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이걸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우울증이다. 포로를 위해 몸값을 지불하는 건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계명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애굽 땅에서 포로(노예)였던 이스라엘을 위해 몸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유월절 렐하세데르에 읽는 하가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람밤도 말했다. 포로를 구하는 게 가장 큰 계명인 이유는, 그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었으며 생명의 위험에 처해 있고 오직 구조만을 앙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형제를 구해 네 몸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브에리의 인쇄소에서 유월절 하가다를 출간했다. 개별배송이라 주문하고 꽤 오래 기다렸다. 유월절을 겨냥해 이걸 준비했을 사람들의 마음이 읽혀 또 눈물이 고인다.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종 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했다. 미가서 6:4 말씀이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우리 죄를 위해 예수님이 몸값을 치르셨다고 믿고, 그리스도이신 그분을 '포데' redeemer 라고도 부른다.
유월절이 시작되는 니산월 14일, 집안에서 모든 하메츠, 누룩을 제거하고, 일부를 가져다 태운다. 그리고 세데르를 준비하는데, 6가지 음식(?)을 담는 접시, 케아라와 마짜 3개가 필요하다. 14가지 순서를 따르지만 각 순서의 비중은 모두 다르다. 10번째가 식사인데, 세속인 가정에서는 일단 밥 먹고는 해산 분위기다.
- 카데쉬, 시기에 따라 3가지 옵션이 있다. 샤밧, 평일, 샤밧 끝난 토요일 밤. 카데쉬는 축북의 말을 하는 것이므로 시작할 때 사브리 마라난סברי מרנן, 여러분 좀 들어보세요,로 시작된다.
- 우르하츠, 손 씻는 시간이다. 마짜도 빵이다. 뭔가가 입에 들어갈 때는 손을 씻는 게 유대교 정결법이다.
- 카르파스, 샐러리를 소금 물에 담근다. 원래 세데르는 이해하고 납득해서 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이 순서가 여기 있는 건 당췌 이해가 안 된다. 물어보면 시대별로 종파별로 개인별로 무수한 이유들이 궤변처럼 쏟아진다.
- 야하츠, 반으로 자른다. 뭘? 세 마짜 중 가운데 마짜를 잘라 아피코만으로 숨긴다. 아피코만은 성전이 무너진 유대교에서 희생제물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마기드, 이야기한다. 이 날의 배경에 관해, 이 날의 특별함에 관해 긴 해설이 이어진다. 집안의 어린이가 질문하는 시간이 있다. 오늘밤은 뭐가 특별한 거예요? מה נשתנה הלילה הזה מכל הלילות 누룩 없는 마짜를 먹고, 야채 중에 쓴 나물만 먹고, 딥핑을 두 번이나 하고, 모두 모여 먹는단다. 부득이 세데르에 오지 못한 사람을 위해 빈 의자를 두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그 부득이함의 이유가 하마스에 납치됐기 때문이라니, 2024년에 말이다.
세데르 접시가 이때 올라온다. 마짜를 드러낸다.
עבדים היינו אתה נבי הורין 우리는 노예였지만 너희는 자유의 백성이다.
세데르 하가다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나온다. 네 명이 있는데 현명한 자, 사악한 자, 백지인 자, 물을 줄 모르는 자가 있다. 현명한 자가 묻는다. 하나님의 법과 율례와 계명이 무엇인가, 나머지 세 명은 자기 속성에 따라 이에 답할 수 없고, 결국 현명한 자만이 답한다. 아무리 읽어도 뭔 소린지 모르겠고, 아무도 모르면서 읽고 있다. 하가다는 그런 거다.
마기드 중간에 마짜를 덮었다가 치웠다를 반복한다. 그건 왜 그럴까?
아무튼 하나님은 강 건너편에서 다른 신을 섬기던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가나안 땅에 들이셨고, 그 자손은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 400년 동안 종살이를 했는데,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하나님이 이적을 베푸셨다는 내용이다. 하나님의 이적을 말하면서 와인이 담긴 컵에 손가락을 담가 접시에 15번 뿌린다. 이적은 10개 דצ''ך עד''ש באח''ב인데?
דם ואש ותימרות עשן עשר מכות을 말하면서도 뿌린다. 그래도 14개인데? 집집마다 사정이 전부 다르다.
하다다에도 파라샤가 있다. 랍비 요세 하갈릴리, 랍비 엘리에제르, 랍비 아키바, 랍비 사믈리엘 등의 어록이 나온다. 하나님이 이 백성에게 얼마나 좋은 것을 주셨는지 노래 부른다. 다이에누.
올해 이 노래를 부르며 다들 착잡할 것이다. 이 백성에게 충분한 테러와 충격이 있었던 해다.
페삭, 유월절의 의미를 다지며 마짜와 마로르, 무교병과 쓴나물을 먹는다. 이때 팔을 올리면 안 되는데, 세데르 접시에 즈루아가 있기 때문이란다. 마기드를 마치면 첫째 와인이다.
6. 라흐짜, 두 번째 손을 씻는다.
7. 모찌 마짜, 마짜를 꺼낸다.
8. 마로르, 하로세트를 찍어 '말없이' 먹는다.
9. 코레흐, 마짜에 마로르르 끼워 샌드위치를 만들고 "이와 같았던 성전을 기억하라"를 읽고 나서 먹는다.
10. 슐한 오레흐, 식사다. 아슈케나짐은 먼저 마짜볼이라고도 하는 스프 크네이들라흐, 닭고기 스프를 먹는다. 열량이 어마어마해서 이것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고기는 반드시 나와야 하는데, 장조림처럼 오래오래 익힌 고기 요리다. 많은 식구가 먹어야 하니 스테이크가 불가능해서다. 닭다리 튀김도 꼭 나오는데 맛있다 느낀 적이 한번도 없다. 우리나라 명절 음식도 썩 훌륭한 건 아니지만, 유대교 명절 음식은 버리려고 만드는 음식 같다. 평소에 맛있던 것도 명절 식탁에 오르면 맛이 없다고 봐야겠지. 익혔다 식혔다를 거듭하고, 하가다 읽느라 타이밍을 못 맞추니 맛이 있기가 어렵다. 그래도 집이 아닌 호텔이나 기관에서 주최하는 세데르를 가면, 남이 만들어줘서 그런지 한결 낫다.
11. 짜푼, 숨겨둔 아피코만을 찾아 먹는다. 12시 전에 해야 한다. 세데르가 12시를 넘는 게 보통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명절 저녁이 되기 전에 미리 잠을 자 둬야 한다.
12. 바레흐, 세 번째 와인 잔을 들고 축복한다. 길다. 의식을 똑바로 하고 들어본 적이 없다. 어서 끝났으면, 간절한 순간이다.
13. 할렐, 노래 부르는 시간이다. 이제 그만.
14. 니르짜, 레샤바 하바 비루샬라임.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맞자는 기원이다.
바루흐 아타 아도나이 엘로헤이 멜렉흐 하올람, 아쉐르 키드샤누 베미쯔보타브 베찌바누 알 스피라트 하오메르. 그의 계명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오메르를 셈하라고 명하신 세상의 주인 하나님은 찬양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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