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받으면 자라게 되어 있다.

천지창조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첫 일성은 "빛이 있으라"다. 그것이 우주와 생명의 시작이다. 시작으로서 '빛'이 품고 있는 원시성에 주목한 철학이 카발라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뭐냐에 대한 내 답이기도 하다. 유대교 카발라의 빛이 기독교 예수가 되었으니까.
빛의 가장 큰 능력은 자라게 하는 데 있다. 나는 이 표현을 정말 좋아하는데, 별 관심 없는 사람들이 그렇죠, 성의없이 맞장구치는 게 야속하지만, 설명할 도리가 없다. 모든 자라는 것만이 생명임을 입증한다. 그리고 생명은 빛이 없다면 자랄 수 없다.
햇빛이든 달빛이든 인간이 빛에 끌리는 것은 그것이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뜨거운 중동에서 태양에 노출돼 있자면 피부암에 걸릴 것이고, 달빛을 감상하자고 밤을 샐 수도 없다. 그래서 음악이 태동한 것이리라.
Debussy 발음은 '데뷔씨'에 가깝다. clair de lune, 우리말로 달빛이다. 프랑스인 친구에게 저 표현의 문법적 오류를 물은 적이 있는데, 그냥 원래 그렇다는 답이었다. 여성형인 달이 소유격인데 왜 claire가 아니냐, 형용사 스미훗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같은 고대어가 이런 걸 잘 설명해 준다. 아무튼 데뷔씨의 달빛은 그야말로 프랑스 인상주의 자체다. 명확한 조성이나 리듬 대신 뭉개듯이 이어지는 아르페지오는, 색깔을 섞어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인상주의 그림 같다. 데뷔씨가 폴 베를린의 시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스라엘 인질들이 빛이 들지 않는 지하 터널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인도주의 차원이 아니라, 카발라에 근거한 이들의 사고체계가 받아들이기 힘든 가혹함이다. 빛을 볼 수 없다는 건, 하나님의 창조 현실에서 배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피아니스트 알론 오헬은 2018년 콩쿨에 나가 데위씨의 '달빛'을 연주했다. 달빛이 주는 인상주의적 생동감을 음악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예술가인 것이다. 그런 알론이 520일이 넘도록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알론에게 헌정된 노래가 하난 벤아리의 '태양'이다. 이 두 곡의 연관성을 찾아낸 프로듀서가 정말 대단한데, 이들은 코미디언이다. 이스라엘의 정치 사회 현실을 풍자하는 Nice country, 에레츠 네헤데레트 팀이 함께 불렀다.
כבר שנים שאני לא דומעת 몇 년 동안 나는 울지 않았어,로 시작해서,이제 약간의 빛이 들어오고 그곳에 당신이 있음을 알게 돼
אני פתאום בוכה ומתפללת 나는 갑자기 울며 기도한다. ואז אני אהיה כמו שמש לעולם 이제 나는 영원히 태양과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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