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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ha

Kumi Ori 이사야 60

신명기의 일곱 번째 파라샤 키 타보(כי תבוא)를 읽는다. 신명기 26-29:8, 첫 단어가 하나님이 주시는 땅으로 '들어갈 때'이다. 

 

26장

첫 번째 알리야: 하나님이 주신 땅에 들어가 첫 곡식과 과일을 수확했을 때, 그 수확물을 바구니(טנא)에 담아, 하나님이 지정하신 장소에서 코헨 앞에서 드린다. 

두 번째 알리야: 셋째 해, 십일조의 해,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 성물을 내주었으니 젖과 꿀이 흐르는 땅(ארץ זבת חלב ודבש)을 축복하소서. 

세 번째 알리야: 오늘 בְּכָל-לְבָבְךָ וּבְכָל-נַפְשֶׁךָ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

 

27-28장

네 번째 알리야: 에발 산에 다듬지 않은 돌 제단을 쌓고 그 위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그 돌들에 율법의 말씀을 기록하라.

성막의 기구인 번제단은 놋으로 만들었고 고기를 굽기 편리하도록 석쇠도 있었다. 무슨 수로 돌 위에서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 먹으란 말인가. 모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웅성웅성 동요했던 게 아닐까? 모세는 스테이크를 웰던으로 굽든 레어로 굽든 알 바가 아니므로, 다시 말한다. הַסְכֵּת 조용히 하고 들으라! 내 말은 하나님 명령을 지키라는 거다!! 

성경의 어떤 장면들은 코메디가 따로 없다.   

 

간혹 토라에서 마소라 텍스트 외에 다른 경전을 봐야 할 때가 있는데 여기가 그렇다. Samaritan Pentateuch는 27:4의 에발이 그리심으로 나온다. 그리심 산이 사마리아인의 성산이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이 에발로 고쳤다고 주장하지만, 반대로 SP가 자기 성산을 지키기 위해 원래 에발을 그리심으로 바꾸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 이유가 전치사 문제다. 에발 산은 해발 940미터, 그리심 산은 해발 880미터다. 60미터 차이밖에 안 나지만 현장에서 보면 에발 산이 훨씬 높아 보인다. 그래서 히브리어 전치사는 에발 산 안에(בהר עיבל)라고 쓰고 그리심 산 위에 (על הר גריזים)라고 쓴다. 에발 산이 높기 때문에 그리심 산 꼭대기에 서야 에발 산과 시야가 같다는 뜻이다. 사마리아인들이 원본에 있는 에발'에'를 손보면서 산 이름만 고치느라 그리심'에'가 돼 버렸다. 마소리가 원본인 거다. 

 

왼쪽이 그리심 산, 오른쪽이 에발 산

 

다섯 번째 알리야: 요단 도하 이후 6족속은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6족속은 에발 산에서 저주를 한다. 레위의 선창으로 12개의 저주(ארור)받을 행위와 6가지 축복(ברכה)의 대상이 나온다. 축복의 대상만 보자.

 בָּרוּךְ אַתָּה, בָּעִיר

 וּבָרוּךְ אַתָּה, בַּשָּׂדֶה

 בָּרוּךְ פְּרִי-בִטְנְךָ וּפְרִי אַדְמָתְךָ, וּפְרִי בְהֶמְתֶּךָ--שְׁגַר אֲלָפֶיךָ, וְעַשְׁתְּרוֹת צֹאנֶךָ

בָּרוּךְ טַנְאֲךָ, וּמִשְׁאַרְתֶּךָ

 בָּרוּךְ אַתָּה, בְּבֹאֶךָ

וּבָרוּךְ אַתָּה, בְּצֵאתֶךָ

크게 여섯 가지지만 대구를 고려하면 3쌍이다. 도시 vs. 들판, 네 자손과 농작물과 가축 vs. 하나님께 드리는 첫 수확물,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도시와 들판은 거주지의 축복, 자손과 수확물은 소득의 축복, 돌아올 때와 나갈 때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축복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이웃들과 도통 편안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여섯 번째 알리야: 다 적당 분량인데 여기만 62절이다. 아루르(저주)와 브라하(축복)이 교차되는 본문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다섯 번째 알리야에서 나온 여섯 가지 축복의 대상이 아루르의 대상으로 바뀐다. 거주지에도 저주가, 소득에도 저주가, 이웃과의 관계도 저주가 된다. 그 외의 저주 내용이 끔찍하게 나열된다. 단계별로 율법을 경시할수록 악화되는 저주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낳은 자식을 몰래 먹는 어미도 생길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소수로 전락할 것이다!

 

29:1-8

일곱 번째 알리야: 모압 언약의 서두 부분이다. 40년 광야의 생존기, 시혼과 옥을 물리침,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지파의 기업 획득을 예로 들어, 이제 요단 강을 건너가 전쟁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운다. 관건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지키는 데 있다. לְמַעַן תַּשְׂכִּילוּ, אֵת כָּל-אֲשֶׁר תַּעֲשׂוּן 너희가 행하는 모든 것을 성공하기 위하여!

 

히브리어가 성공, 번성, 형통의 의미로 사용하는 שכל이라는 단어는 참 신기한다. 신중하고 주의하고 조심하고 현명히 굴다는 어원을 갖고 있다. 유대교는 물질을 배제하지 않는 종교지만 여기에 샤머니즘은 없다. 무엇이 성공이고 번성인가. 당신이 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현명히 구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이란, 천둥벌거숭이처럼 함부러 뛰어들어 믿습니다 주여를 삼창하는 일이 아니다. 계명이 의미하는 바를 숙고하고, 그것이 주는 지혜에 순종하며, 얼핏 쉽고 간편해 보이는 세상의 유혹을 분간해 낼 줄 아는 능력이다. 그게 형통한 삶이다. 

 

키 타보 파라샤와 함께 읽는 하파타라가 이사야 60장 1-22절이다. 첫 단어를 따라 '쿠미 오리'라고 부른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 저주가 두려워 마지못해 율법에 매여 사는 삶이 아니라, 율법으로 인해 자유롭게 온 세상을 다스리는 주님의 자녀 된 특권이 떠오른다. וּמְקוֹם רַגְלַי אֲכַבֵּד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이사야 60:13)

 

중동 땅 최초의 개신교회, 크라이스트 처치 제단 앞에 있는 글귀이다. 이땅 교회들이 여호와의 발 두신 곳이 될 수 있기를.

 

이렇게 유명한 성경구절이 노래로 안 만들어질 리가 없다. 이사야 60장 1-2절로 된 노래(שיר)이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 네 빛이 이르렀다  א קוּמִי אוֹרִי, כִּי בָא אוֹרֵךְ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비춘다 וּכְבוֹד יְהוָה, עָלַיִךְ זָרָח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ב כִּי-הִנֵּה הַחֹשֶׁךְ יְכַסֶּה-אֶרֶץ

안개가 세상을 (덮었지만) וַעֲרָפֶל לְאֻמִּים

네 위에는! 여호와가 비추시며 וְעָלַיִךְ יִזְרַח יְהוָה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וּכְבוֹדוֹ עָלַיִךְ יֵרָאֶה

 

이 콘서트가 벌써 7년 전이다. 저때 멤버가 최고였던 듯. King of Kings Community Jerusal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