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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ife in Israel

테러 희생자 장례식을 보며

죽음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인간에게 죽음이 친밀한 것이라면, 아마 이 세상에서 종교가 융성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연로한 부모님의 부고들로 지인들과 안부를 대신하는 나이가 되어 보니, 사망의 권세가 이렇게 크구나 실감이 된다. 그조차 젊은이의 황망한 돌연사에 비하면 덜 참혹하다. 세상은 불행한 사건으로 가득하므로, 이 안타까운 고통이 끝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이 삶이 비루하게 느껴지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이스라엘에 사는 동안 여러 번 지인의 죽음을 겪었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유가족들의 고통을 목격했다. 수를 누리시다 연로하여 돌아가신 분들의 장례는 당연히 홀가분하다. 우리로 치면 상주겪인 분이, 고인의 무덤 앞에서 준비된 조문을 읉조리는 나한테, 뭐 어때 어차피 듣지도 못하실 텐데? 농담을 해서 놀란 적도 있다. 장례식 이후 유가족이 7일 동안 조문객을 맞이하는 쉬브아는 일상 그대로다. 오랜만에 방문한 친구들과 농담하며 안부를 묻고 당연히 밥도 잘 먹는 걸 보았다.

 

자녀를 잃은 경우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그 상실의 이유가 병마인 경우는 그나마 낫다. 테러로 인한 사망의 경우 그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 나라는 인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뉴스에 나오는 사람이 지인이기가 쉽다. 최근에 텔아비브 테러로 사망한 희생자 이름이 밝혀졌을 때, 내가 아는 성이라 깜짝 놀랐었다. 설마 했는데, 지인의 사촌이었다. 이방인인 나조차 한 다리 건너 아는데, 유대인들끼리는 얼마나 가깝겠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테러든 남의 일로 여기지 않는데, 실제로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데 놀랐다.

 

이스라엘의 정치 여건상 테러 사망자는 종교인일 가능성이 큰 편이다. 정착촌에 살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2023년 유월절 중에도 테러가 일어났고, 희생자는 두 자매였다. 아니 희생자가 두 명으로 그치길 바랬었다. 총격 테러는 7일 금요일 오후 비크아בקעה라고 통칭되는 웨스트뱅크 지역에서 일어났다. 가족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대가족은 아버지와 두 자녀가 함께 타고 먼저 출발했고, 어머니와 두 자매가 함께 타고 따라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라디오를 통해 테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결국 차를 돌려 돌아가서 그 테러로 두 딸이 살해됐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치명상을 입은 어머니는 헬기를 통해 병원으로 옮겨졌고 수많은 의료진이 그 생명을 위해 사투를 벌였다. 

 

일곱 식구가 네 식구가 되었다. 

 

유대교는 샤밧에 장례를 금한다. 살해된 두 자매는 샤밧이 지나고 일요일에 장례식을 치렀다. 그리고 다음날 월요일, 어머니 역시 사망이 선고됐다. 가족들은 어머니의 장기 이식에 동의해 심장, 폐, 간, 두 신장을 기증해 다섯 생명을 살렸고 각막도 기증될 예정이다. 

 

두 딸에 이어 아내까지 잃은 아버지는 조문을 읽기 앞서 참석자들에게 노래를 청한다. 아니 마아민, 람밤의 '유대교 신앙의 13원칙' 가운데 12번째 구절로 이뤄진 노래이다. "내가 온전한 믿음으로 믿는 것은, 메시아의 오심이며, 이 모든 회의에도 불구하고 그가 오시기를 날마다 기다리노라."   

אֲנִי מַאֲמִין בֶּאֱמוּנָה שְׁלֵמָה בְּבִיאַת הַמָּשִׁיחַ, וְאַף עַל פִּי שֶׁיִּתְמַהְמֵהַּ עִם כָּל זֶה אֲחַכֶּה לּוֹ בְּכָל יוֹם שֶׁיָּבוֹא  

 

이 노래는 하시딤들의 홀로코스트 기념식에서 자주 불리는 곡이었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나치의 광기가 게토의 유대인을 기차에 실어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던 시절, 한 칸토가 트레블링카로 향하는 기차에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즈리엘 다비드 파스타그, 폴란드 하시딤 모쩨쯔의 일원이었다. 모두가 공포 앞에 기력이 쇠진해 있을 때 그는 노래를 시작했다. 아니 마아민. 유대인 신앙의 원칙으로 알려진 내용이었다. 점차 기차 안에 있던 수백 명이 그의 노래에 합류했고 곧 노래는 기차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벅찬 감동을 안겨주었다. 노래가 끝나고 적막이 내려앉자 칸토 아즈리엘은 이 노래를 미국으로 탈출한 모쩨쯔의 레베에게 전달해줄 사람에게는 다음 생의 절반을 주겠다고 선포한다. 두 젊은이가 나섰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노래를 전달하겠다며 형제자매에게 작별을 고하고 기차 지붕에 뚫린 구멍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한 사람은 이 멜로디가 적힌 자신의 셔츠를 꼭 움켜쥔 채 발견됐다. 이렇게 '아니 마아민'은 뉴욕의 모쩨쯔 회당에 전달됐고, 욤키푸르에 수천 명이 함께 합창했다. 유대인은 메시아가 오실 때 이 노래와 함께 행진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시딤들이 온갖 악기 동원해 샤우팅으로 부르는 것보다, 피아노 반주로 합창하는 편이 훨씬 어울린다.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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