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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마, 리리, 다니엘라, 카리나의 생환

정오쯤 헬리콥터 소리가 났다. 블랙호크는 blade가 네 개인데, 그래서 항상 타타타타- 비트가 있다. 전쟁 기간 내내 저 소리가 나면 벌떡 일어나 창을 열고 하늘을 보곤 했다. 가자에서 네게브와 쉐펠라를 지나 텔아비브로 향하는 헬리콥터 속에서 누군가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날 뒤에는 거의 반드시 전사자 이름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곤 했다. 타타타타- 블랙호크가 다가오는 걸 기다리는데 어김없이 발작처럼 두근거렸다. 아니지, 지금은 휴전중이고, 오늘 저기엔 네 명의 타쯔피타닛, 여군들이 석방되어 부모와 함께 이스라엘로 돌아오고 있다.

 

 

모두 19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엄연한 군인들이다. 카리나, 리리, 다니엘라, 나아마. 가족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투쟁했는지, 이들 모습은 477일 동안 충분히 각인되었다. 나아마는 머리카락을 움켜쥔 테러리스트에 의해 피투성이 채 맨발로 끌려가는 장면이 공개됐었다. 카트리나가 끌려가던 장면도 못 견디게 끔찍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석방을 기회로 선전식을 기획했다. 지난주 난리법석이던 석방 장면이 자신들의 무능처럼 느껴졌는지 이번에는 확실히 통제하고 있다는 걸 과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리리와 다니엘라는 저기서도 성격이 드러난다.하마스가 행복한 척 하라고는 했다지만, 참 해맑다.   

 

이들의 생환이 너무나 다행인 것과 별도로, 하마스는 벌써 협정을 어겼다. 매주 석방 인질 숫자가 세 명씩인데 굳이 둘째주만 네 명이라고 했을 때, 누구나 산수 실력을 동원해 누가 석방될지 헤아렸었다. 

 

협정에 따라 여군들보다 우선 어린이와 민간인 여성이 석방되어야 한다. 그럼 비바스 형제와 엄마 쉬리, 그리고 아르벨 예후드다. 그렇게 해야 4명이라는 숫자도 그럴 듯하다. 비바스 가족은 전쟁 초기 어딘가 별도로 끌려가는 장면이 녹화 동영상으로 공개됐었다. 그리고 아르벨은 그 어디에도 소식이 없었다. 그래도 이스라엘 정보부가 살아 있다고 믿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납치 당시 1살도 되지 않았던 크피르는 지난주 2살 생일을 맞았다. 2살 4살 어린이에게는 각종 백신이 필요한 법이다. 제대로 예방접종을 받지 않으면 멀쩡한 환경에서도 죽는 법인데. 하마스는 이들이 팔레스타인 지하디스트 손에 잡혀 있다는 이유로 생존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번 11월 말 인질 거래 때도 이들의 거취 때문에 결국 협정이 깨지고 전투가 재개됐었다. 간밤에 이스라엘은 석방자 명단을 받고 나서, 하마스가 협정을 어겼다고 밝히고, 어떻게 할지 논의에 들어갔었다. 그후 자러 가면서, 아무 상관 없는 나조차 저들 가족들에게 죄스러음을 느꼈는데. 이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이 느낌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벤그비르와 스모트리치가 돌아온 인질들을 환영한다고 X에 썼단다. 앵커 요니 레비트가 인질 협정을 반대한 장본인이 환영이 대수냐고 말을 자른다. 속시원한 것. 

 

한편 19살밖에 되지 않지만 군인이기 때문에, 이들의 석방에는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여군 1명당 50명이 석방됐는데 그중 121명이 종신형이다. 즉 한 명 이상 이스라엘 시민을 죽인 테러리스트다. 하마스 편의 수감자 70명은 국외(이집트 일단?)로 보내졌고 나머지는 라말라로 갔다. 가자로 추방될 예정인 어떤 사형수는 석방을 거부하고 이스라엘 감옥에 남기로 했다. 가자에 가면 하마스에게 살해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참, 저 동네도.

 

가장 낯익은 이름은 Zakaria Zubeidi, 2021년 Prison break로 탈출했다가 다시 잡혔었다. 적어도 45명의 이스라엘 시민을 죽인 바 있다. 팔레스타인이 자신의 자유와 존엄에 대한 권리를 위해 싸운다는 것은 대략 이런 뜻이다. 가미가제 특공대도 민간인에게 뛰어들진 않았는데. 가자 지구의 불의에 맞선 굳건한 인내와 의지는 역사가 기록하고 세상이 배울 테니 끝까지 투쟁을 계속한단다. 그렇다. 477일 동안 버텨낸 이스라엘 인질들처럼, 하마스도 어쨌든 살아남았다. 10월 7일은 지금이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 중에 여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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