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유대교 샤부옷은 6월 11일 일몰부터 12일 일몰까지다. 기독교 성령강림주일은 이미 5월 19일에 기념했을 테니, 뜬금없이 오순절을 찾기는 어색하다. 올해 히브리력에 윤달이 있어서, 윤달 없는 일반 그레고리력과 한 달 정도 차이가 난다.
이스라엘 명절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에드가 샤부옷이다.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일단 초여름 더위에 숨막히기 시작할 즈음 맞이하는 값진 휴가기 때문이다. 올해는 샤부옷이 한 달 미뤄졌으니 더 덥다. 6월 30일 여름 방학이 시작될 터라 시험에 대한 근심걱정이 한창이지만, 뭐 그건 알아서 하면 되고.
또 다른 이유는 샤부옷에 먹는 음식이 내 입맛에 맞아서다. 유대인 퀴진은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은 못 받지만, 따져 보자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꽤나 명성 높은 음식들이 적지 않다. 다 나하고 안 맞다. 유일하게 샤부옷 음식이 내 취향인데, 유제품으로 점철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와 처음 농사를 지어 거둔 열매를 가지고 여호와 앞에 서는 모에드가 샤부옷이다. 유월절로부터 7번 주를 셈하고 난 다음날, 즉 50번째 날이다. 이 개념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회복이라는 시오니즘과 결합해 유제품 식탁의 정수를 이루게 됐다. 적어도 샤부옷 식탁만큼은 우유가 치즈와 더불어 흘러 넘친다. 참, 나는 락토즈 때문에 우유는 안 되고 치즈만 된다.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디저트다. 헝가리어로 블린체스, 러시아어로 블리니스, 크레페와 팬케이크의 중간이다. 속에 넣는 재료는 디저트면 달콤한 건포도와 크림치즈를 섞고, 식사 대용은 블루치즈나 불가리아 치즈처럼 짭짤한 치즈를 넣는다. 마침 헝가리의 가로수인 앵두는 요즘이 제철과일이다. 앵두를 끓이고 설탕과 생크림을 넣은 앵두 국이 샤부옷에 적절하다.
유대인 명절답게 샤부옷도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다. 이 더위에 초대받는 것도 안 반갑다. 요즘은 호텔이 관광을 포기한 탓인지, 명절 식사 상품권이 돌아다닌다. 유명한 쉐프들 이름을 끼워 판다. 샤부옷이라 이탈리안 전문 쉐프들이 각광받고 있다. 유대인 명절에 배불러 본 적이 없지만 샤부옷은 예외라, 아침과 점심 식사량을 조절해야 할 정도다.
어제 밤 디저트를 만들고 늦게 일어났는데, 아침에 연락이 왔다. 소식 들었어?로 시작되는 연락. 간밤에 가자 전투에서 4명의 군인들이 전사했다. 부비트랩이 설치된 건물이 폭발하면서 4명이 죽고 7명이 부상 당했단다. 지상전 이후 전사자 300명이 되었다. 자, 내가 알아야 할 걸 빨리 말해주기 바래. 사망한 한 명이 건너 아는 사람이다. 나는 이제 눈물도 나지 않는다. 장례식은 몇 시래? 내가 어제 샤부옷을 즐거워하며 만든 음식은 장례식에 가져가야 할 모양이다. 갈릴리 근처 호텔에 예약한 걸 모두 취소했다. 성경에도 나오지만 유대교는 그날 해가 저물기 전에 시신을 땅에 묻어야 한다. 저녁에 명절이 시작되니 더 서둘러야 한다. 명절에는 조문, 쉬바를 할 수 없다. 이미 팔다리가 잘리고 넋이 나간 마당에, 여호와가 지정하신 이 기쁜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다.
헤즈볼라는 골란 고원과 북쪽 국경에 11일 오전에만 50발 이상의 로켓을 쏘았다. 며칠 전에는 북쪽 국경의 드루즈 마을 후르페쉬가 불바다가 됐다. 독일 십자군 토이토닉의 요새가 있는 곳인데 어디가 어떻게 무너졌을지 암담하다. 레바논 대통령 선거는 12번의 대결을 치르고 여전히 고착 상태이다. 헤즈볼라가 기독교 블록의 대통령 후보 지명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은 결과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림픽 이전에 레바논에 안정을 가져오고 싶은 모양인데, 나도 바라는 바다. 그러니 특사를 보내려면 제대로 된 인물을 고르시라. 7월 26일에 개막식인데 어쩌려고 저러나.
이스라엘 네탄야후 총리가 마지못해 동의한, 미국이 제안한 휴전안을 하마스가 받아들였다는 모양이다. 블링켄이 11일 오후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요르단에서 PA의 총리를 만나고 오는 길이다. 올해 3월 PA 개혁을 위해 새로 임명된 경제학자 모함마드 무스타파, 어휴. 그 사람 만나서 뭐 하나 싶지만, 뭐라도 하겠지. 마침 컨퍼런스 이름도 'Call for Action: Urgent Humanitarian Response for Gaza'였다. 우리 식으로 하면 얼음땡 놀이에서 발군의 실력인 술래 때문에 전부 얼음 상태라, "어서 땡 해줘"를 외치는 건가. 원래 이 놀이에서 자구책은 없는 건가. 미국이 팔레스타인 원조금으로 다시 1억 달러를 내놓기로 했다.
참, 드디어 베니 간츠가 전쟁 내각을 사퇴하기로 했다. 타이밍을 이렇게 못 맞추는데 정치를 어떻게 하나. 그래도 사퇴하느라 애썼다. 새 선거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나프탈리 베네트, 야이르 라피드, 아빅도르 리베르만이 모임을 가졌다나 보다. 드디어 이스라엘이 야당 대통합의 필요성을 깨닫는 모양이다.
전통적으로 샤부옷은 키부츠의 명절이다. 키부츠마다 치즈 워크샵을 열거나 농산품들을 대량 판매한다. 그러니 오늘 오테프 키부츠들은 더욱 쓰라린 마음이 들 것이다. 일주일 전 이스라엘 군대가 라피아흐에서 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니르 오즈에서 납치된 인질 4명이 사망했다. 그중 한 명인 아미람 코페르는 시인이자 작가인데, "쉽볼레이 파즈"란 샤부옷 노래를 썼다. 시편 21편에 여호와가 기뻐하시는 자에게 순금 관(아테렛 파즈)을 씌워주신다는 구절이 있는데, 샤부옷에 머리를 장식한 곡식단에 비춰 쉽볼레이 파즈라 부른 것이다.
이 상처는 과연 회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 이 상처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스라엘은 어떤 나라가 될까.
이런 건 어디서 단체로 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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