 노란색이면 좋을 텐데. 기분 탓일지 몰라도 대개 저런 덤불 곁으로 다가가 보면 쓰레기가 발견된다. 쓰레기 버려도 죄책감이 덜 드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저 노란 꽃이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겨자, 하르달이다. 예수님은 천국이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하셨다. 씨는 원래 작지만 나무처럼 자라서 공중의 새들이 깃들기 때문이다. 자, 이제 새들이 머물고 있는 겨자 좀 봅시다?? 그런 건 없다. 비유의 특징은 과장에 있다.
가까이서 보면 예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데이지 (compositae)나 민들레 (crepis) 계열도 노란 색이 많다. 갈릴리와 골란고원 고유의 데이지인 니사니트ניסנית이다. 가자 근처에 니사니트란 이름의 유대인 마을이 있어 가보니, 그 마을 이미지가 이 꽃이 아니다.
데이지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고, 에레츠이스라엘에서 피는 민들레가 이렇게 많기 때문이다. 갈릴리에 많이 나는 니사니트는 Crepis sancta이다.
그런데 이 연두 언덕에 언뜻 보라색이 비친다. 바로 이 투르무스다. 영어로 lupine이다. 크게 자라면 좀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막 보라보라 할 때는 예쁜 편이다.
엘라 골짜기 근처에 텔소호가 있는데, 투르무스 언덕이라 불릴 만큼 이 꽃이 많이 핀다.
쨍한 보라보다 이런 보라가 매력적이다. 이스라엘에는 엉겅퀴가 세 종류가 있는데 이것은 키포단קפודן이다. glove thistle인데, 키포드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나기 때문이다.
엇비슷하지만 일반적인 thistle은 그딜란גדילן이고 가시가 쫙 뻗은 것은 번개치는 모양이라고 해서 바르칸 ברקן이다. 보라와 분홍 중간쯤의 색감을 전달한다.
보라와 핑크의 상관성을 좀 더 극적으로 만드는 게 아흐나이עכנאי이다. 원래 핑크인데 꿀벌을 통해 수분 활동이 이뤄지면 보라로 변한다. 변색을 통해 자기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분홍도 살아남았다. 호트미트, 우리말로 접시꽃이다. 히브리어로 호템חוטם이 '코'이다. 꽃 한가운데 코처럼 불거진 부분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페일 핑크도 찾아보면 있다. Tragopogon 계열이다. 헬라어로 염소 수염이란 뜻이다. 히브리어는 이를 옮겨 자칸 타이쉬 아로흐זקן תיש ארוך 긴 염소 수염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선명한 십자가 모양은 거의 찾기 어렵다. 카르멜리트כרמלית 이다. Carmelites Order의 십자가 모양이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갈멜회 십자가에서 치마처럼 드리워진 부분은 갈멜산을 상징한다.
갑분 건너뛰자면 이 꽃은 내게 리지외의 테레사 (1873-1897)를 연상시킨다. 갈멜회는 이스라엘 땅에서 생겨난 수도회, 수녀회이고, 맨발의 갈멜회에서 24세에 요절한 테레사 수녀의 별명이 작은 꽃, 소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분의 내면은 강철보다 단단했다. 봉쇄 수녀원 수사로서 테레사는 행동으로 증명해야 할 사랑을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꽃을 뿌리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작은 선의와 눈빛과 말과 행동 모두가 이분의 꽃이었다. 덕분에 이스라엘 들판에서 카르멜리트는 사랑을 위한 최소한의 행동을 떠올르게 한다. 하이파의 스텔라 마리스 수녀회를 비롯한 갈멜 수녀회에서 이분의 사진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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