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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천연가스 이야기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을 선언한 나라지만 북쪽 국경을 함께 하는 레바논과 시리아로부터 국가 인정을 못 받았다. 전쟁도 수없이 했다. 긴 역사다. 국경이 없어도 큰 물의는 없다. 어차피 영토는 지킬 힘이 있는 자에게 속한 거니까. UN군이 중간에주둔해서 긴장을 흡수하고 있다.

 

그래도 레바논과 국경은 20세기 초반 제국 열강들이 초안을 잡았다. 1923년 뉴컴-뽈레 협정이 현재 국경선과 일치한다. 두 나라는 여전히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지만 국경만큼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다. 시리아와는 피차 생각하는 국경선 위치부터 다르다. 골란고원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시리아는 국경이란 걸 합의해 본 적이 없고, 1948년 휴전선, 1967년 휴전선, 1973년 휴전선이 있는데 골치가 아프니 어찌어찌 파란선과 빨간 선을 긋고 그 중간은 DMZ로 이해한다.

 

이런 사이에 바다가 끼어 있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바다는 존재 자체가 경제다. 우리나라 동해에 아무것도 없는 게 그나마 나을 수도 있다. 뭐라도 나오면 그땐 독도함 이즈모함 상주하는 거다. 이스라엘은 진작부터 레바논과 해상 국경을 정하고 싶어했다. 여기서 천연가스가 터졌기 때문이다. 유럽이 Nord Stream 폭발 때문에 정신줄을 놓은 그 천연가스 맞다. 

 

유럽의 에너지 강국이 러시아라면 이 지역 에너지는 이집트에 몰빵돼 있다. 나머지 나라들,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터키는 여기에 빨대 꽂고 있는 거다. 물론 처음에 이스라엘은 여기 끼지 못했다. 이집트 국경 Arish 에서 시작된 파이프는 아카바로 빙 돌아 가서 요르단 암만을 타고 올라가 다마크커스를 지나 홈스 근처까지 연결되고 거기서 레바논 트리폴리로 이어진다. 시리아 라인은 다시 터키로 연결되고, 거기서 이라크와 유럽까지 연결될 예정이다.

 

2004년까지 이스라엘은 가스를 연료로 거의 쓰지 않았다. 예루살렘 신도시(1967년 이후)나 돼야 가스관이 연결돼 있다. 이스라엘은 아랍 가스 파이프라인에 끼지도 못한 대신, 혼자 지중해 바닥을 팠다. 혹시 석유가 나올까 해서였다. 이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른다 했지만, 바다는 또 모르지 않나. 수십 년 간 속을 끓이며 여기저기 파본 결과 극히 소량의 석유 매장량이 있다는 게 확인됐다. 대신 2009년 '풍부한' 천연가스가 터진다. 그 사이 세월도 변해서 이집트는 아리쉬에서 이스라엘 아슈켈론까지 파이프를 연결한다. 이스라엘에 대대적인 수출 물량 거래를 성사시킨다. 요르단도 이즈르엘 평야 너머로 이스라엘과 파이프관을 연결한다. 파이프는 쌍방향이다. 한쪽이 부족하면 다른 한쪽이 채워줄 수 있다. 처음엔 이스라엘이 수입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이집트로 수출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지중해에서 잭팟을 터트리자 관심사가 비슷한 레바논도 이 바다에 주목했다. 이스라엘이 근래 굴착 공사를 시작한 Harish (or Karish)가 문제다. 거기, 우리 바다 같은데? 경제수역 경계선 협상 문제가 떠오른다. 해상 국경에 대한 양국의 분쟁 지역은 면적이 860제곱킬로미터, 이스라엘의 경우 경제수역 전체의 2% 미만, 레바논의 경우 3%에 불과하다. 어쩜 가스가 묻혀도 여기 묻히냐.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의 중재를 통해 간접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합의가 어려웠다. 이 와중에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가스 굴착 장치에 노골적인 위협을 가했다. 1차 협상이 레바논의 강경한 입장으로 2020년 11월에 종료됐다. 당시 미국이 정권교체 시기였기 때문에 레바논이 이스라엘에 편파적인 트럼프보다 바이든의 취임을 기다리는 듯한 인상이었다. 2021년 협상이 재개돼지만 5월 이스라엘의 가자 작전 때문에 또 중단된다. 올해 7월 이후 협상이 진행돼 10월 1일 레바논 미셀 아운 대통령에게 양국 경제 수역에 관한 미국의 중재안이 서면으로 제출됐다. 베이룻을 드나드는 바이든 대통령의 에너지 안보 보좌관 아모스 호흐슈타인은 이스라엘에서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이다.ㅋ

 

레바논 미셀 아운 대통령의 임기는 10월 말까지다. 대통령 선출은 국회를 통한 간접 선거지만 헤즈볼라 등이 정국을 어지럽힐 가능성도 있다. 미셀 아운 대통령은 미국의 중재자 제안을 수락하고 조속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두 나라가 경제수역 경계선에 합의한다면 무엇보다 툭하면 Harish 가스 굴착 장치를 공격하겠다는 헤즈볼라의 위협을 종식시킬 수 있다. 또  레바논 역시 천연 자원이 풍부한 지역에 뛰어들 기회를 가지게 되므로 현재의 심각한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커진다.

 

레바논 언론에 따르면 아운 대통령은 이미 국회의장과 총리를 불러 미국 중재안을 협의했다고 한다. 레바논의 삼종교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나라의 미래를 위해 긍정적인 회의를 한 셈이다. 

 
기대와 희망에도 불구하고 끝내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스라엘 국방부는 곧 하리쉬에서 가스 생산을 개시하기 위한 안보 논의를 소집할 예정이다. 유럽의 가스 위기가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협상 타개를 독촉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두 나라 사이에 좋은 소식이 들리면 좋겠다. 

 

 

레바논 미셀 아운 대통령이 레바논 주재 미국 대사 도로시 쉐아로부터 중재안을 받고 있다.