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과 EU와 미국 등 국제 사회는 매년 1월 27일을 국제 홀로코스트 추념일로 지킨다. 194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소련의 붉은 군대에 의해 해방됐기 때문이다. 해방, 이처럼 정치적인 표현이 있을까. 여러 정황으로 비춰볼 때, 연합군은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그 전부터 알고 있었다. 적어도 1944년 6월 6일 D-Day 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상륙한 이후 8월 전까지는 이를 파악했을 것이다. 그때라도 아우슈비츠를 파괴했다면 이후의 희생은 줄일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를, 나야 모른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나치는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끌어내 기차역을 향해 행진시킨다. 가장 큰 규모가 1945년 1월 27일 직전 9일에 걸쳐 56,000명의 유대인들이 강추위 속에 내몰렸다. Death march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15,000명이 길에서 죽는다. 하기야, 소련 군대는 1945년 5월까지 강 하나 건너에 대기한 채 폴란드의 파르티잔들이 죽어나가는 걸 구경만 했다. 폴란드는 소련이 진작부터 눈독 들인 나리였으니까. 5월 7일 붉은 군대가 베를린으로 진군한 건, 연합군보다 먼저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매년 5월 8일을 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로 기념한다.
나치는 1944년 3월 19일 헝가리를 합병한다. 헝가리는 유럽에서도 유대인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헝가리 제국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유대인에게 비교적 관대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 헝가리 유대인 인구는 80만 명 이상이었다. 나치는 이들을 해결하는 것을 마지막 과제로 여겼고, 5월부터 7월, 고작 3개월 만에 헝가리 유대인의 절반 이상, 즉 45만 명이 아우슈비츠와 비르켄나우로 끌려간다. 아우슈비츠는 강제 노동을 하는 수용소였고, 비르켄나우는 노동에 적합치 않은 사람을 도착과 동시에 가스실로 보내는 곳이었다. 그래서 아우슈비츠의 모토가 노동이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였다. 오늘 부다페스트에는 헝가리 유대인의 참사 80주년을 기념하는 행진이 열렸다.
유대인은 생일은 그레고리력으로 따지지만, 기일은 히브리력으로 지킨다. 아우슈비츠가 해방된 1월 27일은 겨울이니 테벳이나 슈밧 월에 해당한다. 유대인 역사와 그다지 연관이 없는 달이다. 그래서 1월을 히브리력 첫째 달 니산 월로 바꾸어 15일부터 7일간 지속되는 유월절 다음에 위치하게 만들었다. 성경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로부터 해방된 유월절 사건에 이어, 근대 역사적으로 유대 민족의 해방 사건을 기념하도록 만든 것이다. 또 단지 홀로코스트만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영웅적 봉기도 기념한다. 그래서 홀로코스트 기념관 야드바쉠의 바르샤바 유대인 봉기 기념상 앞에서 기념식을 갖는다. 국가 기념식으로 전날 밤에 열린다. 이날 밤은 유흥을 위한 모든 활동이 중단된다. 텔레비전에서도 홀로코스트 관련 프로그램만 계속된다.
이스라엘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이 입장하면서 기념식이 시작된다. 총리 부인 사라 네탄야후가 안 나온 건 최근 십수 년 만에 처음이다. 야드바쉠 의장이 다니 다얀과 사이가 안 좋아서다.
아슈케나지 대표 랍비 다비드 라다우가 점화를 한다. 유대인 의식에서 거의 모든 시작은 불을 붙이는 것이다. 노란색은, 인질들 때문이다. 인질들을 대표하는 빈 의자도 놓였다.
매년 기념식은 주제가 있는데, 올해 주제는 "잃어버린 세계, 유대인 공동체의 파괴"이다. 전 세계에서 반이스라엘 정서로 인한 반유대주의가 이때다 싶게 최고조에 달한 시기임을 상기시킨다. 이스라엘 대통령 헤르쪼그, 인질들의 귀환을 바라는 노란 리본을 달았다.
유대인 기념식에는 노래가 빠지지 않는다. 노피아 예디디야, 신인이다. 여기 서고 싶은 가수가 많지 않을 것이다. 작년 이 자리에 케렌 펠레스가 섰는데, 사라 네탄야후가 싫어하는 가수였단다. 그 뜻을 받들어 집권 여당 리쿠드가 총출동해 야드바쉠 의장 다니 다얀을 밀어내려다가 들통나서 전 세계 유대인 조직이 규탄했었다.
요즘 이스라엘은 노란 리본을 단 사람과 안 단 사람으로 나뉜다. 종교인들은 유대교 계명도 무시하고 한결같이 안 단다. 웨스트뱅크에서 납치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당연히 리본도 달고 납치자의 귀환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떠들었었다. 종교가 정치에 굴복하는 것보다 추악한 게 있을까. 총리라는 분이 인질들의 안녕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뭔지 궁금하네. 전쟁이다. We will fight alone if we need to. Never again - it's now. 바다 건너 나라에서 들으시라고 영어로 말했다. 다음주 헤르츨 국립묘지 이스라엘 현충일 행사에서 야유를 받을 것 같은데.
홀로코스트 희생자 600만 명을 대표하는 6명의 사연이 소개되고 이들이 점화 의식을 갖는다.
혼자 거동도 하기 힘든 고령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자손들의 부축을 받는다.
점화자들의 사연은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고초를 당했고 언제 이스라엘 땅에 왔는지, 그래서 몇 명의 자손을 두었는지로 마치곤 한다. 생명을 구하고 그 연속성을 이어가는 것만이 이들의 가장 성취이기 때문이다. 욤키푸르 전쟁 당시 전사자들의 장례를 감독했었던 전직 IDF 대령 출신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는 "אל תתיאשו"절망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홀로코스트가 유럽에서 대규모로 일어난 사건이라 희생자와 생존자 역시 주로 아슈케나짐이다. 그래서 미즈라힘 중에는 이 사건을 경시하는 경우도 있다.
생존자 대표의 개인적인 사연이 소개된다.
공연도 한다.
기념식이 끝나면 도시마다 중앙 광장에서 시청이 주최하는 공연이 열린다. 착잡한 노래들을 쉼없이 듣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것 같지만, 전도서 3장처럼 인생에는 모두 때가 있어, 기뻐할 때만큼 슬퍼할 때도 중요하다.
유대교 장례식 기도인 카디쉬는 세파라딤 대표 랍비가 한다. 리숀 레찌온이라 불리는 직책이다. 랍비 이츠하크 오바댜.
노래로도 하는 유대교 장례식 기도, 엘 말레 라하밈. 올해는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낭독했다. 하마스 전쟁에서 싸우고 있는 IDF 장교 손자가 함께 했다.
마지막은 하티크바, 이스라엘 국가를 부른다.
내일 10시 2분 간 전국에서 사이렌이 울린다. 이스라엘 국회와 홀로코스트 키부츠 등에서 기념 행사가 이어진다. 학교와 기관들도 개별적으로 기념식을 갖는다. 6개의 초를 켜고 시와 노래로 홀로코스트 사건을 기념하는 건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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