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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라מנרה

나는 산과 바다 중에 압도적으로 산을 좋아하고, 뜨거운 여름에 숲속에서 땀흘리는 트레킹을 사랑한다. 이스라엘에서 향수병 비슷한 걸 겪을 때는 어김없이 메툴라에 가곤 했다. 국경 건너 레바논 땅이나 서쪽으로 내려가는 납달리 산지를 보고 있으면 치유 비슷한 감정이 차올랐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골란고원을 사랑한다. 정기적으로 그 지평선을 봐야 갈증이 가라앉는다고들 한다. 나는 상부 갈릴리 산지가 그렇다.  

 

일정은 거의 똑같다. 메툴라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명물 하타하나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먹는다. 타하나는 תחנה정류장이 아니라, טחנה mill이다. 

 

 

 

HaTahana, Metula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국경에 '메툴라'라는 도시가 있다. 과거 로스칠드의 자금을 지원받아 세워진 모샤바였다. 1982년 레바논 전쟁 때는 이곳 국경 펜스를 통해 남부 레바논 군대에 군수품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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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게 고기를 배부를 정도로 먹고 나면 죽은 듯이 자게 된다. 이튿날 늦게 일어나 게으름을 피우다가 상부 갈릴리를 트래킹한다. 이곳은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국경이 결정되고서도 치열한 역사가 있었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교두보는 굳이 따지자면 한 나라, 즉 시리아에 속했기 때문에 여기 인위적인 국경을 긋는 일은 모두 파괴적인 전투를 야기했다.

 

1917년 영국과 프랑스 외무장관 사익스와 피코가 비밀리에 조약을 맺어 북쪽 국경을 정하는데, 이건 실행되거나 심지어 공개될 이유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영국이 1918년 오토만을 밀어내고 다메섹까지 전부 정복해 버리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레바논 산지의 마론파 기독교(로마 카톨릭 소속)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주저앉긴 했지만 사익스 피코 라인에서 북쪽으로 밀리게 될 것을 각오했다. 1923년 1차 대전을 정리하는 국제연맹의 회의를 거쳐 프랑스 폴레와 영국의 뉴컴브 사이에 조약이 맺어지고, 그 결과가 지금의 레바논-이스라엘 국경 라인과 거의 비슷하다. 

 

 

국경 라인에서 레바논에 속했던 일곱 사이트를 이스라엘이 차지하는 과정은 대단히 논쟁적이다. 오토만 때까지 주로 시아파 무슬림들이 살던 도시들이다. 지금은 흔적만 있거나, 그 자리를 유대인 정착촌이 대신하고 있다.  

  • 아빌 알캄흐는 이욘, 단, 아벨마임, 납달리 중에서(대하 16:4) 아벨마임으로, 북이스라엘의 국고성이 위치한 곳이다. 
  • 후닌은 현재 크파르 길라디와 마르갈리오트 중간 지역이다.  
  • 나비 유샤는 드루즈가 선지자로 여기는 여호수아를 기리는 모스크가 있다. 근방에서 가장 고지대여서 영국은 여기 테가르트 요새tegart fort를 지었다. 1948년 5월 16일 밤 하가나 대원 28명이 여기서 모두 전사했고 그들의 시신이 참수됐다. 히브리어로 28이 כ''ח 비슷한 발음이 כוח force다. 그래서 이곳을 메쭈닷 코아흐, 28 병력의 요새라고 부른다. 
  • 알 말키야는 성경에서 말룩 (느 10:4)의 이름을 딴 곳이다. 1949년 시아파 무슬림들이 떠나고 같은 이름의 말키야라는 키부츠가 세워졌다. 현재 레바논 국경 너머에서 쏘아보내는 로켓이 가장 많이 떨어지는 곳이다.  
  • 카다스는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의 출신지 납달리 게데스(사 4:6)로 여겨지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야엘의 남편 겐 사람 헤벨이 게데스 근처 사아난님 상수리 나무 곁에 장막을 쳤고, 시스라가 그곳으로 들어왔다가 야엘에게 죽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학계는 므깃도 근처에 있는 텔 케데스를 지지하는 편이다. 그 옆에 야엘이란 이름의 모샤브도 있다. 어쨌든 텔 케데스에서 고고학 발굴이 이뤄졌다. 별건 안 나왔다. 가나안 시대니까.
  • 짤리하는 프랑스와 영국이 국경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양도한 24개 마을 중 하나이다. 그래서 1948년 이후 이스라엘 영토가 됐다. 데이르 야신과 함께 이스라엘 무장세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곳으로 여겨진다. 현재 키부츠 이론과 모샤브 아비빔이 자리하고 있다. 
  • 타르비하는 현재 모샤브 자르이트가 위치하고 있다.

 

나비 유샤에 영국이 세운 테가르트 요새, 28명의 하나가 군인의 전사를 기념해 28명의 요새(메쭈다트 코아흐)로 불린다. 이 요새가 이스라엘 군대 안에 있는 국경수비대 미슈마르 하그불의 상징 엠블럼이다. 

 

메르갈리오트에서 886번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면 이렇게 레바논과의 펜스가 그대로 노출돼 있다. 이걸 뭐 국경이라 부르기도 뭐하지만 아무튼 건너편이 레바논이다. 이렇게 가까워도 괜찮은지 십 년 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금 저 봉오리마다 미사일 기지들이 놓이고 로켓을 쏘아보내고 있는 것이다. 

 

마나라는 인구 300명 정도 살고 있는 키부츠다. 아랍어로는 메나라였다. 이스라엘 지명의 유대화의 일환으로 라밈, 높은 곳으로 불린 적도 있는데 결국 음절을 좀 바꿔서 마나라가 되었다. 이츠하크 라빈 전 총리의 여동생 라헬 부부가 이 키부츠의 창립 멤버였다. 레바논 전쟁 당시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곳에 모여 평화를 기원하곤 했다. 하룻밤 레바논의 숨결을 느끼며 머물기 위해 이곳을 찾는 기독교인이 많다. 

 

언젠가 이곳들을 연결하는 평화 루트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제 꿈같은 일이 되었다. 마나라에 로켓이 떨어지고, 하마스 텔러리스트가 침투하면서 300여 명 거주민은 모두 집을 비우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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