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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0 깁브돈, 텔 말루트

이스라엘에는 이슈브 스파르יישוב ספר라는 개념이 있다. 국경 근처의 거주지로 전쟁 같은 군사활동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인정되는 지역이다. 물론 물리적인 거리로 지정돼 있는데, 전투 양상에 따라 이슈브 스파르가 아닌데도 큰 피해를 보는 경우가 발생한다. 2014년 가자 전쟁 때는 스데롯의 피해가 너무 커서 국경에서 꽤 먼데도 이슈브 스파르로 지정됐다. 결국 국민을 섬겨야 하는 정부가 이런 걸로 기싸움해서 뭐하나. 피해 보상을 하는 거니 관대할수록 좋겠지. 그런데 표밭이 다르면 이런 생각도 어림없다. 이번 하마스 전쟁은 아슈켈론 피해가 컸는데, 정부는 보상을 안하려고 기를 쓴다. 인플레 위기인데 보상을 남발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정부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표심이 아니다. 저런 대접을 받고도 같은 인물 뽑을 거다. 

 

아무튼 이 개념은 이스라엘 도시 형성사에서 중요하다. 지금이야 국경이 분명하지만, 건국 초기만 해도 유대인 도시 하나의 사면에 아랍 동네가 있으면 국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슈브 스파르가 도시 가장자리에 조성된다. 대도시를 보호하는 소규모 농업 정착지 너머가 과거 아랍인 마을인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연구가 필요할 만큼 역사가 오래 됐다. 1890년 세워졌고, 이것은 유대인 알리야 역사의 매우 초기 단계다. 

 

쉐펠라는 아랍인들의 주요 거주지로, 비잔틴의 수도 롯(성경의 룻다)과 이슬람의 수도 람레가 양대도시였다. 두 도시 남쪽으로 유대인은 르호봇을 세워, 쉐펠라에 거점을 만들었다. 르호봇의 서쪽에 위치한 아랍 마을이 자르누카였다. 자르누카라는 이름 자체가 유대교 현자의 이름이다. 르호봇과 자르누카 사이에 다툼이 잦아지자, 이슈브 스파르가 생긴다. 깁톤이다. 48년 전쟁이 일어나자 자르누카 주민은 야브네로 쫓겨났고 그 자리는 키리야트 모세가 된다. 

 

깁톤גבתון은 단 지파의 경계에 들었던 도시 깁브돈이다. 여호수아서 19장에 따르면 단 지파의 도시는 소라, 에스다올, 이르세메스, 사알랍빈, 아얄론, 이들라, 엘론, 딤나, 에그론, 엘드게, 깁브돈, 바알랏, 여훗, 브네브락, 가드 림몬, 메얄곤, 락곤, 욥바 맞은편이다. 지금의 쉐펠라에서 구쉬 단까지 가로로 된 영토다. 

 

깁톤이 내 주의를 끈 건, 쿠데타의 도시기 때문이다.

 

열왕기는 삼국지 못지 않은 흥미진진한 왕들의 이야기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대신 왕을 원했고 그렇게 세워진 나라가 '연합 왕조'다. 초대 왕 사울에 이어 다윗에게 왕위가 이양된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선택하셨다는 반복된 진술은 당연히 정통성 확보를 위한 장치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평화의 인물답게 성전을 건축한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 나라가 쪼개지는데, 그 장소는 세겜이었다. 기독교인은 보통 이 정도에서 읽기를 포기하기 때문에 다음에 벌어진 일들은 잘 모른다. 유다 왕조에서는 다윗의 자손이 왕위를 이어가고, 이스라엘 왕조에서는 끝없는 반란이 이어진다. 두 왕조를 남북으로 비유하기 때문에 오해하기 쉬운데, 유다 왕조의 영토는 달랑 예루살렘 하나다. 히스기야 왕 때 쉐펠라 지역으로 조금 확장했고, 남쪽 라기스가 제2의 도시로 성장했을 뿐이다. 이스라엘 왕조는 훨씬 크고 강성한 나라였다.  

 

여로보암에 이어 왕이 된 아들 나답은 어느 날,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됐다. 블레셋의 도시를 에워싸고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그때 신하인 잇사갈 지파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다. 그 쿠데타의 현장이 깁톤이었다. 바아사의 수도는 세겜 북쪽의 디르사였다. 

 

깁톤은 어떻게 된 건지 계속 블레셋 도시로 남았다.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왕이 됐는데, 오므리가 군대를 이끌고 깁톤에서 블레셋과 싸우고 있을 때 수도 디르사에서 쿠데사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시므리가 술 취한 왕을 죽이고 대신 왕이 됐다는 것이다. 깁톤에 있던 오므리는 그 즉시 왕으로 추대되어, 디르사로 올라가 쿠데타 세력을 진압한다. 시므리는 스스로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안으로 들어가 죽는다. 깁톤은 권력에 취한 인간들이 회까닥 하기 쉬운 도시였나.    

 

현대 유대인 거주지는 성경에서 이름은 가져왔지만 실제 장소가 아닐 수도 있다. 깁톤이 그런데, 모샤브 깁톤과 달리, 성경의 깁톤으로 여겨지는 장소는 텔 말루트다. 

 

깁톤을 가 보자 한 게 꽤 됐는데, 이제야 가게 된 이유는 이런 구조 때문이다. 지도상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이 터널 때문에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모사뱌 마스케레트 바티야와 키부츠 나안 사이에 있는 야찌쯔로 들어가야 한다. 

 

나할 에크론이 흐르고 마아얀, 샘들이 있다. 이스라엘 자연보호 구역이다. 

 

텔 말루트, 끝. 고고학 발굴을 했지만 비잔틴 이전 시대는 안 나왔다. 전쟁이 주로 벌어진 요새고, 파괴층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전망은 좋은 편이다. 

 

마아야노트 위에 이런 다리를 놓아 위로 지나갈 수 있게 했다.

 

저 타워를 올라가는 것이다. 

텔이라는 게 명확히 입증된 높다란 텔 말루트. 열왕기 읽은 보람 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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