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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브의 베두인

디모나에 갈 일이 생겼다. 안 가려고 기를 썼다. 최선을 다해 저항해도 결국 할 수밖에 없을 때, 이상한 열정이 생긴다. 아마도 자신을 보호하려는 갸륵한 뇌활동의 일환이 아닐까. 새벽부터 희한한 콧노래까지 부르며 출발했다. 하지만 근거없는 열정은 브엘세바를 끝으로 증발했다. 브엘세바에서 디모나를 연결하는 25번 고속도로에 들어섰을 때, 나는 사이렌 울리는 가자 근처보다 더 힘겨운 거부감을 느꼈다. 이 즈음에서 사진 자료를 첨부하면 좋겠지만, 그럴 기회도 없었다. 차를 세울 수 없었던 것이다. 속도 제한이 100일 텐데, 120 넘게 달렸다. 이걸 근거로 경찰이 나를 체포한다면, 나도 할 말이 있다. 이스라엘 공권력이 미치는 고속도로에서 왜 불안함을 느껴야 하느냐고. 

 

마지막으로 25번 고속도로에 들어섰던 게 2년도 넘은 일이다. 텔 아라드에 가던 길이었는데 운전자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 좀 돌아서라도 31번으로 가자고 당부에 당부를 했는데, 순환도로에서 어버버한 것이다. 그때 내가 얼마나 신경질을 부렸는지, 그 친구와 요즘도 서먹하다. 25번 도로를 기피하는 이유는 유대인 모샤브 네바팀이 나타날 즈음 적나라해진다. 한때 사막에서 장미를 재배해 명성을 날리던 네바팀의 초라해진 모습 건너편으로, 베두인 불법 정착촌이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의문이 든다. 이스라엘 국회 경제 위원회가 몇 주 전 승인한 계획 중에, 네게브 국제 공항 건설안이 있다. 건설에 7년이 걸린다는 이 신공항은 매년 최대 천오백만 명의 승객을 처리할 예정이라는데, 그 위치가 네바팀이다. 이스라엘 지명에 조금만 익숙하면 이 해괴한 계획에 의문부호가 뜬다. 네바팀 공군 기지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란이 공격 목표로 삼아 유명해진 F-35 공군 기지 이름이 네바팀이다. 모샤브 네바팀에서 아주 가까우니까. 안보 기관들이 공군 기지 때문에 신공항 계획을 거세게 반발했다는데 그거야 나는 모르겠고, 정말 웃긴 게 다음이다. 네바팀 신공항은 벤구리온 국제공항의 체증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네바팀 인근 베두인들에게 약 50,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네게브 지역 경제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거란다. 저기요, 그동안 베두인이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안한 거예요?

 

25번 고속도로에서 분명 확인할 수 있다. 네게브에서 베두인은 놀라울 정도로 크게 성장 발전했다. 일자리가 없다면서 무슨 수로 인구가 폭발하고 건설붐이 지속되는 거지? 아니, 베두인은 유목민족 아니었어? 왜 네게브에 궁전을 짓고 살아? 

 

인간은 의미를 발견할 때 건강한 삶을 산다는데, 사람에 따라 의미는 가지각색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자아실현이나 사회공헌 같은 건 의미에 들지 않는다. 이스라엘에서 두 집단을 예로 들 수 있는데 하레딤과 베두인이다. 그저 시집장가 가고 자식을 많이 낳는 것으로 충분한 모양이다. 문제는 그렇게 반사회적인 의미를 추구해도 이스라엘 사회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베두인은 최대 4명까지 아내를 둘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부다처제를 어떻게 용인하는지 나야 알 수 없다. 베두인이라고 여성 인구가 특별히 많지 않기 때문에, 부족한 여성 인구는 가자나 팔레스타인에서 공수한다. 이스라엘 시민권은 어떻게 처리할까. 불법이 성행한다. 네 명의 아내들은 경쟁적으로 자녀를 낳는다. 덕분에 40명 이상의 자녀를 둔 베두인도 부지기수다. 아이가 태어나면 국가는 매달 지원금을 주게 되어 있다. 키쯔밧 옐라딤(קצבת ילדים), 소위 어린이 수당이다. 어머니 통장으로 지급되는데, 첫째 자녀는 169 NIS, 둘째에서 넷째 자녀까지는 214 NIS, 다섯째 자녀 이상은 169 NIS를 받는다. 자녀가 40명이면 한 달에 수만 세켈을 받는 거다. 한때, 어린이 수당을 8번째 자녀까지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하레딤의 비위를 맞추려는 우파 정부가 무산시켰다. 국가가 지불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국가에 세금을 내는 세속인들이 이들을 부양하는 셈이다. 이 문제로 하레딤을 비판하는 이스라엘 사회가 베두인에 대해서는 함구한다고 해야 할까. 

 

베두인의 뿌리는 셈의 후손 에벨의 아들 욕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른 파벌은 잘 알려진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다. 아라비아 반도에 살던 이들이 서쪽으로 침투할 수 있었던 건 주전 2세기 이래 로마 통치 때문이다. 비잔틴 시대로 이어지면서 당국의 세력이 약해진 틈에, 사막의 혹독한 기후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토를 찾으려는 베두인의 목표가 된 것이다. 베두인이 비교적 평화롭게 정착한 곳은 시리아 사막과 요르단 사막이다. 마다바 지역의 요르단 베두인은 후에 기독교로 개종하기도 한다. 기존의 정착지와 가장 치열한 대립이 벌어졌던 곳이 네게브다. 결국 베두인은 네게브 정착지 옆에 경계를 두게 된다. 아라비아 반도 인구가 영주인과 유목인으로 나뉘는 것과 달리, 네게브 베두인은 시작부터 반유목인이었다. 주요 거점에서 이동 지역 사이를 이동하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구 정착 생활로 전환하는 것이다. 거주지에 머무는 기간이 늘어나고, 주변 정착치와 관계가 깊어지면 베두인은 집을 짓고, 베두인 캠프를 형성한다. 전기와 물과 배수 등 거주에 필요한 건 모두 기존 정착지 시설에서 불법으로 강탈한다.

 

네게브 베두인의 특징은 그들의 자동차 보유에 있다. 유목인이라면서 특이할 만큼 많은 승용차를 가지고 있다. 자동차를 훔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강도 활동은 자주 25번 도로상에서 벌어진다. 

 

현대 사회에서 도둑을 비난하는 건 비생산적인 소모전이다. 시민의 세금은 사회적 의무라는 고상한 의미를 벗어나 강탈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세금을 뜯어가는 체제에 대한 투명한 감시와 감독이면 족하다. 

 

이스라엘이 이 소박한 기대를 채워줄 수 있을까. 

 

 

이스라엘의 2025년 예산안이 역사상 최대 규모 7,560억 NIS(2,035억 달러)로 통과됐다. 2024년 대비 21% 증가한 액수다. 국방부 예산만 해도 1,360억 NIS(369억 달러), GDP의 4.9%다. 그 뒤를 잇는 게 교육부 예산 920억 NIS(250억 달러)인데, 정부 각 부처에서 약 30억 NIS(8억 1,400만 달러)를 삭감하고, 교사와 사회복지사 등 공공 부문 근로자의 급여를 깎으면서도 시민교육 (תוכנית הליבה)을 거부하는 하레딤 교육 기관에 몰아주었다. 야당 대표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강도질이라고 비판했다. 국가 재정을 탈루자, 충성파에게만 나눠주려는 정부 행동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저들도 살려고 몸부림치는 거겠지. 디모나에서 일을 보고, 굳이 사해까지 내려갔다가 31번 도로로 돌아왔다. 세상에, 31번 도로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거대한 베두인 정착촌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참 해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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