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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크, 린넨의 세계

 

사농공상 차별주의에 젖어 자란 나는 손에 쥐어지는 물건에 매료돼 본 적이 없다. 그래봤자 시간이 지나면 퇴색할 것들이 아닌가. 머릿속에 쌓이는 지식이 절대영역이지 손으로 만든 게 뭐? 한마디로 장인정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손으로 하는 작업에 대해 거의 비슷한 태도를 갖고 있다. 특히 먹고 마시고 반복하는 일상을 장인정신이라는 요소로 번거롭게 만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쓸데없는 겉치레와 동의어로 여기고 있다. 나한테는 미니멀리즘이 적격이다. 

 

유대교는 매년 정해진 때 모에드(מועד)를 마련하고 그날 온갖 호들갑을 떠는 종교다. 어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하루를 새로운 날이라면서 그날에 해야 할 규칙들을 끝없이 마련해 두었다. 이를 테면 샤밧 저녁에 식사를 히는 것은 오네그 샤밧, 즉 샤밧의 즐거움이자 마땅히 해야 할 미쯔바 계명이다. 근데 밥은 날마다 먹지 않나?

 

다마스크로 만든  Jewish Joy라는 이름의 샤밧 테이블

 

대가족의 샤밧 식사를 감당하자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가 최선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대인 여성은 기꺼이 설겆이의 번거로움을 감내하고 샤밧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데 우선 순위를 둔다. 일단 샤밧 식사 때는 하얀 테이블보를 깔아야 한다. 모에드는 정결한 흰색의 날이기 때문이다. 다마스커스 린넨, 다마스크의 진수가 여기에 있다. 그냥 흰색으로만 보이지만 독특한 무늬가 프린트돼 있는데,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고 불빛을 받아서야 은은하게 형태를 드러낸다.

 

다마스크는 시리아 다마스커스 도시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린넨 직조 기술로, 비잔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마스커스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직물과 장인들이 활동했던 주요 무역 도시였다. 실크로드에서부터 이어지는 무역로의 끝자락으로, 중국은 당나라 시대 이 기술을 받아들여 실크에 화려한 색깔의 실로 다마스크를 생산했다. 지금도 중국 항저우에서 이 기술이 이어지고 있다.

 

다마스크는 십자군 시대를 계기로 서유럽으로 진출한다. 일반적으로 칙칙한 배경에 단일 색상으로 짜여진 광택 패턴이었고, 금속 실이 등장하면서 다채로운 변형이 추가됐다. 중세에는 실크 외에도 양모로 다마스크를 제작했다고 한다. 19세기에 산업혁명과 더불어 다마스크 생산은 속도가 빨라지고 비용이 낮춰졌지만 결국 쇠퇴의 길을 걸었다.  

 

     <-----  Damask Joy의 할라 커버

   

유대교는 테이블웨어로 할라 커버도 필요하다. 할라는 샤밧에 먹는 빵인데, 달걀과 꿀을 넣어서 포슬포슬 달콤하다. 히브리어로 할랄이 속이 비어 있는 공간을 뜻하는데 이스트로 발효시켰기 때문인 것 같다. 한 끼만에도 체중이 확 늘 수 있는 무시무시한 열랑을 자랑한다.  

 

굳이 빵을 덮어 두는 것은 건조를 막기 위해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샤밧이 전체적으로 신부의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사치를 금하지만 샤밧 만큼은 집안을 아름답게 장식하는데, 그래서 꽃장식을 한다. 또 할라를 천으로 가림으로써 신부의 수줍음을 표현한다. 

 

산업화를 통과하며 대량생산에 푹 빠진 유럽은 다마스크를 잊었다. 이를 기억하고 보존한 이들은 샤밧이 있는 유대인이었다. Jewish Joy를 통해 이스라엘에 다마스크를 부활시킨 Vicky는 모로코 출신이다. 부모님은 모두 모로코에서 직물을 다루는 일을 했다. 이스라엘로 건너올 때 비키의 어머니는 모로코에서 샤밧을 장식하던 다마스크를 잊지 않고 들고 왔다. 샤밧마다 다마스크를 펼쳐 식탁을 장식하는 일은 그들의 고향을 떠올리게 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끝없는 경외심과 토론으로 이끄는 계기였다. 비키는 언제나 마음 한켠으로 다마스크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은퇴를 하고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준비가 됐을 때 비키는 이스라엘에서 다마스크를 부활시키기로 결심했다. 이왕이면 제대로 된 다마스크를 만들고 싶어서 직조 기술이 있는 곳을 수소문했다. 아일랜드에서 공장을 찾아냈다.  

 

 

 

나는 비키의 다마스크를 직접 보고, 그 섬세함에 마음이 끌렸다. 아무리 장인정신을 알아볼 줄 모르는 문외한도 이 작품이 아름답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Jewish Joy세트를 구입해 나의 샤밧을 품위있게 만들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가격을 알고 나서 미니멀리즘을 고수하는 것이 현명하겠다고 판단했다. 세상에 나같은 사람만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합리적인 사치도 필요한 거다. 

 

 

가난안 7작물을 묘사한 냅킨. 디자인을 보려고 조명을 넣어 찍었다.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가 보인다. 

 

 

 

*이 글은 이스라엘에서 Damask (linen fabric)를 제작하는 Damask Joy의 테이블웨어를 홍보하려는 목적으로 작성됐다. 홍보의 본분을 달성한 것 같지는 않다. 

 

 

About Us - Damask Joy

Decorate the family table with tradition, culture, and elegance. Damask Joy was created to celebrate the age-old art of storytelling through beautiful quality, woven linen tablecloths, known as Damask. With its inherent high quality and natural durability,

damaskjo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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