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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ha

Sos Asis, 헵시바라는 새 이름

9월 23일 샤밧, 신명기의 여덟 번째 파라샤 니짜빔을 읽는다. 29장 9절부터 30장까지이다. 

성경을 펼친 게 저녁 7시다. 울화가 올라온다. 오늘은 로쉬 하샤나를 이틀 앞둔 날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이제까지 청소를 했다. 물론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있지만 (물청소라 마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성경은 띄엄띄엄 볼 수가 없으니 다 끝내고 읽기로 한 것이다. 나는 그래도 샤밧 식사와 안식일 준비를 할 필요가 없으니 이 정도였다. 오늘 가사 노동으로 혹사한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이스라엘은 명절을 앞두고 청소하는 게 관례다. 그래도 로쉬 하샤나 청소는 유월절 청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파라샤 니짜빔이 짧은 이유는 2021-2022년이 윤년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31장 파라샤 바옐레흐와 함께 읽는다. 31장 한 장? 그도 짧다. 왜 이렇게 분량을 딱딱 못 맞출까. 히브리력이 윤년을 두는 이유는 유대교의 주요 절기를 비슷한 시기("매년 이맘 때") 돌아오게 만들기 위해서다. 초막절의 마지막 날인 씸핫 토라(토라의 즐거움) 때, 신명기 마지막 11번째 파라샤 베조트 하브라하(33-34장)를 읽고 일년의 토라 봉독을 마쳐야 한다. 그 전까지 명절을 제외하고 3주가 남았고, 따라서 신명기 분량도 세 번이 돼야 한다.

 

9월 24일 Parasha 8:니짜빔 (신 29-30)

10월 1일 Parasha 9: 바옐레흐(신 31)

10월 8일 Parasha 10: 하아지누 (신 32)

10월 9-16일 초막절 (별도의 본문)

10월 17일 씸핫 토라 (신 33-34)

 

앞부분도 그럼 조종을 하지 그러냐고? 마지막 부분만 조절할 수 있게 일부러 이렇게 정해둔 것이다. 읽어야 할 분량이 적어지는데 나쁠 건 없다. 마침 삭신이 쑤시기 때문에 매우 기쁘다. 

 

첫째 알리야 : 와, 이건 가사노동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너희의 수령과 장로와 지도자와 모든 남자 외에, 유아(טַפְּכֶם)와 아내(נְשֵׁיכֶם)와 객(גֵרְךָ)과, 너를 위하여 나무를 패는 자(חֹטֵב עֵצֶיךָ)로부터 물 긷는 자(שֹׁאֵב מֵימֶיךָ)까지 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니짜빔) 그 언약에 참여하는 것이다!

 

둘째 알리야 : 오늘 여기 서지 아니한 자까지도(וְאֵת אֲשֶׁר אֵינֶנּוּ פֹּה) 언약에 참여한다.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자녀이며, 그분의 부르심이 시간의 한계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왜 어려울까. 이스라엘에서 이 부분에 울컥 반응하는 이들은 대개 좌파들이다. 그들은 세속인이거나, 리버럴 유대교를 믿기 때문이다. 옥서더스 하레딤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다름아닌 자기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결국 가정을 떠나 리버럴 유대인으로서 유대학 박사가 된 루하마 와이스는 이렇게 썼다. 

 

העולם הרוחני שלנו, הוא לא שלנו. הוא נשלט, מפוקח, ממותג ונסחר. אנחנו לא בוחרות בחיים דתיים, וגם אם אנחנו עוזבות את המפעל הדתי שלתוכו נולדנו, אנחנו עוברות למפעל אחר, מתחרה. המפעלים הדתיים שלנו חולשים על שוק האמונות והדעות - ובעיקר על שוק הפולחן, והם גובים מחיר בלתי נתפס (כלומר, מה שבלתי נתפס הוא ההסכמה שלנו לשלם את המחיר הזה)

우리(유대교)의 영적 세계는 우리에게 속하지 않았다. 그것은 통제되고, 모니터링되고, 브랜드화되고, 거래된다. 우리는 종교적 삶을 선택하지 못하고, 우리가 태어난 종교 공장(!)을 떠나도 다른 경쟁 공장(!)으로 이동한다. 우리의 종교 산업은 신앙과 견해의 시장, 특히 예배(제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상상 이상의 값을 치르도록 부가하고 있다(여기서 상상 이상의 것이란 이 값을 치르겠다는 우리의 동의이다).

 

이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유대교에서 섹트가 갖는 특이한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면 지나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루하마 와이스는 충분히 욕을 먹고 있다. 이분의 거침없는 주장은 세상 무서운 줄 몰라서가 아니다. 

 

셋째 알리야 : 15-28절이다. 

1) 그들 중에 있는 가증한 것 (שִׁקּוּצֵיהֶם) : 히브리어 쉐케츠, 쉬쿠츠는 레위기에 줄기차게 나오는 '토에바' (가증한 것)와 비슷한 의미로, 특히 제사 이후 먹게 되어 있는 화목제나 음식 정결법에 거슬리는 것들을 가리킨다. 제의 상황에서 발생한 부정한 음식이다. 

2) 독초와 쑥의 뿌리(שֹׁרֶשׁ פֹּרֶה רֹאשׁ--וְלַעֲנָה) 히브리어는 독풀의 뿌리, 그리고 쑥이다. 

3)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 (לְמַעַן סְפוֹת הָרָוָה, אֶת-הַצְּמֵאָה) : 젖은 것이 마른 것을 파괴할지라도

4)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 (כָּל-הָאָלָה הַכְּתוּבָה בַּסֵּפֶר הַזֶּה)

5) 감추어진 일은 하나님께, 나타난 일은 우리에게 (הַנִּסְתָּרֹת--לַיהוָה, אֱלֹהֵינוּ; וְהַנִּגְלֹת לָנוּ)

 

모두 난해하다. 모세가 들고 있는 율법책에 축복과 저주가 있고, 그 모든 저주는 율법으로부터 벗어나자고 공동체를 꾀는 자에게 임할 것이다. 하지만 멸망은 공동체 일반에 미치며 그 결과로 이 백성은 땅에서 뽑힐 것이다. 이 파라샤의 제목은 니짜빔이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토라가 서 있는 자들과 그 자리에 없는 앞으로 오게 될 이들에게까지 제시됐지만, 모두가 이를 지키리라는 보장은 주어지지 않는다. 여전히 율법의 성사 여부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넷째 알리야 : 하늘의 끝에서도 거기서 모으시리라

בִּקְצֵה הַשָּׁמָיִם

מִשָּׁם יְקַבֶּצְךָ 

워드 플레이라는 걸, 발음으로 들을 때 선명하다. 비크쩨 하샤마임, 미샴 이카베츠하. 그 유명한 키부츠라는 건, 모임이라는 뜻이다. 6절은 회개의 달인 엘룰 월의 목적으로 이해된다. 왜 이렇게 힘들게 회개해야 하는가. 여호와를 사랑함으로 생명을 얻기 위해서다.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 움직이는 세상에 끌려 허깨비처럼 사는 것은 생명이 아니다. 마음과 뜻을 다한 삶은 여호와를 사랑하는 데에 있다. 

 

다섯째 알리야 : 여호와께 돌아온 회개의 삶은 모든 삶의 활동을 '토바', 복으로, 선으로 만드는 길이다.

 

여섯째 알리야 : 이것은 네 입에, 네 마음에 있어 행할 수 있다. 

 

일곱째 알리야 : 생명 vs. 사망, 복 vs. 화

창세기 2장의 에코로 여겨지는 장면이다. 첫 사람은 이 선택의 기로에서 실패했다. 토라는 다시 한번 그 기회를 인간에게 주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종교생활을 하는 의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서 최선을 선택하려는 노력. 그것이 무가치하고 쓸데없어 보이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이 일에 하늘과 땅이 증인으로 소환되었다. 

 

파라샤 니짜빔의 하프타라는 이사야서의 7번째 본문 61장 10절부터 63장 9절이다.

첫 소절을 따서 쏘쓰 아씨쓰, "내가 (여호와를) 크게 기뻐한다"이다.

시온에 새 이름이 주어지는데, 헵시바(חֶפְצִי-בָהּ), 혹은 뿔라(בְּעוּלָה)이다. 헵찌-바는 문장으로 내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 는 뜻이다. 여호와가 시온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뿔라는 어쩌다 저 발음이 됐는지 모르겠는데 베울라이다. 남편이 있는 여성, 짝지어진 여인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가나안의 신이자 주인이란 뜻인 바알에서 왔다. 시온이 결혼한 것처럼 수확이 있으리라는 뜻이다. 율법대로 살아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세 쌍의 복, 거주지의 축복, 소득의 축복, 이웃과의 관계에서의 축복이 버림받고 황폐해진 시온 땅에 다시 성취되리라는 것이다. 

 

לְמַעַן צִיּוֹן לֹא אֶחֱשֶׁה, וּלְמַעַן יְרוּשָׁלִַם לֹא אֶשְׁקוֹט, עַד-יֵצֵא כַנֹּגַהּ צִדְקָהּ, וִישׁוּעָתָהּ כְּלַפִּיד יִבְעָר

시온을 위하여 내가 입다물지 않고, 예루살렘을 위해 내가 침묵하지 않으리라

그 공의가 금성처럼 나타나고 그 구원이 횃불처럼 탈 때까지 

וְרָאוּ גוֹיִם צִדְקֵךְ, וְכָל-מְלָכִים כְּבוֹדֵךְ; וְקֹרָא לָךְ שֵׁם חָדָשׁ, אֲשֶׁר פִּי יְהוָה יִקֳּבֶנּוּ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들이 네 영광을 보리라.

너를 새 이름으로 부르리라, 여호와의 입이 명명하실

וְהָיִית עֲטֶרֶת תִּפְאֶרֶת, בְּיַד-יְהוָה; וּצְנִיף מְלוּכָה, בְּכַף-אֱלֹהָיִךְ

너는 여호와의 손에 있는 화려한 왕관, 네 하나님 장중에 있는 왕가의 티아라이다

לֹא-יֵאָמֵר לָךְ עוֹד עֲזוּבָה, וּלְאַרְצֵךְ לֹא-יֵאָמֵר עוֹד שְׁמָמָה--כִּי לָךְ יִקָּרֵא חֶפְצִי-בָהּ

너를 다시는 버림받은 여인이라 부르지 않고, 네 땅에게 다시는 황무지라 불리지 않으리라,

너를 헵찌-바라 부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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