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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스라엘 금수저들

히브리어에도 금수저 비슷한 표현이 있다.  נולדו עם כפית כספית בפה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뜻이다. 부를 숭상하는 미국에서는 아버지만큼 잘나가서 가문의 영광을 이어나가는 자식이라는 갸륵한 해석도 있지만 어쨌든 부잣집 도련님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스라엘은 이 분야에서 좀 독특한 지점이 있다. 일단 초짜배기 나라를 세운 사람들이 보통 인물들이 아니었다. 단지 정치가나 군인들만이 아니라 사회 전 방위에서 활약하며 이스라엘 문화를 '창시한' 장본인들이다.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 동류들끼리 어울리다 보니 2세대에서 혼맥이 형성된다. 아들이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가고, 비슷한 직종의 사위를 맞아들이는 식이다. 이스라엘에서 유명한 사람의 가족관계를 조금만 파보면, 건국 신화로 변한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의사 자녀에게 의대 입학 시 가산점을 준다.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의사로서의 무형의 자질을 연마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 가족 단위에서 바람직한 현상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적어진다. 건국 초기 집권층은 아슈케나짐이었고, 이들의 문화는 여기 속하지 못한 이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준다. 1960년대 이스라엘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도시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데, 전형적으로 많은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전 세계에서 한꺼번에 이민자들이 몰려온다. 어쨌든 경쟁이다. 누가 혜택을 입을까. 당시 이디쉬로 란츠만이란 단어가 있었다. lantzman, 고향 사람이란 뜻이다. 유럽 출신 아슈케나짐들은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이 이 나라 지도층에 있다는 잇점을 누렸다. 적어도 북아프리카 출신보다는 많았을 것이다. 해안가 주변의 좋은 거주지에는 아슈케나짐이 우선 자리를 잡았다. 

  

미즈라힘, 즉 북아프리카와 중동 출신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슈케나짐 때문에 공정한 기회를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1970년대 미즈라힘에 의한 이스라엘판 블랙팬서 운동이 펼쳐지는 계기다. 이스라엘의 인종차별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총리 골다 메이어는 항의하러 온 미즈라힘 청년 대표들을 만나고는 הם לא נחמדים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아예 길거리 이름으로 박제를 해버렸다 ㅋㅋ

 

골다 메이어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시오니즘에 눈을 뜨고 이스라엘로 다시 이민해 1948년 외교부장관으로 군자금을 조달했고, 철의 장막 시대에는 소련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지낸 인물이다. 마초 사회 이스라엘에서 현재까지 유일한 여성 총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어요, 불평하는 젊은 세대에게 아연실색했다는 후문이다. 죽을 힘을 다해 세운 새 조국의 젊은이들이 약해 빠진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이스하지 않다는 말은, 그들이 거칠고 무례하고 교육받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물론 미즈라힘을 더 자극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지만, 목숨을 걸고 투쟁하면서도 책을 읽으며 교양을 쌓아온 자신들의 젊은 생애와 너무나 다른 젊은이들에게 놀라서 한 말이었다. 

 

<---예루살렘 재래시장 마하네 예후다에 생긴 Bobby Seale의 그라피티.

 

 

오늘날 아슈케나짐과 미즈라힘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3세대가 지나면서 이미 가족관계로 섞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즈라힘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파워를 과시하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미즈라히 뿌리를 드러내려고 한다. 그 결과 적어도 이스라엘 대중문화가 지향하는 바는 중동의 다른 나라(이슬람 세속 국가 한정)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미즈라힘 문화가 우세한 현재 이스라엘에서 금수저 논란은 점입가경이다. 이스라엘 리얼리티 예능(?) 중에 코하브 하바, 즉 스타 탄생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노래에 재능있는 사람들이 나와 1등을 하면 이스라엘을 대표해 Eurovision 대회에 나가거나, 가수로 데뷔한다. 2018년 유로비전에서 우승한 네타 바르질라이도 바로 이 프로그램에서 선발됐다. 올해 7월 시작된 시즌이 몇 달에 걸쳐 이어지다가 9월 말에 최종 승자를 발표했다. 엘리아브 조하르, 이스라엘 최대 정당 리쿠드 소속의 국회의원 미키 조하르의 아들이다. 

 

아버지 후광 같은 것으로 우승을 했다는 말은 아니다. 리얼리티 예능은 음악가의 자질을 검증하는 목적만 있지는 않으니까. 엘리아브는 유명세가 중요한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부터 이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구면이었다. 일년 전 텔아비브 호텔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는데, 아버지가 국회의원이고 논란의 여지가 있어서 거의 모든 매체에서 다뤘던 것이다. 아무런 경력도 없는 21살의 젊은이도 아버지의 아들이란 이유로 단번에 유명해지는 나라이다. 그런 그가 리얼리티 예능에 나왔다?  

 

코하브 하바는 2003년 이래로 최저 시청률을 기록했고, 동시간대 비슷한 포맷의 빅브라더 결승전에도 아예 밀려버렸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 지금 이스라엘은 선거철이다. 미키 조하르는 '엘리아브의 아버지'로 불리며 사람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밀어주고 끌어주는 이 사회 특유의 금수저 문화다. 

 

 

아들이 올해 22살인데, 아버지는 42살이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