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지 452일째다. 하누카는 7일째다.
올해는 크리스마스와 하누카가 겹친 크리스누카였다. 지난 성탄절에 하누키야에 불을 밝혔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이번 크리스누카는 대박이었을 것이다. 내년에 마침 카톨릭의 성년이기도 하니까. 하이파나 나사렛 같은 곳에서는 성대한 크리스마스 행진도 있었을 텐데. 하누카는 8일 동안이기 때문에 날마다 서로 다른 지인 모임을 갖고 음식 준비로 바쁜 시기다. 올해는 당연히 이 모든 걸 생략했다. 그럴 몸과 마음의 상태가 아니다. 대신 날마다 인질들의 석방을 기원하며 노란 초에 불을 붙힌다. 바루흐 아타 아도나이 엘로헤이 멜레흐 하올람. 이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 영광받으소서. 그러고 나면 창자 아래에서부터 뭔가가 들끓는 기분이다.
간밤에는 비도 쏟아졌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마불(대홍수) 수준이었다. 그 와중에 후티 반군의 탄두미사일 때문에 공습이 울렸고, 방공호로 내려가다가 미끄러졌다. 공습 자체보다, 이를 피해 방공호로 서둘러 가다가 다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모양이다. 겨울철 차가운 공기가 공습을 좀 더 날카롭게 만든다고 해야 하나. 원래 공습 소리가 유쾌할 수는 없지만, 요즘은 심장이 두근대는 증상도 나타난다. 이것도 일종의 PTSD라고 하는 모양이다. 마음을 편히 갖고 서로 긍정적인 말을 주고받으란다. 마음을 편히 갖고 서로 긍정적인 말을 주고받으면 이 증상이 사라질까.
그래도 이건 어디까지나 남의 나라 일이었다. 참 안됐구나, 안타깝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한민국은 참 살기 좋은 나라구나, 어쩌면 마음 한켠에서 안도감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게 되니, 끝까지 붙들고 있던 마지막 잎새가 떨어진 느낌이다. 최근 이스라엘 뉴스는 사우스 코리아의 대단히 심란한 상황들을 대서특필 중이다. 이렇게까지 대한민국에 관심이 컸나? 저런 나라도 있는데 우리만 불행한 건 아니다 싶어서일 수도 있겠다. 환율은 또 어떻고. 전쟁중인 나라도 환율 방어에 문제없는데, 뭐하느라 저 지경인지.
성탄절을 앞둔 주일, 욥바에 있는 세인트 앤드류 교회를 '지나갔다.'
동방박사 고증에 흡족하다. 근데 햇빛 찬란한 야자수 아래에서 이 장면을 보자니, 새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이상하다. 그 노래 출처가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오베른도르프다. 나폴레옹 전쟁의 폐허에서 성탄의 의미를 '자체 해석'한 노래니까. 가자의 난민 텐트에서 갓 태어난 갓난아기가 추위에 얼어 죽었다고 한다. 연평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일이 없는 지역에서 가짜 뉴스감으로도 이상한 소식이다. 전쟁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현실이다. 아기 잘도 잔다,가 이렇게 구슬픈 가사였다니.
오랜만에 방문한 욥바에서 좋아하는 레스토랑을 찾았는데, 한 달 넘게 자체 폐업이란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나한테, 뉴스도 안 보냐는 식이다. 아, 맞다. 2024년 10월 1일 경전철에서 총격 테러가 일어나 6명이 죽었다. 그중 2명이 외국인이었고, 한 명은 임산부였다.
욥바가 이런 곳인데 말이지. 아니, 이래서 문제인가? 유대교 회당은 끼워주기도 싫은...
오랜만에 갈릴리 바다를 보고 왔다. 문 연 식당이 없다. 그래도 휴전이 지속되고 있다는 데 큰 안도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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