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aily life in Israel

사자 동상을 기다리며

성경에 따르면 사자는 유다의 상징이다. 그래서 유다의 도시 예루살렘의 상징이 사자다. 아리에, 구체적으로 수사자다. 내가 사는 도시는 사자와 전혀 인연이 없고, 굳이 별칭을 넣으면 과학의 도시, 문화의 도시라고 부른다.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19세기 신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수사자와 암사자의 도시라는 플래카드가 붙기 시작했다. 게다가 안보 역량의 강력한 후방이란다. 

 

이란이 이스라엘의 핵시설 공습에 대응한 첫 날, 그러니까 150발의 탄도미사일이 쏟아지던 날 이 도시는 직격탄을 맞았다. 건물 하나가 통째로 사라져 버릴 정도로 강력한 폭탄이었다. 여기서 1.5킬로미터 떨어진 우리집에서도 그 진동이 고스란히 느껴지던 강력한 충돌이었다. 클러스터 폭탄이라니 그게 어디로 떨어질지는 랜덤이었던 셈이다. 그래도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무너진 건물 아래 깔렸던 많은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수송됐다. 천만다행이라는 말을 이런 때 할 것이다. 하지만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매던 부상자 한 명이 결국 이란 미사일로 인한 29번째 사망자가 되었다. 필리핀에서 온 간병인이었다. 레아 모스케라, 향년 49세였다. 이 뉴스를 보자마자 떠올랐다. 레아 모스케라의 신분이 불법이었으면 어쩔 뻔했나. 돈 벌러 이 먼 곳에 와서, 이란 미사일로 인해 사망하다니, 그녀의 생이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기를 바랬다. 

 

건너편 건물들은 무너지진 않았지만 유리창이 모두 날아갔다. 암 켈라비 야쿰, 암 이스라엘 하이!

 

이 무너진 폐허에서 일어서는 비장함을 성경은 암사자에 빗댄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작전명 자체가 암 켈라비, 암사자 같은 백성이었다. 잠깐, 갈기, 종모가 있으면 수사자 아니야? 한자로 鬃은 털의 원조급이라는 의미다. 영어 mane, 독일어 Maehne 손과 관련된 단어다. 히브리어로는 라아마רעמה다. 여기서 잠깐 어질한데, 이란을 공습한 이스라엘 전투기 보잉 F15 I의 히브리어 별칭이 라암רעם, 번개다. F15 eagle 기종은 '매'בז라고 하지만, 이스라엘(I)이 개량하고 따로 이름을 붙힌 것이다. 우연이 아닐 거다. 이스라엘에서 전쟁을 기획하는 이들은 작전명 선정에 특별한 공을 들인다. 사람들을 상징 이미지 아래 모아세울 필요가 있어서다.   

 

음, 상징에 그치는 게 아니라 동상을 만드는 거였어? 유대교가 동물 형상을 빚어도 되나? 송아지만 금지였어?

 

건너편에 있는 시청 건물이다. 그동안 상가 건물에 가려져 잘 안 보였는데 이번에 번듯이 드러났다. 큰 걸개 그림은 아직도 가자에 인질로 잡혀 있는 이 도시 출신 군인이다. 최근에 가자에서 두 번째 생일을 맞았으니 21살, 이제 제대할 때가 됐다. 그의 집이 어딘지도 알고, 그의 부모가 어떤 상태인지도 안다. 마음 아픈 일이다. 

 

이곳이 원래 시장통이다. 다시 가게가 문을 열었나. 진정한 생존력은 사자 동상 세우는 것보다야, 이 거리가 다시 북적이는 걸 텐데. 

'Daily life in Isra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란 미사일 공습  (4) 2025.06.16
מה שמואר צומח  (0) 2025.03.12
겨울 음료 Golden Milk  (0) 2025.03.10
이스라엘에서 풀 뜯어먹기  (0) 2025.03.08
한파를 앞두고  (0) 2025.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