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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ife in Israel

한파를 앞두고

무시무시한 아침이다. 기상청에서 일주일 전부터 위험하다 경고한 한파 גל קור '코랄' 때문만은 아니다. 바트얌에서 다시 무차별 폭탄 테러가 있었다. 천운으로 빈 버스만 날렸지만 구쉬단 지역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또 어제 이스라엘 인구 상당수가 비바람을 맞으며 조의를 표한 시신 중 하나가 인질 본인이 아니란다. 하마스의 태평한 대답은 쉬리 비바스의 유해가 다른 시신과 섞였을 가능성이 있단다. 쉬리의 두 아들 아리엘과 크피르의 시신은 맞다.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살해된 게 아니라면 시신이 섞일 이유가 무엇인가. 엄마의 시신을 숨겨 무엇을 덮으려 한 걸까. 

 

놀랍게도 오후에 발표된 포렌식 결과는 아리엘과 크피르가, 하마스 선동대로 이스라엘 공습으로 죽은 게 아니라, 하마스에 살해됐다는 것이다. 총으로 쏘지도 않고 직접 손으로 죽였단다. 그걸 숨기려 시신이 훼손될 때까지, 지금까지 시간을 끈 것이다. 사망 시기는 2023년 11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일시 휴전으로 인질 교환이 시작됐을 시점보다 늦지 않단다. 그래서 이들의 시신을 적십자에 전달하는 기묘한 기념식에 자기 아이들을 내세운 것인가. 유대인 아이만큼이나 팔레스타인 아이들도 소중하다고 말하려고?    

 

욤 쉬쉬 주말 아침, 기껏해야 뭘 먹으면 좋을까 같은 고민만 해도 인생은 충분히 복잡하다. 시신이나 관이나 살해 같은 단어를 500일 넘게 복기해야 하는 건 너무하다. 시궁창 같은 삶에 던져진 이 시대의 불행한 이들이라면 공연히 하늘 볼 일이 많은 법이다.    

구름은 뜨거운 지표면에서 증발한 수분이, 냉각된 공기 중에 얼음이나 물방울로 맺힌 결정체이다. 고도, 온도, 공기의 상승 방식, 습도, 바람, 대기 흐름 등이 구름의 모양을 결정한다. 그래서, 왜 이날 아침 구름은 이 모양이 된 것일까.  

여기 도로가 이렇게 비어 있는 건 처음 본다. 무거운 공기,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쁜 욤 쉬쉬 아침에 칩거를 택했다. 2025년 2월 21일, 하마스 전쟁 504일, 유난히 조용한 아침이다.  

드디어 비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저 비는 땅으로 스며들었다가 다시 하늘로 증발한다. 인간의 마음도 저렇게 순환이 되는 거겠지. 미움이 커지다 한계에 이르면 수치가 떨어져 평정이 시작되니까. 자연과 인간이 다른 점이라면, 인간은 이 순환 과정에서 반드시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그 희생이 또 다른 미움의 발판이 되어 새로운 희생을 향해 상승과정을 밟겠지.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건 이다지도 힘든 일이다.  

로마서 12:21의 히브리어 번역을 찾아 보았다. אַל־תִּכָּבֵשׁ לִפְנֵי הָרָע כִּי אִם־כְּבֹשׁ אֶת־הָרַע לְפָנֶיךָ בַּטּוֹב

히브리어 KaVaSh 동사의 헬라어 원어는 nikao, 그 유명한 나이키의 어원이다. 악을 이기는 것은 보복하는 게 아니라 선으로 악을 정복하는 것이다. 단순한 참을 인 자 세 번이 아니다. 악을 이기고 승리하는 선, 그게 로마서의 입장이다. 선이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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